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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Dec 16. 2024

우린 서로를 필요로 해

오만 소하르에서 만난 메다


오만에서 보낸 명절 이야기 다시 보기 ▶   잊지 못할 명절



오만 이슬람 명절(EID)에 차려진 다과들


외가와 함께 분주했던 낮이 지나고

저녁과 함께 친가가 찾아온다.

나도 함께 새로운 얼굴의 친척과 인사 나누며 명절 저녁을 보낸다.


낮에 도축한 고기를 펼쳐놓은 바닥에 앉아

남녀를 분리해 둥그렇게 앉은 가족들은 이야기 나누며 저녁을 먹는다.


어김없이 친척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트위바의 말을 끝으로

둘러앉은 트위바 사촌에게 미소를 보낸다.


생전 처음 본 한국인에게 짧게 미소를 건넨 뒤

밥을 먹기 시작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대학 입학을 앞둔 트위바 사촌은 최근 의과대학에서 치과대학으로 변경을 고민한다.

그들 대화 속 들리는 한마디 한마디는

지혜롭고 예리한 서아시아 여성들임을 알려준다.


히잡을 둘러싼 게 마치 베일에 싸인 듯했던 나는

여러 서아시아 여성과 이야기 나누며 조금씩 편견을 지워간다.


"정말 좋은 타이밍이야.

시간이 지나면 책임감의 무게가 더해지지.

그러다 보면 너처럼 여행하기가 힘들 거야."


대학 교수를 하는 트위바 고모는 나의 여행을 격려한다.


트위바의 사촌 언니, 메다


저녁을 마친 뒤,

우연히 소파에 함께 앉게 된 이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명절날 집 안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본인을 메다라고 소개한 이는 트위바의 사촌 언니이다.

왁자지껄한 공기 속에서 우린 서로의 생각과 삶을 공유한다.



"내 친구 중에도 히잡을 쓰지 않은 친구도 많아.

히잡을 쓰고 싶지 않다면 안 써도 돼.

이슬람 문화도 엄격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저 다른 유형의 문화일 뿐이야.


나와 친구들은 서로를 판단하지 않아.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무슬림에서도 때로 네가 생각한 것보다

더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을 만날 거야."



이슬람의 문화를 지키며

서구화되지 않은 오만 사람들이기에

알게 모르게 그들을 보수적이라 느꼈을까,

자유로운 삶을 살아온 메다와의 이야기는

내게 오만 사람의 새로운 틀을 선물한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춘 메다는

홀로 다닌 유럽 여행을 말하며, 본인의 자유로운 삶을 이야기한다.

머리를 완전히 덮지 않은 히잡 사이로 머리가 삐죽 튀어나온다.



"오만은 네가 무엇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아.

신을 위해서가 아니야.

그건 사람을 위해서야.


나도 혼자서 여행하고,

히잡을 완전히 가려서 쓰지 않으며,

수도 무스카트에서 혼자 살고 있지.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 권리를 갖고 있어."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는 메다는

자신의 차로 스스로 운전하고,

자기 돈으로 스스로 여행한다.


서아시아에 가진 편견에서부터

서아시아 여성은 수동적이며

집안 역할만 한다고 알게 모르게 가진 인식에게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메다의 모습은 하나씩 금을 만든다.



"이슬람이 여성들의 권리를 가져간다고 말하고,

남성을 위한 걸로 일부는 여기지만

그렇지 않아.


이슬람은 사람으로 살 권리를 주는 종교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나만의 사업을 갖고 싶어.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지만,

훗날 회사를 위해 매일 9시간씩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사업을 위해 9시간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2년쯤 뒤에 사업을 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메다.



"내가 지금 마케팅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마케팅 에이전시와 같은 사업을 열어볼까 해.

알리바바와 같이 나만의 브랜드로 조금씩 확장해 갈 거야.

이후에 나만의 회사를 만드는 거지."



진취적이고 올곧은 그의 모습은

그가 두른 연두색 히잡과 함께 서아시아 여성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꾼다.



"메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뭐야?"



"사랑이지.

함께 이야기 나눌 누군가와의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상대방을 향한 사랑.

혹은 다른 사랑도 있지.

나는 내 가족 없이 살 수 없어.

가족은 너에 대해 화가 나도,

너에 대해 나쁜 소식을 들어도,

너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존재야.


가족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너를 도와주지 않을 거야.

나는 훗날 내 가족을 꾸릴 거야."




곧 결혼을 앞둔 그는 내게 말한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고르는 데 있어 중요한 건 사랑뿐만이 아니야.

존중. 그가 나를 존중해 주는지,

신뢰. 나는 그를 믿고, 그는 나를 믿는지,

이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의 나쁜 점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이것들이 이루어질 때 사랑이 네게 찾아올 거야.


나는 내게 힘이 되어주고

나에게 책임을 져주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이혼한 부모님 아래 배다른 자매를 가진 메다는

엄마와 함께 살아온 어린 시절을 들려준다.



"이혼한 부모 아래의 자식은 삶에서 무언가 결핍이 있기 마련이야.

나도 아빠와 멀리 떨어져 지내왔지.

그게 나에게 있어 결핍이라면 결핍일 거야.

그렇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해.


이건 결핍이 아니야.

신이 내게 고난을 통해 더 강해지라고 말하는 거야.


아빠 없이 자라온 나지만,

화목한 가정의 아이들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이야."


엄마 아래에서 자라오기 위한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자신을 사랑한 아버지이지만,

본인 삶을 살기에 바쁜 그는 메다에게 많은 사랑을 주지 못했다.


법정 다툼을 거치며 메다는 엄마와 함께 살기를 택했고

자신을 돌보고 지지해 주는 엄마 아래에서 자라온다.



"때로 네가 삶에서 어려움을 맞이할 때, 그건 네가 성공할 거라는 이유야.

네가 삶에서 어려움을 맞이할 때 그걸 너를 더욱 성공시켜 줄 거야."


이혼한 부모님 아래에서 어려운 상황을 보내더라도,

어떠한 것도 나를 막을 수 없어.

나는 성공적인 여성이 될 거야."





"우리는 삶을 살아가잖아.

삶은

공부하고,

일하고,

실수하고,

사랑하고,

관계를 맺고,

관계와 더욱 가까운 사이를 만드는 삶.


그 속에서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을 위해 기다릴 줄 알고

때로 그것을 잡을 줄 알아야 해."


자신의 결핍을 성장의 힘으로 받아들이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본다.

성공한 여성을 말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


그를 감싸는 연둣빛의 히잡이 흘러내린다.

명절을 맞아 화려하게 장식된 의상과 어우러진 그의 우아함을 느낀다.

히잡의 부드러운 천 사이로 드러난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야.
좋은 관계를 맺고, 나누는 사람.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사실 삶이 쉽지 않아, 우리는 강해야 하고, 우리는 가족을 가져야 해.

너를 강하게 만들어줄 가족.
나도 나의 나를 응원하고 서로 사랑해 주며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는 가족을 갖고 싶어.




그는 코란의 내용을 덧붙여 말한다.



"이슬람에서 최초의 인간 아담이 외로움을 느꼈기에 알라는 하와를 만들었어.

아담은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 나눌 누군가를 필요로 한 거지.


너도 알게 될 거야.

네 삶에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도 필요 없다고 말하더라도,

아니, 너는 함께 있을 누군가가 필요할 거야.


우리는 서로 누군가가 필요해."



메다가 보내온 어린 시절 속에서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성장통을 느껴왔을 메다를 상상한다.

사랑하는 삶을 위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그의 철학은

내게 관계의 중요성과 깊은 메시지를 알려준다.



우린

서로를 통해 사랑을 나눈다.

서로를 통해 행복을 나눈다.

서로를 위해 좋은 사람이 되고

서로를 위해 삶을 살아간다.

우린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삶에서

서로에게 빛이 되어준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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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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