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델리에서 만난 나빈
INDIA.
인생에서 한 번은 꼭 가야 하는 나라.
오래도록 인도는 내게 하나의 숙제와도 같았다.
어릴 적 책장에 꽂힌 몇 권의 책이 내게 말했다.
인도에 답이 있어.
류시화 작가의 책을 읽으며,
한비야 작가의 책을 읽으며,
미디어를 통해 바라본 인도의 모습은
명상, 요가, 신,··· 등으로
영적이며 달관적인 세계로 나를 이끌 것만 같았다.
인도에 대한 이미지를 비롯해
사람들이 여자 혼자서 가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인도를 다녀온 이들을 둘러싼 양극의 원인이 궁금했다.
어릴 적부터 마음 한구석에 있던 호기심은
인도에 대한 갈망이 되어
나를 인도로 이끌었다.
착륙한 비행기에 내려 인도에 발을 디딘 순간.
가슴이 콩닥거린다.
가보지 않은 인도지만,
이미 수많은 이미지로 채워진 이곳을
실제로 왔다는 사실은
나를 가슴 설레게 한다.
걱정하는 주위의 반응과
인도를 욕하는 인터넷 반응은
가슴을 더욱 떨게 만든다.
수많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을까?
노숙자가 나에게 다가오려나?
길거리 냄새는 얼마나 고약하려나?
미디어로 만들어진 인도 이미지로 펼쳐진 온갖 상상 앞에서
델리 공항의 쾌적한 풍경은
인도를 향한 모든 물음을 차단한다.
'뭐야. 깨끗하잖아.'
예상보다 쾌적한 델리 공항은
내가 가진 인도에 대한 편견을 알려준다.
'지금까지 미디어를 통해 알아 온 인도를
인도라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지.'
인도와 나는 소개팅 첫 만남에서
수줍게 서로에게 인사한다.
'인도님, 제가 섣부르게 판단해서 죄송해요.'
"괜찮아요."
인도는 말끔한 모습으로 대답한다.
그러나,
그는 두 번째 만남에서 완전히 다른 태도로 변한다.
끊이지 않는 경적,
경적이 없는 적이 없다.
구걸하는 어린아이들,
심지어 나의 다리를 붙잡고 돈을 달라고 한다.
계속해서 말 거는 미친 사람,
힌디어도 아닌 모르는 언어로 졸졸 따라온다.
사라지지 않는 쓰레기 냄새,
음식을 만드는 식당에서도 난다.
고약한 더운 날씨까지.
델리의 지하철을 나서는 나의 발을 잡고
돈을 요구하며 간절하게 쳐다보는 아이처럼
수많은 어린아이는 구걸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길거리 천막에서 지낸다.
아무렇지 않게 거리에 쓰레기를 던지고,
길바닥에서 자는 것이 일상이다.
그들의 옷은 찢어져 있는 게 기본이며
혼란한 도로 위 경적은 빠질 생각이 없다.
두 번째 소개팅 날.
후줄근한 차림의 인도가 내게 미소 짓는다.
그에게 말한다.
"지금 제게 돈 달라고 미소 짓는 건가요?"
나에게 웃으며 구걸하는 수많은 이들은
인도가 보인 미소마저
돈을 요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첫 만남 때 가진 인도의 인상은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진다.
소개팅을 갖기 전에 정한
인도와의 한 달간 만남을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내가 인도에 가진 환상은 무엇일까.
나는 인도를 사랑할 수 있을까.
마치 이상한 나라에 온 정상인은
정상이라고 생각한 모든 게 결코 정상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듯이
델리는 내게
당연하게 자리한 삶의 기본 요소가
결코 당연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바닥에 앉지 마세요.'
'지하철에서는 음식을 먹으면 안 됩니다.'
'손을 씻어야 합니다.'
'···'
누구에게나 상식이라고 여겨지는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문구가
금지 팻말로 명시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남몰래 놀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교과서로 배울법한 문구가
내가 그동안 살아온 배경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여긴 규칙이
어떤 사회에서는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델리의 충격은 그동안 살아온 규칙 밖으로 나를 끄집어낸다.
틀 밖에 선 나는 새로운 시각으로 틀을 바라본다.
이상한 나라의 정상인은 생각한다.
'이곳에서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잖아.
정상이란 없구나.'
"데이지, 이거 먹어봐."
말끔하게 빼입은 정장을 벗으며 드러난 인도의 다른 모습은
소개팅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혼돈의 도가니에서 정신 차리지 못하는 나를 위해
델리 호스트 나빈은 라씨를 건넨다.
지금껏 보지 못한 델리의 더러운 거리와
코를 찌르는 오물 냄새를 도망쳐
달달한 라씨 세계로 목을 축인다.
"델리에서 가장 유명한 라씨야."
올드델리의 뜨거운 태양 아래
라씨 가게 옆 돌멩이에 쭈그려 앉아 먹은 라씨는
웃음을 지으며 그래도 인도도 좋은 점이 있다고 말한다.
"나빈, 이 라씨 최고다.
나를 위로해 주는 만병통치약이야."
델리에서 만난 호스트 나빈은
그 뒤로도 나를 위해 매일 라씨 가게에 데려다준다.
45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와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한 델리 거리에서 나는 악취,
우중충하기 그지없는 델리 날씨 속에서
라씨는 나에게 의지처가 된다.
고작 300원 하는 라씨를 먹으며
누구보다 행복해하는 내 모습에
나빈은 아빠 미소를 짓는다.
나빈과 나는 올드델리를 함께 거닌다.
골목 상가 사이로 올라오는 화장실 악취와
찌는 듯한 더위로 열사병이 날 것 같은 날씨,
밀치고 지나가는 막무가내 상인들은
여전히 내게 충격을 주지만,
나빈을 따라 걷는 움직임은 조그만 위로가 된다.
시크교 절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를 위해
우린 시크교 절에서 무료 시식을 체험하고,
힌두교 절에 기도를 올린다.
나빈은 델리 곳곳에 나를 데려가
충격에 휩싸인 내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짓는다.
델리 위에 있는 지붕 없는 미용실, 치과, 과일가게를 가리켜 나빈은 말한다.
"저 사람들은 경찰이 단속을 오면 돈 조금을 쥐여주면서 유지하는 거야."
길 위에 모든 것이 다 펼쳐지는 델리에 놀라움을 멈추지 못하는 내게 나빈은 말한다.
"경찰은 도둑이야. 그들을 믿으면 안 돼."
경찰은 시민을 지켜주며,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온 나는
그의 말을 흥미롭게 듣는다.
"정치는 시간 낭비야.
코로나 시절을 생각해 봐.
사람들은 정부에서 하라고 하니까 체온을 맹목적으로 재는 거야.
한 번은 체온을 재는 사람에게 내 체온이 얼마냐고 물으니까, 본인은 모른다고 대답하더라.
그냥 하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체온계를 재는 척만 하는 거지.
정부에서 마스크를 쓰라고 공표했지만, 사실 마스크를 쓰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없어.
실제로 병원에서 마스크를 쓰고 지내면서도 병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잖아."
흥미롭게만 듣던 그의 생각을 들을수록
혼란스러운 인도 거리처럼
머릿속에 낯섦이 소용돌이친다.
"역사, 정치 이야기는 애당초 아예 안 보는 게 나아.
결국은 모두 자기에게 유리하게 쓰이기 때문이야.
정치인들, 경찰들은 다 도둑이라고."
인도를 처음 보고 느낀 충격과 낯섦은
나빈과 대화를 통해 증폭된다.
올드델리를 빠져나와 우리는 근처 공원을 걷는다.
혼돈의 하루를 보낸 나에게 공원은 그나마 편안한 느낌을 준다.
원숭이가 나오는 공원을 걸으며 나빈은 내게 경고한다.
"데이지, 원숭이들은 아이폰을 좋아해.
특히나 너의 아이폰을 조심해야 해."
그를 철썩 믿고 아이폰을 사수하려는 내 움직임에
그는 대폭소를 터뜨린다.
"그걸 믿는 거야?
원숭이가 물건을 가져가긴 하지만,
아이폰을 어떻게 구분하겠어!
푸하하."
알 수 없는 이 남자를 보며 생각한다.
'알쏭달쏭한 나빈.
이해되지 않는 인도 델리의 거리 같다.'
우린 델리의 낡은 상가에 들어가 라씨로 달달함에 취하고,
영화 촬영지에서 한참을 앉아 멍을 때린다.
"데이지, 저기 봐봐."
그저 멍하니 저수지를 바라보는 내게
나빈은 하늘 위를 비행하는 매와,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다람쥐를 가리킨다.
"하늘을 보면 광활한 매의 날갯짓이 보이고,
나무를 보면 숨어서 도토리를 까는 다람쥐가 보여."
오로지 눈앞의 것만 바라본 나는
주위의 풍경을 예리하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배운다.
우린 함께 공원을 걷고,
힌두교, 시크교 절을 방문한다.
한국 광화문을 거닐 때처럼
델리 중심가를 거닌다.
델리 곳곳의 매력을 흠뻑 마신다.
"남부 인도는 델리와 완전히 달라.
다른 국가야. 남부인과는 의사소통도 못 하는 걸!"
인도라는 이름으로 한 국가로 명칭 되었지만,
넓은 대지 위에서 인도는
다민족, 다언어, 다문화 가졌다.
한국인으로 전라도, 강원도, 제주도 등
어느 지역에 살아도 같은 국가의 사람이라고 으레 생각해 와서일까?
같은 국가로 묶여도, 다른 지역을 다른 국적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가 신기하다.
같은 국가여도 서로를 다르게 생각할 수 있구나.
이제껏 생각하지 못한 사고를 발견한다.
새로운 사고는 나의 사고를 넓힌다.
하루는 방에서 홀로 델리 여행 계획을 세우는 날이다.
친구에게 추천받은 델리 절에 가려고 하지만,
거리와 시간이 맞지 않다.
시간에 쫓기듯이 델리 명소를 가야 한다고
머리를 싸매며 전전긍긍하는 내게 나빈은 말한다.
"데이지,
천천히 천천히.
그 절은 내일도 어디에 가지 않아.
모든 건 그대로 일 텐데, 왜 마음이 조급한 거야?
천천히."
어디에 가지 않는 절 앞에서
오늘 당장 가야 한다고 열을 올리는 나는 깨닫는다.
내 앞에 닥친 결정 사항을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조금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도 되는구나.
천천히 결정해도 되는구나.
나빈의 생각이 낯설며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와의 대화는 깊은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이 세상에 옳고 그름은 없다는 말처럼.
"데이지,
어제는 너를 못 봤는데,
오늘은 네가 보여."
어제 하루 종일 함께 델리를 걸었음에도
나를 보지 못했다는 그의 말은
여전히 알쏭달쏭하며
혼란스러운 델리의 거리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오늘은 내가 보인다는 그를 바라본다.
간판 하나 없는 가게,
사업자 등록도 되어있지 않은 가게에서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삶의 이유는
나이, 조건, 시간에 따라
변하는 법이야.
지금 내 삶의 이유는
행복을 위해서야.
라씨를 먹고, 요가를 하고,
문화 교환을 위해 인도 요리도 하고,
나중에는 자연에 아시람(ashram)을 만들어 사람들을 대접하고 싶어.
*아시람: 힌두교도들이 수행하며 거주하는 곳
인도에 대한 환상은 나빈과의 산책으로 온전히 부서진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빈은,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델리를 가득 채운 인도의 모습은,
한국에서 쭉 살아온 입장으로 바라본 인도는,
이해할 수 없는 오물 덩어리투성이지만,
그것을 오물 덩어리라고 생각한 내가,
내가 살아온 사회가 오물 덩어리라고 규정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동안 살아온 삶의 틀 밖에서 바라본 오물 덩어리는
또 다른 삶의 틀일 뿐이었다.
내가 살아온 틀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델리 거리 위에는
여전히 쓰레기로 가득하고
사람들은 구걸하며 다가오지만
조금씩 다른 시각을 선물한
델리를 사랑하고자 노력한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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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