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바라나시에서 만난 비키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스치는 생각을 그저 스쳐 가게 두는 법이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법이다.
떠오르는 생각에 어떠한 감정도 개입하지 않고 바라보는 법이다.
떠오르는 해를 배경으로 어부의 그림자가 진다.
수영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물에 첨벙거린다.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은은히 강물에 닿는다.
잔잔한 물결 따라 일출이 세상에 인사한다.
바라나시의 아름다운 풍경이 갠지스강에 반사되어 아침을 맞이한다.
인도인은 갠지스강을 강가(Ganges)라고 부른다.
강가는 그들에게 엄마이자 신이다.
수많은 믿음이 모인 엄마의 강, 갠지스.
그저 하나의 강에 불과하다고 비판받을지라도
수억 명인 인도인에게 한없이 소중한 가치인 강가.
나도 강을 둘러싼 믿음을 보고자 갠지스강을 찾는다.
강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기도하는 인파를 보며
인류가 만들어낸 허구적 상상력의 능력을 다시금 실감한다.
믿음, 상상, 문화는 인간을 아름다운 존재로 만든다.
우리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으로 삶을 꽃피운다.
바라나시 호스트 소밋은 자기 친구 Vicky(비키)를 소개한다.
호스텔에서 비키와 인사를 나눈 뒤, 비키는 자기 집에 나를 초대한다.
카스트 중에서도 브라만교에 속한다는 비키.
바라나시 중심가에 떡하니 자리 잡은 가문의 집을 보여준다.
"바라나시에서 우리 가문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
개인 절까지 소유한 본인의 집을 자랑스레 소개하면서
그는 바라나시의 유명 인사 미소를 짓는다.
커다란 비키 집의 테라스에 오르니, 넓게 펼쳐진 갠지스강이 시야에 들어온다.
테라스 아래는 강가 앞 힌두 의식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붐빈다.
강의 넓은 마음을 바라보며 우린 자리를 잡는다.
한눈에 보이는 바라나시 풍경에 놀라는 나를 보며 비키는 말한다.
"단지 즐겨.
그저 이 순간을 긍정적으로 사는 거야.
사는 방법은 딱 한 가지야.
미소 짓기."
시바신의 도시인 바라나시라가 가진 오래된 역사 때문일까,
바라나시에서 만난 이들은 삶의 진리를 이미 깨달은듯해 보였고,
비키 역시 내게 삶에 대한 소중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 순간을 즐기고, 좋은 일을 행하는 거야.
좋은 일은 저절로 돌아올 거야."
"죽으면 돈은 물론이고 아무것도 갖고 죽지 못해.
그러나, 우리는 카르마만을 갖고 죽지.
이번 생에 내가 브라만교로 태어나
좋은 가족과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이전 생에 좋은 일을 행했기 때문이야."
"바라나시도 길거리에 노숙자가 많잖아.
노숙자 외에도 가난한 이들이 정말 많고.
그들은 어떻게 생각해?
불평등하다고 느낀 적 있어?"
"그들은 이전 생에 따른 이번 생을 맞이한 거지."
그와 대화하며 인도 여행 중 느낀 모순에 관해서 묻는다.
"너도 모든 사람은 같다고 말하잖아.
아힘사*와 같은 힌두교리도 있고.
그렇지만, 카스트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아힘사 :모든 생명의 근본적 단일성에 근거한 생명에 대한 존중과 배려,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 대한 공동연대 의식을 내용으로 함.
"카스트 제도는 인도가 가진 문화이기에 존중받아야 하는 거지."
어불성설로 느껴지는 그의 말을 들으며 의아해한다.
'모든 사람은 같지만
모든 사람은 계급이 있다고 말하는 카스트제도.'
그 제도를 존중해야 한다?
비키가 답한 모순적인 문장을 곱씹는 와중에
힌두 예배 의식은 화염처럼 타오르는 불길을 내뿜는다.
멀리서 봐도 뜨거움이 느껴지는 불길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카르마'라는 믿음으로
친절을 베풀고,
나눔을 실천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이겨낼 힘이 있어.'
'그들은 이전 생의 운명을 받은 거야.'라는 생각으로
불평등을 무마하고
좋은 카르마를 받은 이번 생의 본인이
불평등의 불편함을 회피하려는 건 아닐까.
카르마를 둘러싼 불평등 앞에서
갠지스강에 비친 삶의 철학들이 회오리치며 모순을 일으킨다.
그와 삶의 진리와 모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문다.
어두워진 갠지스강을 바라보며 우린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물리적인 사랑만이 결코 사랑이 아니야.
함께 정을 나누고, 웃음 짓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야.
우리가 얼마나 상대방과 함께 시간을 쏟아지는지가 중요하지. "
"삶은 계속 변해. 이 순간의 인도도, 너의 나라도 계속 변화할 거야."
그의 말은 찰랑거리는 방울 소리와 함께 내게 닿는다.
종소리가 가진 긍정적 의미는 바라나시에 울려 퍼진다.
어머니 강가 강을 위한 의식과
시바신을 숭배하는 의식을 바라보며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이 순간의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야.
다음 생의 카르마를
위해서이기도 하지.
하루는 장례식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 우연히 비키와 만난다.
우연한 만남을 빌미로 우린 갠지스강 강터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비키는 자신이 갖고 있던 과자를 지나가는 강아지, 강가의 물고기에게 나누며 말한다.
"카르마로 선행을 하는 거야.
배고픈 강아지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선행이지."
그저 길바닥에 과자를 던지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행동을
선행이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모순을 느낀다.
우리 주위로 둘러싸인,
바라나시 거리를 가득 채운 쓰레기를 줍는 게 필요한 선행이 아닌지 고민할 찰나
나 역시 그를 멋대로 판단하고
그의 생각을 존중하지 못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깨달음에 갠지스강을 물끄러미 보던 중
배를 타고 나갈 준비를 하는 분과 눈이 마주친다.
배에 오르라는 손짓에 이끌려
항해하는 나룻배 위에 올라 바라나시의 야경을 바라본다.
온갖 모순과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지만,
바라나시의 야경은 아름답다는 말로 형용될 뿐이었다.
바라나시를 보내며 만난 이들이 내게 던진 주옥같은 말들,
주옥같은 말속에서 느껴지는 모순과 행동의 모순,
바라나시가 가진 깊은 역사와 종교적 울림,
사람들이 바라나시를 찾는 이유를
갠지스강의 야경을 보며 온전히 깨닫는다.
인도에서 마주한 진실한 어구에 감동하고,
어구에 상충하는 말에 모순을 느끼고,
그들이 만들어놓은 외줄 타기를 그저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옳은 것은 없고, 틀린 것은 없다.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
모순과 상충, 대비와 의문.
그 위에 삶이 있다.
그저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고 미소를 갖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방법밖에.
반짝이는 바라나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엄마 강가를 향해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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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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