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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Dec 12. 2024

잊지 못할 명절

오만 소하르에서 만난 트위바


두바이로 가는 오만 도로에서


고속도로 위에 다시 치켜든 엄지손가락.


오만 수도 무스카트에서 두바이로 향하는 길.

450km의 여정을 히치하이크하기로 한다.


쌩쌩 지나치는 고속도로 차의 바람을 맞으며

오랜만에 올린 엄지손가락에 떨리는 가슴을 붙잡는다.


수많은 자동차가 지나가고,

한 택시 기사는 두바이 버스표를 사주려고 한다.


멋쩍게 웃으며 거절하는 나에게

그는 두바이 국경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한다.



"이전에 잠시 옷을 정리하고 밥을 간단히 먹자."


아랍어로 말하여 번역기를 보여준 채 말하는 그.


오만을 여행하며

택시 기사가 무료로 태워준 적이 종종 있지만,

국경까지 장정  300km 거리를 간 적은 없기에

낯선 이에게 베푸는 서아시아의 친절함은 

다시금 나를 놀라게 한다.



감사 인사를 전하며 생각한자.


'국경까지는 마음 편하게 갈 수 있겠다'


세탁소에 맡긴 옷을 챙기고,

밥을 먹고 나니,

조금씩 날이 저문다.




택시 기사는 그 사이 일정이 변경되었고,

그의 차는 처량히 남겨질 히치하이커를 위해 

택시 정류소로 향한다.

국경으로 이동하는 다른 택시 기사에게 나를 넘기며 작별 인사한다.




쉬익 쉬익

거칠게 숨소리 내는 새 택시 기사는

멋쩍게 차에 오르는 나를 힐끗 보더니 그대로 운전을 시작한다.


감기에 걸렸는지 콜록콜록 기침하는 그에게 묻는다.


"이 택시는 두바이로 가는 건가요?"


"두바이로 갈 돈 있어?"


"아니요.."


"이건 소하르(sohar)로 가는 택시야.

뒤에 승객들이 소하르로 가거든."


소하르의 위치. 두바이 국경과 가까이 있다.


목표한 두바이까지는 아니지만,

국경과 근접하게 이동한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는다.


택시 기사의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창밖의 오만 풍경을 바라보며 노곤함에 잠긴다.


2시간이 흐를 즈음,

소하르에 가까워 오니

저문 해는 창밖을 어둠으로 가득 채운다.


'오늘 두바이에 가지 못하겠는걸'


아무리 오만이 안전한 국가라도

어느덧 껌껌해진 곳에서 히치하이크로 국경을 넘는다는 건

호랑이 굴로 스스로 들어가는 꼴이다.



뒷좌석 승객은 곧 내릴 예정인 채

택시 기사는 쉬익 쉬익 거리며 내게 묻는다.


"어디서 내릴 거야?"


난생처음 듣는 '소하르'에 일단 도착은 했으나,

아무 계획 없는 나를 껌껌한 밤거리만이 반길 뿐이다.

오늘 밤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할 찰나,

무스켓 호스트 알리의 룸메이트 살림이 떠 오른다.



'살림의 고향이 소하르라고 했었지!

그가 소하르에 가면 자기에게 연락하라고 했잖아…!'



급하게 그에게 연락함에도

그는 집 주소를 바로 보내며 말한다.


<우리 가족이 널 환영할 거야. ♡>


문자와 함께 온 하트 이모티콘은

껌껌한 소하르에 있는 나를 안심시킨다.



살림 가족이 미리 차린 저녁 식사


"데이지! 너를 기다렸어!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워."


갑작스레 보낸 응답에도

과분히 환영해 주는 살림의 가족.

살림의 바로 아래 여동생인 트위바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내일은 *이드(EID) 날이야!

친척들도 와서 다양한 음식을 먹을 거야.

데이지 너도 함께 하자!"




*이드(EID) : 라마단 금식 기간 이후 이루어지며 다양한 오만 음식을 먹으며 가족들과 축하하는 명절. 일 년에 두 번 있는 이슬람 최대 명절이다.

나를 위해 미리 준비해 놓은 저녁


이미 나를 위해 준비된 침구류 앞에 밥이 가득 쌓여있다.

트위바는 편하게 먹으라 말한다.


"데이지,

우리가 밖에 있는 게 편해?

맛은 잘 맞아?

피곤하지는 않지?"


트위바는 SNS에 본인 사진을 올리지 못한다.

2001년에 태어나 한 살 차이로 친구와 같은 트위바.

친절하게 나를 보살피는 그의 물음들은

여러 번의 히치하이크 실패와

여행 계획 차질로부터 온 수많은 잡음을 녹인다.


트위바는 나를 극진히 살피고, 나를 배려해 준다.

트위바 가족의 친절과 환대로 사르르 녹은 오늘 하루는

터질 듯한 배만이 남아 밤을 맞이한다.








여러 나라의 전통 의상 중에서 오만 전통의상(오른쪽)으로 결정!



다음날,

최대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다.

트위바는 명절을 함께 즐기자며

자기 옷과 화장품을 빌려준다.


오만 전통 옷으로 한껏 명절 분위기를 내며 거실로 나오니

이미 모인 친척들은 서로 안부를 나누며 함께 아침을 먹고 있다.




하얀 오만 전통 옷을 입은 어른들과

명절맞이로 한층 귀엽게 꾸민 어린아이들은

대가족 명절을 맞아 다 함께 인사 나눈다.


"데이지,

살림이 너를 소개했다고 하면 안 되고,

너는 내 대학 친구인 거야."


이슬람 문화적인 이유로 우린 이미 알고 있던 친구로 위장했고,

트위바는 만나는 친척마다 나를 소개해 주며

따뜻한 대가족 명절의 일원을 만들어준다.


대궐같이 넓은 집에서,

가족이 함께 나누는 시간을 나도 함께한다.



크고 동그란 눈으로 똘망 똘망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


이드(EID) 의례를 진행하는 가족을 구경하기도,

소하르 마을 곳곳을 함께 구경하기도,

함께 디저트를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기도 하며

명절이 가져다주는 포근함을 즐긴다.


명절을 맞아 분주한 사람들은

참석하지 못하는 친척에게 영상통화하고,

곧 오는 친척을 위해 음식을 준비한다.


이슬람 풍습으로 가족 다함게 먹을 소를 손질해서 땅에 묻는다.



도축한 고기를 손질해 일부는 땅속에 묻는다.

하나의 구덩이에 두 가족이 먹을 고기를

다 같이 양념한 것을 한꺼번에 넣는다.


가족들은 모두 옆집에 살아 

한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고기가 다시 나오면, 마을 가족 다 같이 먹는다.


온 가족은 함께 모여 살고,

명절을 맞아 다 함께 요리하고,

서로 만나 미소와 이야기를 나눈다.



깊은 구덩이에 불을 지피고

모두가 소리 내 말한다.


"하나 둘 셋!"


양념된 소를 넣고

뚜껑을 닫는 순간,

온 가족은 한 마음으로 구덩이를 바라보며

서로가 연결됨을 느낀다.





도축된 소를 손질하는 사람,

커다란 냄비에 양념을 넣는 사람,

주위에서 술래잡기하며 노는 요죽소녀들까지.

각자 분주하게, 

그렇지만 따뜻하게 명절을 채운다.



다 같이 먹을 고기를 다 함께 둥그렇게 앉아 손질하고,

커다란 냄비에 대량의 음식을 만들어 펼쳐놓고 먹는다.



남녀가 따로 둥글게 둘러앉아

소와 낙타 고기의 오만 음식을 먹은 뒤

손을 씻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친척들로 붐비는 커다란 방은 어느새

잠잠해지며 느긋한 오후를 맞이한다.

고급스러운 유리 공예와 석회암으로 된 바닥은 여전히 매끈하다.


조금 누그러진 분위기에 하나둘씩 낮잠을 잔다.

조금은 조용해지며 평화로워진 집 안, 

트위바는 내게 묻는다. 


"데이지, 피곤하지는 않지?"


계속해서 친척을 소개하고,

명절 의례를 하나씩 다 설명해 준 트위바 본인이 되레 피곤할 텐데도

그는 끝까지 나를 보살핀다.


내게 따뜻한 명절을 선물해 준 트위바와 단둘이 자리에 앉아

고요해진 거실을 바라보며 우린 우주를 공유한다.



데이지를 쥐고 있는 트위바


42살인 첫째 언니를 필두로 4명의 언니와 5명의 오빠를 둔 트위바는

가족에게 막내의 사랑을 잔뜩 받으며 살아왔다.

밤에 길거리를 나가도 안전한 오만이지만,

그를 극진히 아끼는 가족은 엄격하게 트위바를 키웠다.

"나는 마을 밖으로 혼자서 나가지 못했어.

그렇지만,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자랐지."

그렇게 자라서 대학생이 된 트위바는

소하르 대학교에서 운영, 생산관리 공부를 하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오만은 오늘날 교육이 별로 좋지 않아.

때로 가족에게서 돈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하지.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

공부와 동시에 일하는 게 쉽지만은 않아."

오만 정부에서는 국민에게 직업을 준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에게 직업을 얻는 게 쉽지 않냐고 물으니 답한다.


"정부에서 직업을 주지만,

요즈음은 많은 이들이 졸업하기에 기회가 적어지고 있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데?"

"논리적인 사람(logistic person)이 되고 싶어

나는 나의 회사를 열고 싶어.

내 전공을 살려 돈을 많이 벌어야지.

그리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린 청춘의 한 페이지를 공유하는 어린 대학생처럼 쿡쿡 웃음을 나눈다.

오만과 한국이라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도

우린 각자의 꿈으로 나아가는 공통점을 갖고 오만 찻잔을 부딪친다.

의도치 않게 머물게 된 소하르.

갑작스러운 물음에도

과분한 초대를 받아준 살림의 가족과 트위바.

명절 기간 내내 나를 살뜰히 챙기고 돌본 트위바.

자신은 영어를 잘 못한다고 말하면서 수줍게 말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소로 이야기하는 트위바.

그에게 삶의 이유는 묻는다.




트위바 데이지 1
트위바 데이지 2



내 삶의 이유는 여러 가지야.

첫 번째,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어. 
사업을 통해 가족으로부터, 남편으로부터 돈을 의지하지 않을 거야.
두 번째, 내 삶을 행복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 사람들을 도와야지.
세 번째, 자신감을 갖고 싶어. 

내가 영어를 할 때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때 나는 매우 부끄러워져.
실수로부터 배워서 자신감을 가질 거야.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실수해야 하고, 그 실수로부터 배워야만 해.



히치하이크를 다분히 실패하다 만난 택시가 우연히 소하르에 간 것.

소하르에서 껌껌한 밤을 맞아 이동하지 못했던 것.

우연히 무스카트 호스트 집의 룸메이크 고향이 소하르였던 것.

소하르에서 또래이자 나의 소중한 친구인 트위바를 만난 것.

수많은 우연의 순간은 겹쳐 트위바 가족을 만난 건 참으로 행운이다.

겹겹이 쌓인 우연이 만든 운명 속에서

황홀한 오만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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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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