내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

내가 경험한 교회 문화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by 초덕 오리겐

Intro


벨기에에는 얼마 전까지 한인교회가 두 개 밖에 없었다. 심지어 대중교통을 타고 갈 수 있는 교회는 하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새가족도 많이 온다.


벨기에만 그런 게 아니다. 호주, 싱가포르 등 다양한 나라의 한인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였던 교회가 여러 개로 갈라지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대개는 교단에 따라 갈라진다.


교단마다 신앙의 습관과 스타일이 다르니 나는 이게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통성기도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통성기도를 싫어한다. 찬송가 위주의 찬양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최신 CCM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이것이 교회를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


잘 생각해보자. 나이드신 분들은 찬송가 위주의 찬양을 좋아한다. 찬양 인도자가 콘티에 CCM을 넣으면 득달같이 찾아와서 "찬송가 위주로 해줬음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꽤 많다. 그런데 두 개의 교회가 있다고 해보자. 한 교회는 찬송가만 하고 다른 교회는 CCM을 적극 사용하는 교회이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CCM을 사용하는 교회는 점점 젊어지는데, 찬송가만 하는 교회는 나이 많은 사람들만 남아 있다. (그런데 찬송가만 고집하는 분들은 또 말하기를, "왜 우리 교회는 나이 많은 사람만 남아 있냐"고 불평한다.)


이게 한국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근처 한인교회가 손에 꼽을 정도의 상황에서는 좀더 잘 보인다. 교회가 점점 도태되어 가는데, 기존 구성원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속수무책 속에서 교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고뇌는 극심하다.


심지어 한 번은 이런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자기는 오르간을 사용한 예배가 아니면 예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드럼은 커녕 피아노만 쳐도 불편하다는 거다. 자기가 어렸을 때 경험한 신앙 경험으로 교회를 제한하면 다른 사람들은 숨이 막힌다.


사실 이건 극단적인 예이긴 하다. 물론, 그렇다고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좀더 우리가 쉽게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살펴보자.




부흥하는 한인교회의 고민


부흥이라고는 했지만, 정확하게는 새로운 사람이 많이 오는 교회를 말한다. 해외 한인교회 사이에서는 위에도 말했듯이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하다. 몇 개의 교회만 유독 사람이 많이 모인다. 특히 번화가나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 근처에 있는 교회는 점점 사람이 많아진다. 그런데 그런 곳은 대개 예배 장소 대여료가 비싸다. 사람이 적어 예산이 많지 않은 교회는 싼 곳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러면 거리도 멀고 건물도 낙후되는 경우가 많다. 교회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이동하는 교회도 많다. 그러면 점점 사람이 덜 모이게 된다. 거리는 먼데 사람도 많이 안 오고 일은 많으니 떠나는 거다. 즉, 한인교회는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될 때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이 뭐냐 하면, 새가족이 많이 온다는 점이다. 그런데 새로 왔다는 사람들이 다들 교회에서 한가닥씩 하는 장로요 권사요 집사이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경험한 교단이 다 다르고, 교회가 다 다르다는 점이다. (교단을 보고, 교회 전통을 보고 교회를 정할 수 없다 보니 어쩔 수 없기는 하다.)


좀더 설명하자면, 해외의 한인교회는 목회자가 교단 색깔을 정한다고 해도 대개는 그 구성원들의 출신 교단이 섞이게 마련이다. 하물며 (해외의) 대형교회라고 하면, 사람들이 교단을 보고 오는 게 아니라 규모와 건물, 거리, 찬양 시스템을 보고 오기 때문에 교단적 통일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장로교, 침례교, 순복음, 성결교, 감리교 등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자기가 맞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국내의 교회는 나은 편이지만, 국내 교회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감리교에서 온 사람이 장로교에 와서는 "내 신앙 전통은 이러지 않았습니다" 따위의 소리를 하는 경우도 많다. 뭐, 그러다 결국은 자기 신앙 전통으로 돌아가기는 한다. 예를 들어, 순복음이 잘 맞는 사람은 결국 순복음으로 돌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통성기도와 방언을 민폐이자 예배를 방해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통성기도를 하지 않으면 기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예배당 안에 십자가가 없는 걸 이상하게 보고, 다른 사람은 예배당에 십자가가 있으면 미신적이라고 본다.

사순절을 지키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사순절을 성경에도 안 나오는 이교적인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주일에 물건을 사는 걸 신앙이 없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주일에 물건을 못 사게 하면 율법주의자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이런 교회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자기 교회만 맞다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하는가이다.




교회의 금언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전통으로 가지고 있는 하나의 금언이 있다. 바로 이것이다.

본질적인 것들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들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는 사랑을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해외의 한인교회들 사이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닌 모양이다. 초대교회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물론 교황이라는 말이 없었던 (물론 가톨릭에서는 교황 빅토르 1세라고 말한다. 다만 빅토르가 로마의 주교로 재위했던 기간은 189-199년이고, 로마 주교를 교황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로마 주교 빅토르 시대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사도 요한의 부활절 전통을 이은 교회는 틀린 거라며, 자기들 전통을 따르지 않을 시 출교시키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로마 교회와 로마 주교의 특별성을 나타내려고 했던 빅토르 주교의 이러한 행위는 가톨릭 내에서도 말이 많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보다 바람직한 모델도 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어거스틴과 함께 밀라노로 간 적이 있었다. 이때 모니카는 밀라노 교회의 전통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성찬 전 토요일과 주일에 금식을 지키는 전통이 있었으나, 밀라노에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모니카는 아들 어거스틴을 통해 당시 밀라노 주교였던 암브로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이에 대한 암브로스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로마에 있을 때는 토요일에 금식하고, 밀라노에 있을 때는 금식하지 않는다.


초대교회 때에는 각 지역마다 개별 교회 전통이 달랐다. 그런데 로마 주교 빅터처럼 자기와 다른 전통을 겁박한 것과 달리 암브로스는 본질적인 것이 일치한다면 형식, 즉 비본질적인 것들에 있어서는 자유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와 다른 전통이라 하더라도 인정해주었던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공동체이다. 각 개인에게 익숙한 전통이 있더라도, 지금 이 교회, 이 공동체에 있으면 따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각 개인이 마음대로 자기 전통을 따르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것은 방종이 되거나 독재가 된다.




교회를 따르는 것


교회 안에 있다 보면 지성적으로 의심이 되는 발언들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교회와 공동체를 따르라는 걸 독재라고 표현하는 거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왜 못하게 하냐는 거다. 이런 사람들은 조직을 모르고 상식이 부족한 거다.


이건 마치 싱가포르에 가서 바닥에 침과 껌을 뱉고는, "왜 안 되냐"고 따지는 격이다. 그러나 상식이 있다면, 공동체의 합의라는 게 어떻게 이루어지는 알 수 있다. 국민적 합의에 의하여 투표로 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그 사실을 무시한다면 그 사람은 상식이 없는 거 아닌가? 마찬가지다. 공동체의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합의를 무시하는 것은 그 사람의 무지를 드러내줄 뿐이다.


내 생각, 내가 원하는 방식만 주장하는 것은 그 사람의 수준을 드러내준다. 다른 사람의 생각, 공동체 등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을 이해하려는 능력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아래의 링크를 보면,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고 안 치우는 중국인들의 습관을 다룬다. 변기 위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 용변을 보는 중국인들의 모습도 다룬다. 중국 안에서야 그럴 수 있지만 한국에 와서 식당에서 식사 중에 쓰레기를 그냥 바닥에 버린다면? "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냐"라고 하는 것은 무식한 것 밖에 안 된다.


각 교회마다 전통이 세워진 것에는 그 교회의 상황과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것들을 무시하고, "왜 이 교회는 이런 식으로 하냐. 내가 교회에서 배운 신앙은 이런 신앙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답답하고 무식한 말 밖에 되지 않는다.


수도가 비싼 나라라면 물을 아낄 것이고, 어른 없이 아이들끼리 노는 것에 민감한 나라라면 반드시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교회의 대다수라면 새로운 CCM을 배우기 어려워 찬송가나 오래된 복음성가 위주로 찬양을 하게 된다. 근처 불량학생들이 교회에 숨어들어와 난장판을 피웠거나 성폭행을 저지른 역사가 있다면 교회 곳곳에 CCTV가 설치된다. 교민 사회에 사기꾼이 많아 교회에도 찾아와 크게 홍역을 앓았다면 돈 거래에 민감할 것이다. 이단이 틈탔다면 사적인 성경공부를 경계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을 경험하기 전부터 주의하는 지혜로운 교회도 있을 것이다.)




교회의 문화와 전통을 바꿀 때


물론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새로운 목소리가 많아진다면 교회의 문화와 전통이 바뀔 수 있다. 물론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이전 문화를 비난하라는 게 아니다. 공동체의 합의가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각자 목소리가 전혀 다를 때는 그냥 이전 전통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찬양대 대원들이 서로 전혀 다른 교단 출신인데, 각기 자기 교단의 전통을 따르기 원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목소리 크고 싸움닭 같은 사람의 말에 다들 순종해야 되겠는가?


그러나 "찬양이 너무 올드하다"는 생각들이 많아진다면, 교회 구성원들을 위해서 새로운 CCM을 콘티에 넣을 수 있다는 거다. 교회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니, 사람들을 위해 바꿀 수 있다. 물론 반대로, 나이 많은 사람들만 있을 경우, "찬송가만 하자"는 주장이 중론이라면 찬송가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분위기를 바꾼다거나, 신앙적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주일학교 아이들이 수련회와 기도회, 그리고 성경공부에 대해서 다들 부정적일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다들 싫어하니까 그냥 하지 말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는 거다. 기도도 안 하고 성경 공부도 안 한다면 그게 사교 모임이지 교회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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