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맥그로드간즈에서 만난 호르캉
티베트 박물관에서 해설하던 중 스님 호르캉은 내게 묻는다.
"이름이 뭐야?"
"데이지요."
"데이지는 어디 있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여기요."
"그건 피부 조각에 불과한 거 아니야?
데이지는 어디 있니?"
"(내 가슴 속마음을 가리키며) 이 속에 있나 봐요."
" 눈에 보이지 않는데?
그걸 데이지라고 할 수 있니?"
소크라테스 문답법같이 연신 퍼붓는 그의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 자신은 어디 있는 거지?
내 가슴속에 보이지 않는 곳에?
그걸 나라고 할 수 있나?
내 몸뚱어리는?
진정한 나는, 이 모든 걸 통틀어서라고 말할 수 있나?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당황해하는 내게
스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면 내게 연락해 줘."
*해당 인터뷰 내용은 티베트 망명정부의 공식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름에도 녹지 않는 히말라야 설산 너머
다람살라(맥그로드 간즈)에 종소리가 울린다.
은은하게 퍼지는 소리는
티베트 불교의 평화를 알리는 듯하다.
네팔에서 인도로 넘어와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온종일 경적을 울리는 수도 델리와 달리
평화로운 물소리가 이곳을 가득 채운다.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 봉기를 강압적으로 통치한 뒤,
달라이라마는 인도 다람살라로 망명해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웠다.
곳곳에 보이는 티베트 국기는 인도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람살라가 인도의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이유다.
달라이 라마가 수행하는 남걀 사원은 이른 아침부터 수행을 올리는 스님으로 가득하다.
티베트 불교도에게 얼마 남지 않은 성지 중 하나인 남걀 사원은 평화로운 새소리로 가득하다.
마음의 평온과 함께 조용히 사원을 둘러본 뒤 티베트 박물관으로 향했다.
지도와 다른 길이 등장해 지나가는 승려에게 길을 물으니 같은 방향이라 답했다.
호르캉이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승려와 나는 발맞춰 걷기 시작했다.
“자비는 가장 중요한 가치예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선행을 베푸는 것이 중요하죠.
군인이었을 때는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때리는지를 가르치는데,
달라이라마를 만나 자비가 무엇인지를 배웠어요.”
군인이던 스님 본인은 달라이라마를 만난 뒤 새 삶을 시작했다.
사람을 포용하고, 손길을 나누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진정으로 사람을 돕고 싶다면 내 안의 부정적 감정을 지워야 하며 무지를 깨달으라고 말한다.
자비와 인내를 전하는 그의 얼굴에서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다.
휘둥그레 놀란 눈으로 그를 봤다.
그는 길 위에 살랑이는 티베트 국기를 지나쳐 이야기를 이어갔다.
평화로운 티베트를 되찾기 위해
1980년에 태어난 호르캉 승려는 태어날 때부터 시민권이 없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티베트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시짱(西藏) 자치구였기 때문이다.
그는 5살일 때 가족과 함께 네팔을 거쳐 인도 다람살라로 넘어왔다.
졸업 후 그는 국경을 지키는 인도 군인이 되었다.
그는 다른 군인과 마찬가지로 즐기며 삶을 보냈다.
우연한 기회에 달라이라마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고,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을 통해 출가를 다짐했다.
고기도 끊으며 티베트 불교 교리를 따라 그는 자신을 훈련했다.
'적도 우리의 스승'이라는 가르침 아래 자신의 말과 행동에 규율을 넣었다.
그렇게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 2021년 승려가 되었다.
“내가 승려가 된 이유는 간단해요.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죠.
나의 고통이 아니라,
다른 이들은 어떻게 고통받는지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망명정부를 지나 티베트 박물관에 다다른다.
티베트 독립운동의 투쟁을 바라보며 그는
중국이 자비를 갖고 티베트와 함께 평화로워지는 소망을 꺼냈다.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국가는 없었어요. (My country is gone)
저는 시민권도, 국가도 없었지요.
방도, 음식도 좋지 않은 형편이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고국(Home)이 없으니까요."
호르캉의 말을 듣고 나는 큰 충격에 빠졌었다.
언제나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내게
'태어나니 국가가 없다'라는 개념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국가 없이 태어난 그가 겪어온 허망함을 그저 상상할 뿐이다.
허망 속에서 대가 없는 나눔을 외치는 자비 정신을 존경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국가를 되찾을 책임을 졌어.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티베트가 평화롭기를 원하고,
달라이라마가 티베트에 돌아가기를 원해."
그는 티베트 독립의 투쟁이 아니어도,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평화를 이루기를 희망했다.
망명 정부 아래에서 자비를 외치며 살아가는 호르캉,
그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 삶의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에요.
21세기에 태어난 우리는 이전 세대가 물려준 것들을 받으며 살아왔어요.
저는 21세기 티베트인으로 태어났죠.
그 상황에서 전 평화로운 티베트를 찾을 책임을 졌어요.
중국과 평화로워지기 위해 기도하고 싶어요.”
망명 초기, 티베트는 중국으로의 독립을 요구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티베트의 실질적 자유와 자치 보장을 요구한다.
훗날 달라이라마와 함께 평화로워진 티베트로 돌아가기를 꿈꾸는 호르캉.
그는 사랑이란 '다른 이의 고통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하며, 기도하는 것'이라 덧붙인다.
사랑과 자비를 통해 평화로워진 티베트를 꿈꾸며 그는 오늘도 기도한다.
우린 박물관을 나와 티베트 절로 들어간다. 스님은 나직이 푸자를 읊으며 기도를 시작한다.
작은 티베트에 울리는 것이 푸자 소리는 티베트 승려의 인내와 사랑을 알린다.
매일 울리는 것이 푸자 소리가 히말라야 넘어 티베트에도 닿기를 기도했다.
세상엔 수없이 많은 삶이 존재하고,
믿음과 종교가 존재하며,
사랑과 증오가 존재하며,
돈과 베풂이,
짜증과 무시,
이해와 논쟁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오늘도 해는 뜨고
인도의 경적은 울린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더 많이 사랑해야지.
이 세계를 느껴야지.
세상의 자유를 ···.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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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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