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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Nov 04. 2024

굴곡 없던 내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어

인도 맥레오드 간즈에서 만난 채원호


"나에게는 친오빠가 있어.

세계 일주를 떠나기 전에 오빠가 걱정하면서 말하더라.


'네가 1년간 세계여행을 통해 인생의 모든 재미를 다 볼까 봐 걱정돼.

돌아와서 삶의 낙을 잃어버릴 수 있잖아.'


여행을 시작한 지 100일이 되었을까,

오빠의 걱정이 괜한 소리였다는 걸 깨달았어.


세계는 넓고, 다양하며, 광활해.

내가 몰랐던 새로운 공간에 발을 들이면,

발을 딛는 곳을 시작으로 몰랐던 새로운 공간을 또 알게 되는 거야.


세상은 재미를 보면 또 다른 재미가 생기더라.

또 다른 재미를 보면 또 또 다른 재미가 생기고.


꿈도 마찬가지야.

내가 어릴 적 꿈꾼 순간을 이룬 순간 또 다른 꿈을 꾸게 돼.

꿈은 또 다른 꿈을 부르는 거야.


히말라야에서 일출을 맞이하며





도의 삶은 충격의 연속이다.

내가 살아온 틀 밖의 일들이 매 순간 펼쳐진다.


혼돈 속 인도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듯 살아가는 나에게 문자가 온다.



"저도 인도인데, 

되면 만날래요?"



네팔에서 만났던 천강오빠다.

히말라야 등반 전 함께 밥을 먹으며 인도 여행을 나누었는데,

마침 같은 루트로 인도에 있게 되었다.



빽빽 울리는 경적과 무더운 더위를 뚫고

인도 북부 지역, 하리드와르에서 천강오빠와 만난다.


정신없이 오가는 릭샤를 피해 손을 흔드는 천강오빠가 보인다.

반가움에 힘껏 손을 흔들며 오빠가 타고 온 툭툭에 오른다.


"안녕하세요."


원호 오빠 (왼쪽), 천강 오빠 (중간), 현서 오빠 (오른쪽)


 천강오빠와 함께 동행 여행 중인 다른 두 분과 인사 나눈다.


우린 하리드와르에서 리시케시(rishikesh)로 넘어가는 툭툭에서 

인도의 뜨거운 더위를 피해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인도 북부에 위치한 하리드와르(아래)에서 리시케시(위)로 툭툭를 타고 이동한다.

김현서와 채원호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두 사람도 세계여행 자이다.


세계를 여행한다는 사실에 나아가 인도에 적응 중이라는 공통점에

반갑고 들뜨는 기분을 감추지 못한다.


"사람들이 아무 곳에서 잠을 자고, 용변을 누고, 요리를 하더라고요."



"나는 거리를 걷는데 누군가 나한테 침을 뱉더라고. 살면서 침을 처음 맞아봐."


덜커덩거리며 이동하는 툭툭 안에서

그동안 인도에서 느낀 충격을 나누며

우린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다.



웃음꽃은 리시케시 숙소로 걸어가면서도 피어난다.



우연히 원호 오빠와 발을 맞춰 걷게 된 나는

원호 오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우린 리시케시 동네를 함께 구경했다.


원호 오빠는 인천해사고등학교를 졸업해 배를 타며 지내왔다.


배는 한번 타면 몇 개월간 배 안에서 단체생활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배에서 선장이 된 앞선 사람을 보며 미래의 자신을 비추었고,

자신도 늙게 되면 저들의 모습이 될 거로 생각했다.


"내가 배 타는 걸 그만둔 이유야."



미래의 자신은 선장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그에게 변화를 요구했고, 세계여행을 향한 발걸음이 되었다.



저마다 삶의 파노라마에서 세계여행을 시작하고,

이 순간, 인도라는 한 공간에 모이게 된 우리를 바라본다.


"인연이란 건 참, 신기하고 감사한 거야."


리시케시 래프팅을 하며 갠지스강에 행복을 적셨다.


원호오빠의 제안으로 시작한 래프팅에서 

우리는 다 함께 인도의 더위를 날린다. 


자연 워터파크에 온 채로  갠지스강에 빠져 리시케시의 공기를 음미한다. 

힘껏 갠지스강을 수영하고, 누워서 뭉실뭉실 떠오른 구름을 바라본다.

함께하는 이들과 같은 행복을 공유하고, 웃음을 나눈다.



래프팅을 끝내고 우린 함께 마을을 둘러본다.


말없이 걷기도,

실없는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경적이 울리지 않는 인도를 신기해하기도 한다.


리시케시가 펼친 인도의 아름다움을 걸으며

누군가 말한다.



"이런 게 여행이지."









다음날,

원호 오빠, 현서 오빠와 함께

인도 히말라야 마을인 맥그로드 간즈 여정에 오른다.


짜이를 한 잔씩 걸치며 버스를 기다리며 묻는다.


"인생에서 욕심을 부렸던 적,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적은 언제야?"


수능을 이야기하는 현서 오빠 뒤로

원호오빠는 대답한다.


"나는 무언가를 위해 투쟁한 적이 한 번도 없어.

내 삶은 굴곡 없이 언제나 부드러웠어.

다른 말로 하면 무언가 뜨거운 거 없이 미지근한 삶을 살아온 거지.

굴곡 없던 내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어.

그래서 여행을 시작한 거야."


해사고를 나와 항해사 현장실습생으로 30만 원을 벌던 그는

정강이 맞으며 일을 배웠다.

배 안에서 오랫동안 지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딱히 활동적인 취미를 가질 수도 없어 시작한 게임은 그가 가진 취미의 전부다.


그의 삶을 미지근하다고 표현해도,

나는 여행하는 줄곧 그에게서 풍긴 배려심을 언급한다.


"오빠는 여러 사회생활을 통해 몸으로 배려심을 배웠잖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적당히 감출 줄 아는 모습이 있어.

난 오빠의 그런 모습을 본받고 싶어."


히말라야의 작은 티베트 맥그로드 간즈 툭툭을 타고 이동하며


맥그로드 간즈에 위치한 히말라야, 트리운 등반에 오르는 날.

수박과 토마토를 준비해 당차게 히말라야에 도전한다.


히말라야를 불사하고 등반을 하지 않는다며

걱정하는 원호오빠에게 말한다.


"대학 산악부 선배가 나한테 말하곤 했어.

예진아, 길이 아닌 것처럼 보여도, 

우리가 가는 곳이 곧 길이야."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말하는 나에게 오빠는 웃음 짓는다.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산에서 불어오는 공기, 

나뭇잎의 찬란함, 

지저귀는 새소리가 

우리를 감싼다.



한참을 오르는 중,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비는 곧장 우박으로 바뀐다.


예상치 못한 날씨 변동에 준비가 되지 않은 우리는

쫄딱 젖은 생쥐 꼴이 된다.


덜덜 떨며 정상에 도착한 우리는 우박을 피한다.

이미 옹기종기 사람들로 꽉 찬 나무판자 집 안에서

짜이 한잔으로 몸을 녹인다.


비를 피해 온 한 아지트에서


날씨로 인해 히말라야 설산은 보이지 않는 상황.

원호 오빠는 내심 아쉬워하며 내려가지 못한다.


언제나 미지근한 삶을 살아온 원호 오빠에게서

히말라야 설산을 보고자 하는 의지를 보고 내심 미소 짓는다.


원호 오빠는 굴곡 없는 삶에서

변화를 원하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뚜렷한 목적 없이 지내오던 삶에서

한 번도 올라보지 않은 2,975m 정상에 서 있다.


"설산을 보지 못해도, 올랐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네."


추운 날씨로 현서오빠는 반 영혼이 나가 있어

조금 더 기다려 설산을 지켜볼지, 내려갈지 고민하다

내려갈 준비를 하는데,


갑작스레 비가 갠다.



웅장한 히말라야 설산이 보이기 시작하며

산 능선의 장관이 펼쳐진다.



바다가 없는 내륙지방인데도,

펼쳐진 히말라야의 모습은

아름다운 물결이 펼쳐지듯이

저 멀리 바다 지평선이 보이는 착각마저 들 정도이다.



추위를 견디며 남아있던 우리는

히말라야가 주는 깜짝 선물에 힘껏 행복해하며

정상의 기쁨을 즐긴다.


등산로를 내려오며

우린 여행 이후의 진로에 대해,

앞으로 미래에 관해 이야기 나눈다.


비가 갠 트리운 산은 없던 먼지마저도 가라앉게 했는지

청명한 공기가 드러나고,

비를 피하던 꾀꼬리도

다시 지저귀는 새소리는 울린다.



히말라야의 설산을 바라보며

우리는 서로 웃음을 공유한다.


그리고, 원호 오빠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원호오빠와 히말라야 트리운에서
사실, 크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 
그 순간 재밌어 보이는 걸 하고, 
그 순간 즐거운 쪽을 선택하는 편인데, 
그렇다면, 내 삶의 이유는 재미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일생에 한 번도 도전하지 않던 히말라야 등반.

2,975m 정상에서 원호 오빠는 말한다.


누군가 내 삶을 재미없고, 무난하다고 하더라도

난 그 순간의 즐거움을 향해 나아가는 거뿐이야.




트리운 산맥은 수많은 히말라야산맥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날 트리운 산맥은

우리에게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와 다름없었다.





# 인도, 뒷 이야기


인도 암리차르 황금사원에서 우리는 함께 노숙을 했다



"인도 여행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뭐야?"


'영어 실력의 향상'을 말하는 현서오빠 뒤로 나와 원호오빠는 동일하게 '무관심'을 말한다. 


"사람에게 적당하게 무관심 주는 법을 배웠어. 특히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히 거절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그리고 나에게 둘 다 득이 된다는 사실을 느꼈지."



이후, 암리차르까지 같이 여행한 우리는

황금사원에서  작별인사를 한다. 


인도에서 만나 오빠들과 함께 여행을 한 순간이 스쳐간다. 



괜스레 자고 있는 오빠들에게 손짓으로 인사하며 섭섭한 마음을 달랜다. 


한국에서 만났다면 그저 옷깃을 스쳤을 인연은

인도라는 나라에 같이 여행을 왔다는 이유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눈다. 

늦은 밤 맥주를 건배하는 사이가 된다.


여행도 결국 사람과 함께 하는 거구나. 

결국은 사람과의 여행이구나.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낀다. 



인도라는 곳에서  

함께 놀라고, 인상 찌푸리며, 충격 먹던 추억을 정리하고

각자의 길로 나가겠구나. 


인도에서 함께한 오빠들 덕분에 


조금씩 마음을 열고 반말하며 거리가 가까워지는 법,

서로 배려하며 함께 여행하는 법,

각자 원하는 걸 존중하고, 옆에 있어주는 법,


그리고

함께 추억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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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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