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암리차르에서 만난 싱
여행은 스케치이다.
여행을 통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그린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그린다.
여행을 통해
나를 그리고,
나의 삶을 스케치한다.
여행은 스케치이다.
'향기로운 넥타의 연못'이라는 뜻의 암리차르에는
죽기 전에 봐야할 건축물인 황금사원이 있다.
14세기, 시크교 창시자 구루 나나크 데브가
암리차르 호수에 와 명상을 하며 황금사원의 역사가 시작된다.
도금으로 번쩍이는 절 안에 있으면 찬란하게 빛나는 금에 금방 압도된다.
황금사원을 바라보며 보내는 밤.
딱딱한 내부 바닥에 온전히 잠에 빠지지 못해 새벽을 마주한다.
황금사원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내뿜으며
새벽 기운은 황금사원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사원 주위를 빙빙 돈다.
어느새 밝아진 새벽.
다시 델리로 돌아가기 전
사원에서 나눠주는 무료배식으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자 한다.
사원의 긴 통로에서 배급소를 찾는 중에
사원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에게 묻는다.
"배식소에 가려는데, 어디로 가야하나요?"
"저는 경호원이 아니에요.
그치만, 배급소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니르바이르 싱(Nirvair Singh)이라 자신을 소개한 그는
사원 안 경호원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는데,
본인도 시크교인이라며 시크교 터번과 긴 수염을 내보인다.
우리는 배급소로 가는 짧은 길에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찰나의 시간동안 그는 자신의 삶을 들려준다.
사진작가인 31살 싱은 황금사원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를 들고 황금 사원을 어슬렁거리다 우연히 사진 작가일을 시작하게 된 싱.
그는 건설 인부로 지내면서도
사진 한 장당 100루피(약 1,600원) 받으며 쏠쏠하게 삶을 살아간다.
어느새 도착한 배급소.
감사인사를 전하며 싱과 헤어진 뒤
배급소에서 짜이와 빵을 받아들고 나오는데
헤어진 같은 자리에서 그대로 서있던 싱은
나를 기다렸는지 내게 인사하며 말한다.
"데이지, 내가 사진찍어줄게."
"와! 싱! 너무 마음에 들어!"
그가 찍어준 사진을 바라보며 밝게 기뻐하지만
뭐든지 돈만 바라는 인도 사람들을 만나와서 일까,
그가 돈을 요구하는 건 아닐지 남몰래 의심한다.
나의 의심은 무색하게 그는 사진을 바라보며 말한다.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참 좋아.
행복하다고 해주어 고마워.
사진은 나의 선물이야."
그는 사진을 무료로 나눠준 것에서 나아가
델리로 돌아가는 버스정류장까지 나를 데려다 준다.
금세 친구가 된 우리는
버스 출발 전까지 함께 이야기 나눈다.
"행복은 간단해.
누구든지 내게 진정한 마음을 보이면 행복해.
온전한 시간을 쏟는거지.
슬픔도 간단해.
누군가 나를 이용하고, 속이면 슬퍼.
그게 다야."
사람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는 싱.
짙은 남색의 터번을 두르고 기다란 턱수염을 가진 이 남자는
타인의 행복을 통해 자기 행복을 바라본다.
우리의 삶은 곧 관계로 정의된다는 말도 있지만,
아침에 만난 낯선 이에게까지 과도한 친절을 보이는 싱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싱, 이렇게 친절하게 베푸는 이유가 뭐야?"
"카르마를 믿어.
사람들을 도와야지 다음 생도 좋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야."
느릿느릿 운전사는 버스에 시동을 건다.
헤어지기 전, 감사 인사를 전하며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삶의 이유라.
사실 큰 이유는 없어.
그냥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싶어."
다른 존재가 있기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함께 사는 삶과 연결된 삶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싱.
황금 사원을 나서며 만난 우연성이 가져다준 인연이자
찰나의 만남 속 선물이 된다.
그가 선물한 사진과, 친절은
델리로 향하는 버스 내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https://omn.kr/1p5kj : 오마이뉴스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