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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우리 방식인걸

인도 훈수르에서 만난 사갈

by 여행가 데이지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바라던 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때로는 축복이 된다.


인도 남부의 조그만 마을,

내게 우연히 날아온 이 문장을 생각한다.


수없이 스쳐 간

나의 실수,

저버린 기회,

놓치고 살아온 또 다른 행복.


그 속에서 보낸 후회가 스친다.


IMG_3729.JPG?type=w966 인도 남부의 작은 마을, 훈수르에서


동시에

넓게 펼쳐진 바나나밭을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의 축복을 느낀다.


모든 건 그만의 이유가 있다.


나직이 다짐한다.


오늘도

감사하고 받아들이며

겸손하고 성장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IMG_3762.JPG?type=w966 나는 인도에서 2주간 ISF 프로그램 일환으로 봉사를 하고 있다.



샬리니와 함께 ISF 봉사의 운영을 책임지는 사갈은

지도 담당자 지시 아래에서 뒤치다꺼리를 맡는다.

쉽게 말해, 봉사 단체에서 부하 격의 역할을 맡는 것이다.


나는 종종 뒤 정리를 하는 사갈을 돕곤 한다.

옆에서 돕는 나를 보며 하지 말라 말하며 그는 괜스레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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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봉사를 하러 향하는 버스에서 우린 이야기 나눈다.


봉사 기간 사갈은 나의 버스 짝꿍이 된다.

봉사 마을을 오가는 버스에서 우린 서로의 우주를 공유한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사갈은 상상력이 풍부한 소년을 보냈다.

영화감독을 꿈꾸었지만,

호텔과 배달 일을 하면서 지내던 중 이번 봉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종종 이해되지 않는 인도식 마인드를 갖고

머리를 옆으로 까닥까닥 흔드는 인도인답게

사갈도 머리를 흔들며 자신의 세상을 보여준다.



의아스러운 사갈의 우주는

내게 물음표와 느낌표를 남긴다.


나는 사갈을 통해

인도를 이해하고,

사갈을 여행한다.


인도 봉사를 하면서 다 함께 찍은

버스에 오를 때마다

그는 자신 갤러리의 사진을 하나씩 보여주곤 한다.

하루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사진을 보여준다.


"그가 너에게 가장 친한 친구인 이유가 뭐야?"


"그야, 함께 힘든 것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지."

사진 속 이들이 나의 친구이긴 하지만,

사실 나는 대학 시절에 친구가 없어 홀로 지낸 시간이 많았어."


사갈의 아픔을 나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보냈을 어두운 밤을 어렴풋이 공감하며 말한다.



"혼자인 것이 나쁜 게 아니야.

외로움을 느끼고, 그 외로움의 순간을 인정하는 게 고독이잖아.

나는 고독과 친구가 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IMG-20230609-WA0021.jpg?type=w966 숙소 근처 놀이터에서 우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우린 함께 동네 나들이를 나간다.

슈퍼마켓에 들려 생필품을 사고

놀이터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한참을 놀다가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지도 담당자에게 지시가 내려온다.



"사갈, 프린트 가게에 가서 이것저것 복사 좀 해와."

사갈은 내게 먼저 들어가라고 하지만,

나는 그를 따라 함께 프린트 가게에 간다.

흙먼지 날리는 인도 남부 마을을 걸으며

조그만 경적을 울리는 릭샤를 배경음으로

우린 이야기 나눈다.



프린트 가게로 이동하면서 사갈이 담아준 추억 / Hunsur마을


"사갈, 너는 언제 행복해?"


"최근에 크게 행복했던 기억이 없어."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음…. 사람들은 폰에 의지해서 나와 함께 보낼 사람이 없기 때문이야."


"사갈,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행복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거지만,

타인이 너에게 오기를 기다리지 마.

세상은 넓잖아. 네가 스스로 너의 사람들을 찾을 수 있잖아."


그는 내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든다.

저마다 삶의 중요도가 다르게 맞기에

내 생각을 주입할 충동을 누르며 가볍게 말한다.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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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갈, 다시 태어나도 인도에서 태어나고 싶어?"


"응. 내 인도에서도 내 고향인 벵갈루루에서 태어나고 싶어.

인도에 별을 매긴다면, 난 백 점을 주겠어."


그는 칭찬을 잊지 않고 덧붙인다.


"인도 여행을 비롯해

여러 곳을 여행하는 너는 정말 용감한 사람이야.

나도 훗날 너처럼 여행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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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칭찬을 아끼지 않고 하는 사갈은

화장실 공사로 땀을 뻘뻘 흘리는 내게 말한다.


"데이지! 그러고 보니, 귀에 피어싱 했네.

피어싱을 참 좋아하는데, 예쁘다!"


땀을 닦으며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문득 생각한다.


'나는 사갈에게 칭찬 한번 해준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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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갈, A가 훨씬 효율적인데 왜 굳이 B를 하려는 거야?'

'사갈, 장소가 바뀌었으면 미리 공지를 해줘야지.'

'사갈, 왜 멋대로 프로그램을 바꾸고 전달하지 않은 거야?'


지연과 취소가 반복되는 봉사 일정 속에서 짜증 부리고

답답하기만 한 사갈의 일 처리에 실망하고

가끔 대답 없이 홀로 일 처리를 하는 사갈을 보며

물음표는 공격적으로 변한다.



"데이지, 이게 우리 방식인걸."



이해하지 못한 순간 앞에서

우린 서로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깨닫는다.


서로의 우주를 공유하고,

살아온 배경 차이를 이해하면

서로에 대해 미워할 것 하나 없구나.



나를 주기 위해 꽁꽁 싸맨 사탕을 꺼내는 사갈을 보며

사소한 것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를 보며

그를 답답해한 마음을 반성한다.


20230618_214212.jpg?type=w966 봉사 마지막 만찬을 사갈, 샬리니와 함께하며


'이렇게 생각해야지.'

'이런 식으로 행동해야지.'


살아온 배경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나는

한국에서 당연하게 채택해 온 내 방식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샬리니, 사갈과 보낸 2주 동안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 순간 속 깨닫는다.



'내 생각이 맞다'는 안이한 생각을 가져왔구나.



내가 살아온 방식이 맞다는 믿음은

다른 이가 살아온 방식이 틀리다는 단정으로 변한다.


다름이 만든 생각은

누군가를 계몽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다름을 포용할 줄 아는 생각

누군가와 함께 성장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20230618_223034.jpg?type=w966 가레베꾸 ~ (타밀어로 벽돌자재를 의미)


사갈, 샬리니와 마지막 만찬 후 숙소로 돌아가는 저녁.

나와의 작별을 슬퍼해 주는 사갈에게 감사를 표한다.


"사갈, 봉사하는 동안 네 덕분에 에너지를 얻었어.

너의 에너지 덕분에 봉사를 재밌게 했어. 나랑 놀아줘서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나도 너와 함께해서 좋았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멜랑꼴리 한 마음으로

사갈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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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유는 평화, 사랑 그리고 가족이야.



어두운 주황빛의 가로등 아래에서

우린 별거 아닌 이야기로 웃음을 터뜨리며 마지막 밤을 맞이한다.


''




잘 있어!

헤어지면서 샬루의 눈이 붉어지는 걸 보며 울컥함을 느낀다.

사 갈 도 슬픈 표정으로 내게 힘껏 손을 흔든다.


지나갈 것 같지 않던 인도에서의 날들도

결국 켜켜이 쌓이고 쌓여 어느덧 몇 주 남지 않는다.


느릿한 인도식 일 처리에 울화통이 치밀면서도

삶의 머무름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을 볼 때마다

'여기는 인도니까'를 되뇌는 순간이

어느새 켜켜이 쌓여 챕터의 마무리가 되어간다.


마무리되어가는 이 챕터를

이들과 함께해서 참 다행이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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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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