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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Nov 14. 2024

신은 에너지야

인도 아그라에서 만난 그라부




국가 재정을 긁어 22년 동안 건설하고, 여러 곳으로부터 보물과 공예, 미술품을 모아 만든 묘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Taj Mahal).


오늘날 전 세계에서 찾는 타지마할을 처음 본 것은 어린 시절, 한 엽서이다.

엽서 속 타지마할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자태를 내뿜고 있었고,

인도에 가게 되면 으레 가야 하는 곳이 되었다.



타지마할 볼 생각에 들뜬 모습


북부 인도 여행을 마치고 델리로 돌아온 뒤,

타지마할이 있는 도시, 아그라에 가기 위해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했다.


예정된 버스보다 미리 가 있기 위해 아침 일찍 정류장으로 나선다.

지하철역까지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하기 위해 내 위치를 설명해야 하는데

힌디어를 사용하는 운전사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급하게 대문 앞에서 아침 청소를 하는 이에게 부탁한다.

전화를 넘겨받아 운전자에게 장소를 설명하던 그는 택시 기사가 취소했다는 말을 전한다.


그는 자신의 폰으로 오토바이 택시를 잡으려 하지만,

이른 아침 때문인지 네트워크가 연결되지 않는다.

괜찮다고 말하며 돌아가려는 내게

그는 함께 큰길까지 나와 툭툭를 잡아준다.



"툭툭 운전기사에게 30루피(약 490원) 이상을 절대 주지 마세요!"



그저 스쳐 지나갈 낯선 이를 위해 5분이 넘는 길을 함께 걷고,

툭툭를 타는 내게 조언을 마다하지 않는 그에게 괜스레 감사함을 느낀다.


Pexels에서 Engin Akyurt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9756572/


그의 친절함을 바람 삼아

버스가 출발할 거로 생각한 장소에 도착하였지만,

굳게 닫혀있는 사무실에 의아함을 느낀다.


버스를 놓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기 시작한 나는

이발소, 슈퍼마켓 등 닥치는 대로 열려있는 가게에 달려간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도 모르게 다급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질문을 하는 나에게

슈퍼마켓 점원은 침착하라는 말을 먼저 건넨다.


나름 미리 출발한 시간은 어느새 몇 분 뒤면 버스 출발 시작이 되었고,

내가 도착한 곳은 픽업 장소가 아닌, 픽업센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잘못된 선택으로 틀어진 계획 앞에서

시간 내에 픽업 장소에 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괜히 성질을 잔뜩 부린다.

이른 아침부터 뜬금없이 등장한 여행자가 씩씩거리는데도 점원은 온화하게 화를 다스린다.


"침착해요. 지금 가도 버스는 있을 거예요.

버스를 놓치더라도, 아그라에 갈 방법은 무수히 많은걸요.

내가 픽업 장소로 가는 오토바이를 불렀으니 조금만 기다려요."


점원은 냉장고에서 꺼낸 음료수를 건네며 미소 짓는다.

그의 음료수를 받으며 생각한다.



결국 나는 아그라에 가려는 것이 아닌가?

지금 버스를 못 타더라도 아그라에 가는 방법은 언제나 있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 처음 보는 이에게 성질을 부리던 것인가?



다급함에 내보인 무례함을 반성하고 그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가 준 음료수와 미소에 웃음 지으며 다시 오토바이에 오른다.



픽업 장소에 도착하니, 수많은 버스가 엔진소리를 내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버스 출발시간은 이미 30분가량 지난 시간,

슈퍼마켓 점원이 전화로 버스 기사에게 기다려달라고 하였으니, 아직 남아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눈앞에 보이는 아무 버스에 들어간다.


"아그라? 아그라?"


무턱대고 아그라를 외치며 예매한 버스표를 보여주는 한국 여행객을 보고

인도 운전기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침부터 곤두세워진 신경이 풀리는 느낌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버스에 오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예매한 버스가 아니란 걸 깨닫는다.


동시에,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와 인연을 가져다준 버스가 된다.


어김없이 사진을 같이 찍자는 버스 승객분


예상치 못하게 정신없는 아침을 한바탕 보내고

무사히 아그라행 버스에 오른 나는

한숨을 돌리며 짐을 푼다.


정신없이 올라 짐을 푸는 동아시아인에게 쏟아지는 관심 중

앞 좌석에 앉은 아이가 말을 건다.



"어디서 왔어요?"



진한 눈썹과 뚜렷한 눈을 가진 아이는 누가 봐도 인도 사람이다.


앞선 인도 여행 동안 수많은 인도인에게 관심을 받아왔기에

여느 때와 같이 짧은 눈웃음과 함께 한국인이라는 대답을 하고 창밖을 바라본다.


창밖 시선을 통해 대화를 마무리하자는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한국인을 처음 본다며 대화의 커튼을 펼친다.


한국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고 있는 그의 눈빛은

그가 가진 똑똑함을 알려준다.



그라부(Gaurav Rawat)는 2005년 생으로 곧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다.

어릴 적 도라에몽과 같은 공상과학 만화에 빠졌다.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고 존재하는지,

우리는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언제나 그가 가진 질문 중 하나였다.


그의 물음은 이후 시간을 다루는 과학자나 우주 연구원이 되는 위대한 과학자의 꿈을 준다.

그는 일론 머스크와 같이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며 공부하고 있다.


그라브가 어릴 적, 

규칙적으로 건강이 악화하는 어머니를 통해

본인에게 어머니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점차 다른 승객으로 버스는 채워진다.


출발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출발하지 않는 버스에

인도 현지 사람들이 대거 올라오는 걸 보면서


예매한 버스가 아닌 로컬버스에 올랐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예매한 버스를 타려고 아침부터 신경질을 냈던 내 모습에 어이없어하는데,

그라브는 내 옆좌석으로 자리를 옮겨도 되는지 묻는다.



한창 인도에 대한 불신과 충격이 있던 나는

그라브에게 묻는다.


"인도를 좋아해?"


그는 뜬금없는 듯한 내 물음에 대답한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야?

우리는 모두 자신의 엄마를 사랑하고, 자신의 국가를 사랑하는 게 당연하지.

나는 인도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기에 인도를 좋아하는 게 당연해.


우리는 서양 문물에 너무 많이 노출되었어.

우리는 인도 전통을 지켜야 해."


그의 말을 들으며,

인도 여행 중 팝송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는 사실과 한국에서 쉽게 접해온 서양 문물을 아예 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국에서의 삶이 서양 문물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었는지를 깨닫는다.



'근대 사회는 단일한 형태, 곧 서구적 형태로 접근하고 근대 문명은 서구 문명이며 서구 문명은 근대 문명'이라는 전제에 의존한다. 이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는 전제다. 
- 새뮤엘 헌팅턴 [문명의 충돌] 중


나의 정체성 중 일부는 이미 많은 서양 문물이 섞여 있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당연하게 형성된 정체성을 멀리 객관적으로 바라본 순간이다.



아그라로 탈탈거리며 이동을 시작하는 로컬버스에서

우리는 신과 우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눈다.


대부분 힌두교인 북부 인도는 카르마를 믿고, 삶의 모든 것을 신성시화 하기에,


물리학, 천문학, 수학 등 자연 과학을 좋아하는 그라브가 힌두교 사상을 과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볼지 의문이 든다.


"우주의 원리, 사물의 존재에 대해서 호기심 갖고, 천문학 공부를 시작했잖아.

그럼, 빅뱅 이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빅뱅 이론은 단지 이론일 뿐이야.

이 세계는 신에 의해 탄생한 거야."



우주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신에 관해 탐구하고 물음을 갖는

인도 소년과 한국 여행자의 대화 주제로 넘어간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어. 

그렇지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인 거지.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건 모르겠어."



"데이지, 외계인을 믿어?

믿는다면, 어떻게 그걸 증명하지?"



"믿어.

증명이라면…. 신문에서 외계인을 봤다는 기사를 봤어."


"신문 기사에서 봤다는 사실로 외계인을 믿는다면,

신을 봤다고 증명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유는 뭐야?"


반박할 수 없는 그의 논리에 크게 머리를 맞는 느낌이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낮에는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아.

그럼에도 우리는 별이 있다고 믿지.

실제 내가 보거나 느끼지 않지만, 그 존재를 믿는 거잖아.

신이 존재하는 이유도 같은 논리 아니야?"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며 어버버 하는 중에 그는 말을 잇는다.



"신은 '에너지'야.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던 것은 모두 에너지 덕분이라고.

가방, 창문,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좌석도 에너지를 가진다면 신이야."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가네샤 등

인도 힌두문화가 말하는 신은 뭐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신이야. 자신의 행위를 현실화하기 위한 신이지. 

신을 형상화해 두어 신이란 존재를 구체화하는 거지. 

그래야만 우리는 절에 가서 기도하는 등의 행위로 현실화하니까."



Sometimes you cannot believe what you see, you have to believe what you feel. 때로 우리가 보는 것을 믿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을 믿어야 한다. 
- 책 [Tuesday with Morrie] 중



나는 온전히 그의 말에 매료되어

뚜렷한 그의 검은 동공만을 바라볼 뿐이다.


"인도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주요 종교는 4가지야.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교, 기독교.


종교는 숭배하는 것과 믿는 것처럼 공동체의 믿음이야. 

사람들은 그들이 따르는 것을 숭배하는 일련의 관습을 갖는 거지.

우리가 힌두신을 숭배하듯, 시크교도는 와헤구루를 숭배하고, 이슬람교도는 알라를 숭배하고, 기독교는 예수를 숭배하잖아.

각 공동체는 그들의 방식으로 예배와 축제를 하고, 의식을 따르지."



그의 말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큰 깨달음을 준다. 

어느새 가득 찬 사람들로 인도 버스에 힌두 노래가 흘러나온다.


탈탈탈 이동하는 공간에서 그라브는 신을 이야기 하고,


난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세상에 새로운 기술을 주기 위해서야. 
내가 만들 기술로
이후 천 년 동안 나를 기억하기를 원해.

 이 외에는 부모님의 소원을 채우고,
내가 꿈꿔온 작은 것들을
성취하는 것도 있겠네.





인도 아그라포트에서


인도를 여행하며 여러 감정선에 줄타기하는 내 모습을 종종 본다.


친절하고, 온화한 사람과 

정답게 미소를 주고받는가 하면,


호객 상인, 툭툭 기사와의 언쟁으로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운 좋게 같은 방향 차를 얻어 타 

안전하게 이동하는가 하면,


완전히 잘못 도착하기도, 

잘못된 버스에 오르기도 한다.


예매한 버스보다 훨씬 저렴하고 탈탈거리는 로컬버스에 잘못 오른 오늘,

시간도 지연되고, 에어컨도 없으며, 만원인 버스 안 승객과 살을 비벼 껴있어도

덕분에 그라브를 만나며,

그와 우주에 관해 이야기하고,

종교와 신에 대한 정수를 느낀다.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에너지 속에서

우주 너머를 알 수 없는 먼지 한 줌에 불과한 존재라도

초자연적 에너지를 품고 있는 존재로

나는 오늘의 기분을 '감사'라 정하기로 했다.

인도에서 마주한 감정선의 줄타기처럼

극과 극의 상황에서 마주한 행운처럼

마치 계획된 우연성이 가져다준 것처럼

여행은,

인생은,

척박한 땅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하는 여정이다.

나는 그 척박한 땅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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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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