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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적 대화의 자세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by 초덕 오리겐

Intro


우리는 대화할 때 자기 입장과 세계관에서 대화를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상대방의 생각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상대방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전부 이해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오히려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대화가 필요없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긴 하다. 이미 다 아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중심적 대화의 자세이다. 모두가 자기 입장을 가지고 대화를 하지만,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자기중심적 대화는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려고 이해하려는 생각이 아예 없다. 자기가 원하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입장과 의미를 이해할 노력이 전혀 없다.


물론, 상황이 급박해서 그런 실수를 저지를 수는 있다. 예를 들어서 육아에 지치고 바쁘면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자기중심적 대화의 자세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참고로 지난 글에 대화 중 "불통을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해 정리한 것이 있으니 살펴보도록 하자.



바른 대화의 모습


한 번은 아내와 이런 일이 있었다. 아내가 쫄면을 끓이는 중이었는데, 물을 종이컵 한 컵만 빼달라고 하고 그냥 나가 버렸다. 내 입장에서는 '쫄면을 끓이는데 물을 왜 뺄까' 생각하면서, 아내의 말대로 물을 한 컵 싱크대에 버렸다.


그리고 아내가 들어오더니, "물을 왜 안 빼놨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나는 "물 한 컵 버리라 해서 버렸는데?"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바른 대화의 자세와 자기중심적 대화의 자세가 드러난다. 바른 대화의 자세는 이런 식이다.


아내: 나는 물을 빼 달라고 했는데?

나: 그게 버리라는 거 아냐?

아내: 아니야. 그 물 쓰려고 했어.

나: 그렇구나. 몰랐어.




자기중심적 대화의 자세


그런데 여기서 아내가 자기중심적 대화의 자세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보자.


아내: 물을 왜 안 빼놨어?

나: 물 한 컵 버리라 해서 버렸는데?

아내: 나는 물을 버리라고 한 적 없어.

나: 물 한 컵 빼라고 한 게 버리라는 거 아냐?

아내: 물어봤어야지.


위의 대화 스크립트는 그래도 아내가 그나마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을 때의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물을 버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버렸다고 하냐"며 화를 낸다면 이것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상황에 화를 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내가 한 말이 아니다"라는 거다.


이것은 심층적인 의미, 또는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말이란 의미 전달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길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성숙한 대화의 자세란, 상대가 자기가 원하지 않는 잘못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쫄면을 끓이고 있는데 물을 빼달라 하면 당연히 "물을 버리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나는 물을 버리라 한 적이 없다"며 싸움을 걸고 화를 내는 것은 평소 대화의 자세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다.


거기다 여기에 추가로 "모르면 물어봤어야지"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의 대화 능력이 의심스러워진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이해할 자세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그냥 "내 말이 다 옳다"를 주장하기 위한 억지를 펼치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쫄면을 끓이고 있는데 그 물을 한 컵만 빼달라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물을 빼서 버려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을 빼서 한쪽에 놓아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쫄면을 먹는데 이 물을 굳이 따로 쓸 일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는 "이 물을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즉,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물을 버리는 것" 외의 다른 의미는 알 수 없다.


여기서 이것이 중요하다. 의미가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물어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두 가지 중 하나인 상황일 때에는 물어볼 수가 있다. 하지만, 당연히 물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할 때는 물어볼 수가 없는 것이다.




정리하기


자, 이제 자기중심적 대화의 자세를 가진 아내가 화를 낸다고 해보자. 아내의 주장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1. 나는 버리라고 한 적이 없다

2. 모르면 물어봤어야지


쫄면을 끓이고 있는데 여기서 "물을 빼라" 라는 것이 두 가지 의미를 가진 상황에서 "물을 빼라"라는 건 두 가지 심층적 의미를 품을 수 있다. 하나는 물을 버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을 사용해야 하니 물을 떠 놓으라는 것이다. 즉, 여기서 아내는 표면적 의미만 이해하고 심층적 의미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이것에 대해서는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전적 의미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대해 정리한 글이 있다.


그러면 이제 아내의 두 번째 주장도 반박해 보자. 의미가 두 가지 이상으로 받아들여질 경우에는 물론 더블체크를 해야 한다. 그때는 모르기 때문에 물어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의미가 두 가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물어볼 수가 없다.


여기서 "모르면 물어본다"에서 "모른다"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맥락에서 모른다는 것은 다양한 것 중에 어떤 것인지 모른다거나, 어떤 걸 해야 할지 모를 때 사용한다. 그러나 잘못 알고 있을 때, 잘못 받아들이고 있을 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아내의 말에 반박하기


말도 안 되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위의 대화 상황에서 진짜로 아내가 화를 냈다고 해보자. 그리고 아내가 화를 낸 이유가 위와 같이 두 가지라고 해보자.


1. 나는 버리라고 한 적이 없다

2. 모르면 물어봤어야지


여기에 대해 남편은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1. 왜 화내고 그래. 그래서 내가 음식을 망쳤어?

2.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리고, 상대방이 잘못 받아들였으면 그렇다고 알려주면 되지 왜 화를 내?

3. 모르는데 어떻게 물어보냐? 그 "모른다"가 여기서 쓰는 모른다가 확실해?


바른 대화의 자세란 상대방이 잘못 받아들였을 때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받아들였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평소부터 자신의 대화 습관을 되돌아보도록 하자. 만약에 위의 상황과 같이 별 것도 아닌데 평소에도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라면 심각한 성격적 결함이니 고쳐야 한다.




자기 중심적 대화의 또 한 가지 특징


이번 포스팅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자기 중심적 대화의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말을 확대해석하고, 상대방이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상대방의 말에 왜곡하여 부여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상대방의 의도가 아니라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실제적인 예 중 하나가 바로 상대방의 의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꼬투리를 잡고 시비를 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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