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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Dec 05. 2024

인도, 우리 다시 보자

인도 벵갈루루에서 만난 비주



인도 벵갈루루에서



완전히 다른 삶과 세계를 살아온 이들을

하나로 합친다는 건 소모적인 일이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두 우주의 공존은

그 자체의 인정으로 균형을 이룬다.


무질서와 질서의 공존 속에서 나는

옳고 그름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인도 남부에 위치한 대도시, 벵갈루루 (빨간색 표시)

인도 봉사를 마치고, 다음 비행을 위해 벵갈루루로 넘어온다. 


새로운 대륙을 앞두고 벵갈루루에서 일주일이 주어진다. 


그동안 정신없이 여행해 온 나는 

일주일 동안 벵갈루루를 여행하기보다,


지난 여행정리와 앞으로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생각으로 만난 호스트 비주는

고급 식당에 날 불러

벵갈루루 전통 음식을 대접하며 말한다. 



비주는 인도 남부 음식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데이지! 벵갈루루에 온 걸 환영해.

하고 싶은 거 다 말해! 우리 같이하자."



말끝마다 ‘you know’를 붙여 말하는 비주는 굉장한 수다쟁이다.

어눌한 인도식 영어 발음으로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벵갈루루 호스트 비주



올해 41살인 비주는 공직자 아버지 아래 부유한 가정생활을 해왔다.


"처음에는 은행에서 일했어. 매우 경쟁적이었지.

나는 하루 종일 일했고, 어느 순간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

나는 그 길이 아니었던 거야.

이후 나는 은행을 떠났어."


어릴 적부터 반려동물과 노는 게 좋았던 그는

그 뒤로 수의사 길을 걸었고,

병원 생활을 하다 시작한 NGO에서 일하며 지낸다.


"내가 하기로 결정했으면 나는 그걸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해.

당시 나는 NGO에서 일하기를 다짐했고, 사실 성과는 다르지만, 나는 계속해서 노력했어.


때로 인생은 잘못 흐르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걸 다룰 수 있잖아."





한국에서 날아온 배낭여행자에게

한껏 벵갈루루의 매력을 알려주고 싶은 비주에게 무색하게도

나는 조그만 몸살이 걸려 하루 종일 방에 있는다.

골골대는 나에게 비주는 말한다.


"데이지, 집 앞 코코넛 장수에게 갔다 올까?

괜찮으면 같이 가자."





요동치는 배를 붙잡으며 비주를 따라 거리로 나선다.

골골대는 나에게 코코넛을 건네는 비주를 보며

어릴 적 아플 때마다 황도를 사 오던 아빠를 떠올린다.



사진: CJ더마켓


"예진아, 아빠가 어릴 적에도 할아버지가 황도를 사 오곤 했어.

몸살이 심하게 나던 날에도 그 황도를 먹고 자면 말끔히 낫더라."


아빠가 사 오던 황도를 먹으면

거짓말처럼 몸살이 다 나았다.


"데이지, 코코넛을 마시고 나면 그래도 조금 나아질 거야."



비주가 건넨 코코넛은 저 멀리 한국에 있는 아빠의 마음을 준다.

코코넛의 달달함은 비주의 따뜻함에 녹아 내 몸에 들어온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붙잡고 비주는 말한다.


"데이지, 뭘 먹어야지 기운이 나.

중국식 죽을 시켰으니까, 자기 전에 먹고 자."


언제나 나를 챙기고 걱정하는 비주.

그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벵갈루루의 시간을 보낸다.



비주는 다음날 몸에 좋다며 붉은 용과를 가져온다.


편안한 방과

수많은 먹거리로

걱정 하나 없는 안락함 속에서

아빠같이 나를 챙겨주는 비주.


그의 따뜻함 덕분일까,

어느덧 이틀 남짓 남은 벵갈루루에서의 시간을 위해

나아진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온다.



"비주, 우리…. 놀러 갈까?"








인도 IT 도시답게 벵갈루루 거리는 높이 솟은 유리 빌딩으로 가득하다.

우린 공원을 함께 산책하고,

카르나타주 국회의사당 근처를 배회하며 서로 우주를 나눈다.




비주, 그리고 비주와 함께 사는 지빈과 함께

정신의학을 공부했던 그여서일까.

정신의학과 어우러지는 인도 구루의 정신으로

비주는 삶에 대한 격언을 내게 아끼지 않는다.


"우린 언제든 죽는 존재야.

죽음도 현실이지.

내가 오늘 죽는다면

나는 모든 돈을 가져갈 수 있을까?

나는 내 이름을 갖고 죽을까?

아니지.


우린 몸속에 단지 탄수화물, 수소, 산소, 원자를 갖고 있는 덩어리일 뿐이야.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언제나 열려있는 마음을 가져."


남인도만의 디저트를 보여주겠다며 데리고간 식당.


함께 영화를 보기도,

유명한 맛집에 찾아가기도,

나의 다음 여행을 위한 용품을 갖추기도,

등산을 함께 가기도 한다.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면서 비주는 줄곧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얻은 삶에 대한 깨달음을 알려준다.



"데이지, 기억해.

너는 우주의 중심에 있어."


우린 모두 각자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걸.


온 우주가 나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

하지만, 언제나 행복만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도 잊지 마."



대가 없이 베푸는 그의 나눔에 삶의 따뜻함을 느끼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담는 삶의 깊이를 배운다.





등산하며 비주는 식물과 곤충을 하나씩 설명한다.

분야를 막론해 박학함을 가진 그가 멋있다는 생각은

지식을 나누고 내게 다양함을 알려주려는 마음에 증폭된다.



"산에 오르는 이 순간처럼,

작은 것들이지만 너에게 성취감을 주게 하는 것들을 하면서 삶을 살아.


작은 것만 보라는 건 아니야.

사회개혁가가 될 수도 있고,

삶에 큰 공헌을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으로 하는 거야.

너의 삶에 동기를 주는 걸 찾아봐."



인도 남부 음식 도사(Dosa)를 먹으러 간 식당에서

"삶이 언제나 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그렇지만, 삶은 정말 아름다워.


부정적인 것들, 

네가 통제하지 못하는 것들, 

네가 놓친 여러 관계가 있겠지.


우리와 가까운 관계도 있지만, 

가깝지 않은 관계도 있지. 


그 속에서도 삶은 아름다워.

너는 그냥 그 삶을 즐기는 거야."



이혼한 뒤 더 이상 딸을 보지 못하는 비주.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에서 보냈을 아픔의 시기를 떠올린다.

딸과 관련해 조심스레 질문하는 나에게 

그는 언제나처럼 어눌하고 적당한 진폭으로 이야기한다.


"여전히 내 안에 화가 있어.

딸에게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되어주지 못했으니까.


부모가 되어 나눔을 주는 기회는 없고, 

여전히 이 안에 화가 있지만,

그건 발생했잖아. 


나는 그를 놓았어 (Let her go)."



비주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놓아주기'이다.



"여러 차례 최선을 다해 시도했지만, 

이루어지지 않다면 놓아줘야 해.

'생각'은 상처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이니까."



"함께 했던 이 바다는 결코 내게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거야."


그는 아내, 딸과 함께 바닷가에 놀러 갔던 사진과 영상을 보여준다.

활짝 웃는 딸의 모습을 비주는 지그시 바라본다.




"우린 행복을 위해 노력을 쏟지.

전아내, 딸과의 이 순간을 결코 후회하지 않아. 

그 당시의 행복을 향한 순간이니까.


아름다움은 

지금, 이 순간을 만드는 거야.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야."




"비주, 너의 삶에 만족해?"


"나는 백만장자는 아니지만, 

은퇴 이후에도 최소한으로 살아갈 수 있지.

돈은 내 삶에서 결코 최우선 순위가 아니야."


"너의 최우선 순위는 뭔데?"


"행복한 삶을 사는 거지.

다른 이에게 상처 주지 않고,

다른 이들을 도울 기회가 있다면 돕는 거지.


네가 만약 돕지 못하는 상황이라도, 

최소한 그들에게 상처 주면 안 돼."




"비주, 너는 언제 행복한데?"


"오늘도 행복하지.

우린 함께 여행했고, 저녁도 먹고, 일도 완벽하게 끝내 하루잖아.


하루하루를 채우는 기본적인 것들도 행복이지.

하루가 한주가 되고,

한주가 한 달이 되면서

한 달은 그 한 해를 행복하게 만들잖아."



언제나처럼 내게 따뜻한 보살핌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은 삶의 격언을 알려주는 비주.



그의 말과 마음 때문인지 벵갈루루의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마지막 밤을 빌려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순간의 목표 때문이야.
80억 명이 이 지구에 살고 있어.

매 순간 수많은 생명이 죽고 태어나지.
그렇지만, 100년 뒤를 생각해 봐. 지금 80억 명은 이곳에 없어.

우린 지금, 이 순간, 우리만의 삶을 사는 거야.
선택이야. 순간순간의 목표를 선택하는 거지.

날마다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어.
그러기 위해 하루하루의 순간을 선택하며 사는 거지.



비주, 지빈과 함께한 일주일 (by. 비주)

인도에 처음 도착한 순간.

쓰레기 가득한 델리 길거리 때문일까,

매번 50도를 넘는 기온에 우중충했던 델리 하늘 때문일까.

살고 싶지 않은 도시가 되어버린 델리에서

인도는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짐한 순간이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인도를 떠나는 순간.

비주의 따뜻한 돌봄 덕분일까,

인도에서 머문 한 달 동안 만난 소중한 인연 덕분일까,

아버지처럼 든든하게 나를 위해준 비주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말한다.



"비주,

인도에 다시 올 거야.

우리 그때 다시 보자."

인도 바라나시에서


버스 창가를 뚫고 들리는 경적은 여전히 울리고

도로 곳곳은 손가락을 물며 맨발로 돌아다니는 사람과  쓰레기로 가득하지만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오늘의 나는

인도 첫날, 충격에 휩싸였던 과거의 나에게 말한다.



"인도도 사람 사는 곳인걸.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거야."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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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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