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하지 않기로 결심하다
요즘 내 관심사는 오해에 대한 것이다. 왜 우리는 오해를 하는가, 그리고 오해를 한다면 오해하게 만든 사람이 잘못인가, 오해를 한 사람이 잘못인가이다.
오해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해야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그래도 오해에 누구의 잘못이 있는지 이야기하자면, 말하는 사람의 잘못과 듣는 사람의 잘못이 있을 것이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해가 있다면, 말하는 사람이 오해하게 말했든지, 듣는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려고는 마음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적 이유를 비롯하여, 지성적인 문제, 시간의 부족, 갑질의 습관, 남을 이해할 여유가 없는 특별한 상황 등 오해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오해는 말하는 사람이 제대로 전달을 못했거나, 듣는 사람이 제대로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오해가 많이 일어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수신자를 배려하지 않는 너무 일방적인 문화에서 오해가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또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특히 오해를 많이 한다.
그렇다면, 오해가 일어났을 때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사실상 이것이 최근의 관심사이다. 왜냐하면, 주변에서 서로 오해하는 걸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높은 학위를 가진 지성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오해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즉, 오해는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성이 있어도 오해를 일으키고, 지성이 있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봤다.
미국 칼빈신학교에서 공부했을 때는, 칼빈신학교 내 한인들 사회가 굉장히 눈치를 필요로 했다. 누군가에게 비난할 때조차 직접 대놓고 이야기하기 않았고, 앞에서는 웃지만 뒤에서는 욕하는 것이 많이 들려오곤 했다. 비난조차도 돌려서 했기에, 듣는 사람이 눈치껏 알아들어야 했고, 거절하거나 비판할 때에도 돌려서 이야기해야 했다.
왜 직접 물어보지 않고 혼자 의미부여 하면서 뒤에서 욕을 하는 걸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높은 학위를 가진 (일부) 사람들의 문화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거 같다. 너무 똑똑하다 보니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높은 지성을 가졌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에 담긴 의도가 무엇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의 말에서 쉽게 뉘앙스를 포착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 안에서 살 때에는 모든 말에 뉘앙스를 담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했었다.
그런데 아무튼 똑똑해서 쉽게 다른 사람의 말에 의미부여를 하는 사람들은 잘못 의미부여하여 오해하는 경우가 참 많긴 했다. 의도하지 않은 뉘앙스를 가지고 잘못 의미부여하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가난한 신학생들인 동기들에게 <수익을 얻는 방법>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돈없는 신학생이 미국으로 유학까지 온 게 아닌가? 그러니 수익을 얻어보라고 설명을 해준 것인다. (심지어 이를 위한 투자금도 없었다. 그냥 개인이 해보라며 노하우를 알려준 거다.) 그런데 심성이 꼬인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자랑으로 받아들여 뒤에서 그렇게 욕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가, 평범한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니 너무 쓰잘데기 없는 곳에 정신력 소모를 벌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상대가 의도하지 않은 것까지 파악하려고 심력을 쏟기보다, 직접 묻는 게 오해를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왜 이렇게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 걸까? 돌려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여러 번 보게 되면서 참 많이도 고민했던 거 같다.
그렇다면 오해가 일어날 만한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전에는 자신만만하게 판단하고 정죄했다. 하지만, 실제로 너무도 확실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나의 오해인 경우가 꽤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방식을 다르게 하기로 결심했다. 이 방법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착한 사람이 되기로 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오해하게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직접 듣기 전까지는 오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사람의 의도가 정확히 파악되기 전에는, 아무리 의도가 빤해 보여도 좀더 참아보기로 한 것이다.
아래의 링크를 보면, 호구삼는 사람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쉽게 가스라이팅하고 남을 호구 삼는 사람들이 꽤 많다. 특히나 처음부터 편하게 해주면 쉽게 보고 호구 삼는 인격 쓰레기들이 참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대할 때, 호구 당하지 않게 처음부터 세게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나중에 호구 당하더라도 처음에는 일단 호의로 대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미국에서 연락이 왔다. 벌써 2년이 넘어가는데도, 칼빈신학교에서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준 게 기억이 난다며, 그 이후로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친절을 받아보지 못했다며 감사하다는 연락을 받았던 거 같다. 이상하게 똑똑한 신학생들 중에는 "먼저 친절하게 대해주면 손해를 본다"는 마음가짐이 있는 거 같다. 호구잡는다는 거다. (그리고 실제로 호구 잡는 사람들이 있고, 나도 당했다.)
즉, 내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호의를 먼저 보이는 것이다. 이 호의를 권리로 알고 호구 잡는 사람이라면, 즉 호의에 악의로 반응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이다. (그때는 이제 관계를 끊으면 된다.) 그러나 호의에 악의로 반응한다고 생각하고 애초에 호의를 보이지조차 않는 건 내 역할을 하지 않는 거라는 것이다.
오해도 마찬가지다. 일단 내 편에서는 먼저 오해하지 않기로 한다. 상대방이 정말로 오해의 사람이라면, 그때 움직아면 된다. 상대방이 오해의 사람일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해서 반응한다면, 즉, 상대방을 오해하기로 내가 먼저 마음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단 내 입장에서는 먼저 상대방에게 신뢰를 줘보고, 깨지면 그때 반응하면 된다. 미리부터 신뢰가 깨질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