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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Nov 28. 2023

[짧은 일상] 우울이 담긴 우물

 어릴 적에는 아빠가 참 큰 산처럼 느껴졌다.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산이었던 아빠의 품에서 나는 어느새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내가 크고 나자 아빠의 산이 낮게 느껴졌다. 아빠는 이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나에게 묻곤 한다. 가끔 귀찮다고 투덜대면서도, 내가 아빠에게 해줄 수 있는 일들이 있음이 감사하다. 내가 아빠에게 받았던 다정을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 감사하다. 아빠는 무척 다정한 사람이었다. 글이라는 글은 다 좋아했던 나를 위해 아빠는 퇴근 후 밤새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나중에는 아빠도 나도 둘 다 꾸벅꾸벅 졸면서 동화책을 읽고 있었단다. 어디든 갈 때면 신발까지 신겨주고, 집 앞을 나가도 마중을 나왔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딱딱한 음식이 먹고 싶다고 보채는 나를 위해 음식을 씹어 먹여주기도 했다.


 우리 사이가 조금 틀어졌던 시기도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사춘기가 내게도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의 사춘기는 하필 아빠와 엄마의 치킨집이 불황을 겪던 시기와 겹쳤다. 그 시기 우리 가족은 모두 마음에 여유를 잃었다. 많은 돈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불행이 따라오고야 만다. 다행히 짧은 어려움 끝에 우리는 잃었던 여유를 찾았지만, 그때 서로에게 입힌 상처는 희미하게나마 흉터로 남았다. 그 흉터는 결국 아빠와 엄마가 각자의 길을 걷도록 만들었다. 


 아빠에게 우울증이 찾아온 건 그 모든 일이 지나고, 내가 막 직장에 적응하던 때였다. 아빠의 우울증은 잔물결이 아니라 폭이 넓고 크게 치는 파도였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아빠의 마음을 삼켰다. 아빠가 처음으로 우울증에 대해 고백했을 때,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릇된 편견이지만, 나는 남자들은 감정이 무딘 줄로만 알았다. 더군다나 세상의 풍파를 모두 경험해 본 중년의 남성이라면 어지간한 일에는 흔들림이 없을 줄 알았다. 아빠 앞에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지만, 상상해보지 못한 상황에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럴 때, 엄마와 아빠가 함께하고 있었더라면 조금은 나았을까, 하는 의미 없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부모님이 이혼한 사실이 나의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구태여 주변에 알리지는 않았지만 말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숨기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몇 번 정도, 사람들의 당황하는 얼굴을 마주한 뒤로는 말을 아끼고 있다. 괜스레 어색해하는 얼굴들을 보는 것이 나도 어색해졌기 때문이다. 


 아빠의 우울증도 내게는 그런 일이었다. 듣는 이의 낯선 표정을 보는 것이 나 역시 생경해서, 말을 아끼게 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하나다. 아빠가 원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당신과 같은 일을 겪는 사람에게 당신의 고백이 한 줌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랐다. 아빠는 꾸준히 병원을 다니고, 또 독서를 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마음의 병을 이겨냈다. 어른들의 인스타그램인 카카오스토리에 일기를 쓰기도 했다. 나는 좀 더 자주 아빠와 통화를 하고 아빠에게 책을 선물했지만 결국 모든 것은 아빠가 혼자서 해낸 일이다.  


 요즘 사람들에게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처럼 '흔한 병'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흔한 병'을 극복한 아빠가 자랑스럽다. 정신과에 가는 것이 금기처럼 여겨지던 시대를 살았던 아빠가 스스로 병원을 찾고, 그 사실을 타인에게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다. 


 아빠는 아직도 마음속에 우울이 담긴 우물이 있다고 말한다. 아빠가 그 우물 속에 우울을 담으며 긴 사막을 막 빠져나갈 때가 돼서야, 아빠의 양분을 먹고 자란 나는 그 사막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언젠가 다시 깊이 담아둔 우울이 넘쳐 아빠를 찾아오더라도 이제는 내가 함께 아빠의 사막을 걸어가려 한다. 마지막으로 아빠의 고백이 담긴 글을 아래 붙이며 글을 마친다. 




 그 누구보다 당당하고 자신감이 차오르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이렇게 초라하게 나 자신을 깎아내리고 측은하게 느끼기까지 20년이 흐른 47살에 나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우선은 이런 글은 쓸 수 있게 되기까지 힘든 과정을 거쳤음을 말하고 싶다. 숨을 쉬기조차 힘든 순간순간들이었다. 27살에 나는 사랑하는 여자와 꿈같은 결혼을 하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결혼생활과 사업을 동시에 해나가는 너무나도 멋진 청년이었다.


 그랬기에 이렇게 슬프고 힘든 시간들이 나에게 밀려 오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내 일들이 너무나 즐거웠다. 사랑하는 그녀와 두 딸이 함께였기에 난 뭐든지 할 수 있었고 또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본 어느 영화감독의 말처럼, 불행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이혼이라는 사건을 겪고 몇 년 뒤, 내게는 우울증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처음 겪어보는 병에 한동안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허나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내 사랑하는 두 딸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권의 책을 읽었고, 병원에서 전문가의 도움도 얻었다. 딸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병을 치료하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너무도 긴 사막을 지나왔다. 홀로 문이 없는 긴 사막을 지났다. 


 이제는 그 사막에서 나왔지만 아직도 내 안에는 우울이 담긴 우물이 있다. 그 우물 속에 우울을 깊이 담아두고, 힘차게 걷는 중이다. 예전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무조건 멀리하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부정적인 감정도,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안다. 그 감정을 끌어안고 살아야 할 나이가 됐다. 힘든 시간을 버텨온 나 자신과, 나를 도와준 딸들에게 고맙고 대견하다. 오늘도 어느 책에선가 보았던 말을 되새긴다. 걱정은 아무것도 치유하지 못하며 상황을 좋은 쪽으로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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