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벵갈루루에서 만난 지빈
'너'에게 관심 두는 것은,
'너'와 서로 소통하는 것은,
‘나’를 확인시켜 주며
‘나’의 존재를 내게 알려준다.
지금껏 몰랐던 새로운 삶을 탐험하며
광활한 '너'라는 우주를 통해 '나'를 발견한다.
여행하면서 만난 '너'라는 삶을 통해
'나'의 삶은 풍부로 가득해진다.
부스스하게 눈을 떠 나눠마시는 짜이 한잔처럼
길거리 빨대 꽂아 마시는 코코넛 한 통처럼
네 일상의 작은 요소를 함께하고,
너와의 생각을 공유하며
너의 삶을 들으면서
나의 삶을 확장된다.
- 사람을 여행하는 여행자 데이지
인도 여행 마지막 도시, 벵갈루루에서 일주일간 머무른다.
나를 데리러 온 호스트 비주와 함께 훤칠한 외모의 남자도 내게 인사한다.
비주의 회사 동료이자 후배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말한다.
"지빈이야.
비주 집에서 잠시 머무르고 있어."
각진 얼굴에 깔끔히 차려입은 그는 수의학을 공부하며 수의사의 길을 밟아간다.
미국에서의 공부를 앞두고 잠시 벵갈루루에서 지빈을 도와준다.
인도 남부 도시 캐롤라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며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고 말한다.
그의 분위기는 지금까지 만나온 인도 사람과 사뭇 다르다.
"신은 상상에 불과해."
종교와 뗄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인도인 사이에서
그의 말은 인도인에 대해 가진 편견을 깨 준다.
'같은 인도인이어도 무조건 같지는 않구나.'
지빈과의 대화는 당연한 논리의 이 문장 앞에서
결코 당연하게 행동하지 않아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국에 있는 인연에 우편을 보내고자 지빈과 함께 우체국을 찾는다.
10시 영업 시작인 우체국을 시간에 맞춰 찾아가니
느릿느릿하게 나오는 경비원은 11시에 찾아오라고 말한다.
'아 맞다. 여기는 인도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의 다반사인 인도.
인도 삶의 속도에 적응해 가려는 내게 지빈은 말한다.
"캐럴라에서 수의사로 국가공무원직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
공무원들은 자기 일에 관심도 없으며 게으르게 일 처리를 했지.
인도인들은 영업시간을 늦게 하는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여긴단 말이야.
그들은 너무 게을러."
같은 인도인이면서 인도인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하는 그가,
꾹꾹 눌러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만 했던 내 마음속 말을 내뱉은 그가
그동안 내가 인식한 인도인과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도 인도인이면서 인도인을 욕하는 모습에
괜스레 웃음이 나와 한참을 웃는다.
이후 들어간 우체국에서도 직원은 느리게 업무처리를 한다.
영화 주토피아 나무늘보를 연상케 하는 그는
우리 소포를 받고도 다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느긋하게 짜이를 마신다.
"오래 걸리나요?"
참다못한 지빈은 일어나 직원에게 묻는다.
5분만 더 기다리라며 태평하게 말하는 직원 앞에서
툴툴대며 자리로 돌아오는 지빈을 본다.
모두가 느린 삶의 속도에서 답답해하는 지빈의 행동은
무언가 나를 편안하게 한다.
편안함에 한국인은 되려 인도인을 위로한다.
"지빈, 여기는 인도잖아."
우린 벵갈루루의 관광 명소를 함께 거닐며 이야기 나눈다.
길거리에 놓인 수많은 쓰레기를 보며 지빈은 인상을 찡그린다.
"인도는 인구수가 많아도 너무 많아.
문제는 대부분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거야.
그러니, 길거리에 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버리지."
어렴풋이 간직하고 있던 마음속 말을
인도인에게서 들으니, 무언가 뚫린 느낌을 받는다.
'인도니까'라는 생각으로 경험을 쌓아 능숙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좀체 이해하기 힘든 인도식 마인드를 마주할 때마다 해롱해롱하던 나에게
모든 인도인이 그렇지만은 않다는 듯 함께 해롱해롱하는 지빈을 바라본다.
내 시선에 아랑곳없이 지빈은 내게 질문한다.
호기심 많은 그의 모습이 좋으면서 그에게 대답하며
몰랐던 내 감정과 느낌을 마주한다.
누군가'에게 관심 두는 것은,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것은,
‘나’를 확인시켜 주며
‘나’의 존재를 내게 알려준다.
지금껏 몰랐던 새로운 삶을 탐험하며
광활한 '너'라는 우주를 통해 '나'를 발견한다.
"어떤 것도 공짜로 오지 않는다는 걸 배웠어.
무언가 공짜로 주어진다면,
그건 분명히 이익을 탐하는 속내가 있는 거야.
어떤 것도 공짜는 없어."
지빈이 10살 때부터 기울기 시작한 가정은 그를 공립학교로 보냈다.
학생들에게 학대를 마다하지 않던 학교에서의 6년을
그는 '지옥 같던 시간'이라 표현한다.
상처가 날 정도로 심한 처벌을 받으면서도 선생 말만 듣는 부모님 앞에서
지빈은 '분노'를 채우기 시작했다.
"삶은 매우 어려워.
자유뿐만 아니라 나의 감정을 통제해야 하지.
너 자신만의 유일하게 너를 통제할 수 있어.
그렇기에 사람들은 명상과 요가를 통해 스스로 통제하는 법을 배우잖아."
학대로부터 생긴 공격성은 지빈이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분노로 가득해진 내면은 '삶은 투쟁'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여전히 투쟁 중이야.
날마다 투쟁 중이지.
명상을 통해 더 높은 차원으로 극복을 노력할 수 있지만,
분노를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해."
그는 언제나 삶을 긍정적으로만 보려는 내게
뼈대 있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삶이 너에게 정당하게 돌아갈 거로 예측하지 마.
언제나 삶에서 최악을 준비해야 해.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
그렇지만, 동시에 최악을 생각해야 해.
모든 것이 언제나 좋을 거로 생각하지 마.
천국은 없어."
투쟁적 삶을 지내온 지빈은 30살쯤 겪은 감정을 언급한다.
자신의 정확한 목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불안과 슬픔에 감싸이며 그는 분노로 밤을 지새워왔다.
"특정 가치는 변하겠지만, 중심 가치는 변하지 않아.
작은 건 변하지만, 근본은 바뀌지 않는 거야.
나의 근본, 중심 가치는 투쟁이야.
우리 삶의 최소 80퍼센트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투쟁이지.
우린 그 투쟁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기에
투쟁은 우릴 다른 사람으로 바꿀 거야."
인도에서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나서도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삶에서
경력을 위해 여전히 분투 중인 그지만,
그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며 말을 덧붙인다.
"희망은 너를 어디로든 데려가는 가치야.
나는 열심히 일하고 투쟁하지만,
이 투쟁이 오랫동안 되지 않을 것이고
후에 자유를 얻을 거란걸 알기에 이 길을 계속 가는 거야."
우린 함께 로컬 시장에 들어간다.
수많은 쓰레기와 경적,
살갗이 닿을 정도로 많은 인파는 끊임없이 내게 말한다.
'여기는 인도다'
마치 내 표정을 읽은 듯 지빈은 걱정 어린 말을 건넨다.
"데이지, 모든 인도가 이렇지는 않아."
그에게 웃으며 답하는 중에
누군가 나의 머리를 때리고 지나간다.
"지빈, 방금 내 머리 때리고 간 거 봤어?
왜 때린 거지?"
"봤어..
이유는 글쎄…."
"그렇지….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
여긴 인도니까…."
"비주, 방금 로컬 시장에 다녀왔는데
어떤 여자분이 내 머리를 그냥 때리고 지나갔어."
일이 마치고 온 비주에게 정신없는 벵갈루루 여정을 말한다.
길거리 코코넛 한 잔씩 마시며 비주는 답한다.
"(웃음) 모든 인도가 그렇지는 않아."
지빈과 비주가 공통으로 한 말을 코코넛과 함께 곱씹는다.
그의 말처럼 여러 모습을 가진 인도를 떠올린다.
비주를 따라 택시로 이동하며
집 동네만 다니면 다른 곳과 비슷한 도시 풍경이지만,
그곳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길거리에 가득한 쓰레기와 노숙자들이 전혀 다른 도시 풍경을 연출한다.
길거리로 보이는 가시적인 차이를 넘어서도 인도는 다양한 모습을 가진다.
북부 인도와 남부 인도는
다른 언어, 다른 생각, 다른 문화이다.
코코넛 장수 뒤로 파란색 터번을 두른 시크교 남자와
주황빛의 사리를 두른 힌두교 여성이 지나간다.
재잘대는 경적 너머로 들려오는 타밀어 사이로
종종 힌디어도 들린다.
다양한 종교가,
다양한 언어와 생각이 공존하는 이 순간에서 '인도만의 다양성'을 깨닫는다.
무수히 많은 볼거리
먹거리와 다양한 사람들.
그 다양한 삶 속에서 펼쳐지는
역동적 이야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도를 궁금해하고, 인도에 찾아오는 걸까.
달콤한 코코넛 빨대를 흠뻑 빨며 벵갈루루의 더위를 식힌다.
하루는 산을 오르며 흠뻑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오랜만에 오른 산은 상쾌하게 나를 반긴다.
힘껏 들어온 공기는 행복 엔도르핀이 새어 나온다.
"산을 오르는 것도 같아. 내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그로 인해 땀을 흘리고 있으며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를 비롯한 오감각이 주어지니까 정말 좋다.
비슷한 느낌으로 리시케쉬에서 명상을 배웠을 때가 있었어.
명상하다가 저절로 눈물이 흘렀어.
명상 선생님은 내게 신과 연결되는 대화를 할 뻔했다고 말하더라"
"사실 명상은
무언가 하나에 오로지 집중하는 거야.
몰입이 명상이지."
"맞아.
몰입할 때 오는 감정과 쾌감이 있어.
무언가 다른 세계로 가는 느낌이지.
그것을 신과 연결되는 대화라고 말한 건가 봐."
"운동을 하고, 언덕을 오르고, 명상하고···.
일련의 과정으로 좋은 감정을 받지."
"사실, 행복은 아무것도 아니야.
세로토닌, 옥시토신, 엔도르핀 등의 화학적 변화일 뿐이지….
슬플 때나 힘들 때도 마찬가지야.
연인과 관계를 맺을 때, 부모가 됐을 때도 마찬가지지."
단지 호르몬의 변화일 뿐이야.
조그만 감정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면,
우린 삶을 좀 더 평화롭게 만들 수 있겠지."
미소 짓게 하는 행복과 기쁨,
자신을 감싸는 분노와 불안 등의 심리적 요소도
화학적 변화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그의 생각은
삶의 굴곡을 버텨온 그의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에게 삶의 이유는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 스스로를 통제하는 힘(discipline)을 갖기 위해서야.
내게 적절한 잠재적 규율(discipline)을 찾고 싶어.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행동을 하는 거지.
그리고, 매일 발견하는 삶도 삶의 이유야.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내고 깊이 탐구하는 거지.
정신과 마음에서 균형을 이루고자 노력해.
내가 정부 아래에서 일할 때도,
내가 여전히 지금 일할 때도,
나는 나를 찾아가고, 나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중인 거야.
너도 그렇고.
우리는 인간이니까.
개인의 삶은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다.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중
어린 시절의 분노를 삶의 원동력으로,
오늘의 삶을 끊임없는 투쟁으로 바라보는 지빈은
이제껏 삶을 투쟁이라 생각하지 않은 내게 새로운 시각을 선물한다.
지금껏 대해온 인도인과 다른 느낌의 지빈은
여행 중 형성된 인도인의 이미지에서 새로운 인식을 선물한다.
내게 색다른 시각과 투쟁적 삶 속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지빈.
그가 믿는 희망이 투쟁 속 분노와 함께 타오르고 있음을 발견한다.
분노의 연기 속 피어오르는 그의 희망을 보며 말한다.
"지빈, 너의 투쟁을 응원할게."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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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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