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만난 아이작
지리적으로 서아시아에 있는 이스라엘.
오만과 두바이에서 본 중동 이미지를 상상하며
공항에 들어선 내게 펼쳐진 건
히잡을 쓰는 여성이 아닌,
흰색 전통 옷을 걸친 아랍인이 아닌,
검은 양복에 히브리 성경을 끼고 다니는 유대인이다.
조그만 키파를 머리에 놓은 모습,
하레디 중절모를 경건하게 머리에 놓은 모습,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 하나 없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자동차,
깔끔한 기차역과 부드러운 기차의 움직임까지.
화창한 날씨까지 더해져,
이전 서아시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쾌청한 날씨의 텔아비브 거리 곳곳은
유럽 느낌이 물씬 흘러나온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호스트 집으로 향하는 순간조차도
청명한 하늘 아래 깔끔한 도로 위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호스트 아이작은 커다란 창문 앞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감미롭게 흐르는 현의 선율은 화창한 텔아비브와 어우러진다.
아르헨티나 사람인 아이작과 그의 친구 이질코이는
유대인이기에 이스라엘 시민권을 얻으며 텔아비브에서 살아간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이라면 모두에게 시민권을 준다.
세계 도처에 퍼진 유대인은 이를 이용해 이스라엘 시민으로 지내곤 한다.
검은 양복에 진중하고 진실한 유대인 정통파만 있다고 생각한 나는
자유분방하고 독실하지 않은 아이작과 이질코이를 보며 유대인의 관념을 깬다.
"저녁에 *샤밧에 갈 건데, 그전까지 하고 싶은 거 있어?"
샤밧(Shabbat) : 이스라엘의 안식일로 금요일 해진 후부터 토요일 해 지기 전까지를 의미한다.
안식일 동안에는 대중교통이 멈추고, 거의 모든 가게는 문을 닫는다.
이스라엘인은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점심, 손님을 초대해 안식일 만찬을 열기도 한다.
"음.. 잘 모르겠네."
"바다에 갈까? 이곳과 가까워."
짐을 풀고 이질코이와 함께 바다 놀러 가니
반짝이는 지중해는 거센 파도로 우리를 맞이한다.
강렬한 햇살,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바다는
거센 파도와 어우러져 지중해의 힘을 더한다.
"데이지! 지중해는 어땠어?"
거센 파도를 마주한 뒤 돌아오니
샤밧 준비로 와인병을 들고 온 아이작이 묻는다.
우린 서둘러 저녁 식사 준비를 마친 뒤 함께 버스에 오른다.
금요일 해 질 녘부터 토요일 해 질 녘까지 이루어지는 안식일 기간은
대중교통, 식당, 관공서도 운영하지 않는다.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나도 오지 않는 버스에
운영을 안 하는 건 아닐지 불안해하는 나에게
아이작은 안심시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르헨티나에서 살았을 때 나는 *크립토로 모든 돈을 잃었어."
크립토: 암호화폐를 의미하는 'Cryptocurrency'의 줄임말.
당시 곤두박질치던 아르헨티나 경제에서 아이작의 통장은 0원이었다.
유대인이기에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질 수 있는 그.
그가 선택한 돌파구는 이스라엘이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거지."
이스라엘에 와서도 극적인 삶이 펼쳐진 건 아니다.
그는 수많은 구직활동 끝에
조금씩 돈을 벌어가며 힘겨운 삶을 이겨 내왔다.
"삶은 움직이지만 사람들은 안정적인 걸 좋아하지.
심장이 뛰는 것처럼 삶도 뛰어야지 삶인 거야.
굴곡지지 않으면 삶이 아니지."
그의 삶을 듣다 보니 버스가 온다.
버스에 오르며 물끄러미 그의 삶을 돌아본다.
그가 0원과 함께 이스라엘로 떠난 이유는
새로운 출발이 주는 용기를 이용해 새 삶을 시작하려던 게 아닐까.
차창 너머 이스라엘 거리를 바라보다 묻는다.
"아이작,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데?"
"인생은 나무와 같아.
나무는 작은 씨앗에서 시작해 스스로 자라지.
나무는 산소, 과일 이외 일부가 없어도 살 수 있어.
자연은 자연스레 발생해.
나무도 저절로 자라나지.
우리는 자연을 보면 아름답다고 말하잖아.
그렇지만, 우리도 자연이야.
나는 나무의 길을 추구하고 싶어.
잎도 만들고, 열매도 제공하는 나무 말이야.
나무처럼 자연과 함께 자라나는 삶을 살고 싶어.
나의 삶의 이유는
그런 나무의 방식을 찾아가는 거야.
내 안의 평화를 찾는 거지."
"결국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거네."
"맞아.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는 무의미해.
그들은 우리를 방해하려고 노력할 거야.
누구든지 진실이 뭔지 알고 있어. 그렇지만 모두가 진실되게 살지 않지."
뼛속까지 울림 있는 그의 철학을 들으며
안식일 저녁 식사 장소에 도착한다.
30명가량이 될 듯한 사람들은 식탁을 빼곡하게 채운다.
어느덧 배를 채워 빠진 이들을 끝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식탁의 주인공이 바뀐다.
왁자지껄한 샤밧은 자정이 넘도록 저녁 식사를 이어간다.
탁자를 탁탁 치며 노래를 시작하는 주인 유대인의 흥얼거림에 맞추어
우린 금요일 밤의 흥을 돋운다.
모두는 처음 본 사이이지만, 샤밧을 주최한 유대인의 넓은 마음과,
금요일 밤의 온기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같기에 우린 함께 미소를 주고받는다.
이스라엘의 전통음식 후모스부터 시작해 가지조림과 스파게티,
달달한 디저트도 빼곡히 식탁을 채운다.
머리에 천을 감싼 유대교 아내와 길게 턱수염을 늘어뜨린 채 모자를 쓴 남편은
종종 유대교 책을 읽고, 기도를 하기도 하며 밥을 먹는다.
'유대교 남자들은 일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매주 금요일마다 사람들을 초대해 저녁을 대접하는 거지?'
'저들은 어떻게 가정을 유지해 가고 있는 걸까?'
유대 교리에 따라 일하지 않으면서
매번 저녁 식사를 나누는 그들의 삶을 상상한다.
낯선 이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유대 교리와 웃음을 주고받는 문화가 신기하면서도
어릴 적 교회에서 느꼈던 종교단체의 따뜻함이 떠오른다.
안식일 동안에는 노동 없이 영적 성찰과 휴식에만 임하기 위해
휴대폰 사용이 금지되어 사진으로 담지 못했지만,
마음에 깊숙이 남기며 저녁 식사를 마무리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작은 이스라엘에 고양이가 많은 이유를 이야기한다.
"갑작스레 많아진 쥐를 없애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에서 고양이를 푼 거야.
그러나, 고양이와 쥐는 그새 친구가 된 거 있지."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말한다.
"무능한 정부!"
동시에 그도 말한다.
"정말 낭만적인 이야기지."
서로 다른 관점은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만들었다
아이작의 말은 그가 삶을 어떻게 보아왔는지를 알려준다.
나는 아이작의 관점을 사랑하게 된다.
강렬한 잔잔함으로 안식일의 금요일 밤이 지나고
늦잠을 잔 뒤 꼼지락대며 텔아비브 아침을 맞이한다.
커다란 소파에 누워 바라본 큰 창문 너머로
화창한 날씨가 보인다.
텔아비브 아침은 단순하고 깔끔함이 느껴진다.
새벽 4시부터 학생들을 학교로 데려다주고 온 아이작은
기타를 연주하며 아름다운 선율로 아침 공기를 채운다.
"하루에 달걀 두 개씩 먹는 게 적정 영양소야."
잘 잤냐는 인사와 함께 그가 달걀을 건넨다.
살인적인 물가인 텔아비브에서
달걀 한 개조차 흥청망청 쓸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가 보인 배려를 괜히 더 고맙게 느낀다.
우린 함께 아침을 먹고,
아르헨티나 차, 마떼로 티타임을 가진다.
그의 삶과
삶의 철학,
그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점심이 넘도록 이야기 나눈다.
"내가 19살이었을 때 25살이었던 첫 번째 부인과 사랑에 빠졌어.
우리는 완전히 사랑에 빠졌고,
그녀는 엄마가 되고 싶어 했어.
나도 아빠가 되고 싶어 했지만, 아빠의 삶이 뭔지 그 당시에는 몰랐어.
난 준비되지 않은 20살이었지.
결국 그녀는 엄마가 되었지만
우리는 어떠한 것도 준비되지 못했어."
그는 두 명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두 명의 아내가 있다는 것에서 충격을 받았는데,
그둘이 자식과 함께 만난다는 사실에 더 놀란다.
"내가 30살이 되어 다시 아빠가 되었을 때 더 많은 걸 깨달았지.
나는 준비되었고, 아빠의 삶을 경험하면서
놀라운 경험과 감정들을 많이 느꼈어."
"사람들은 남들의 목소리에 너무 신경을 써.
누군가 원하지 않는다면 너도 원하지 않지. "
"네가 네만의 길을 가는 비결은 뭐야?"
"이건 비결도, 비밀도 아니야.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누구도 그러길 원치 않지."
"아마 인간은 다른 누군가를 따라 하고 싶은 본능이 있기 때문 아닐까?"
"시스템은 우리의 본능을 잡아가고 있어.
신호등이 빨간색이면 우리는 멈추지.
무슨 일이든 우리는 우리 본능 안에 살고 있지 않아.
학교에서 그들은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걸 가르쳐주지 않아.
그들은 우리를 가르치길 원하지 않지. "
그의 말은 그동안 살아온 삶의 대부분을 낯설게 보게 한다.
그는 '낯설게 보는' 눈으로 만든 자신의 프로젝트를 이어 말하며
캠핑장 사진을 가져온다.
"그래서 나의 프로젝트는 '본능을 찾자(find instict)'이라고 지었어.
이 야영장은 나의 꿈이야.
이곳에 모여서 동그랗게 앉아 서로를 연결하며 살아가는 거야.
자연에너지를 이용해서 인터넷을 만들고 전기를 제공하고···."
마치 관광 상품인 거지.
사람들은 하나의 악기와 하나의 책이라는 지불수단을 갖고 오는 거야.
사람들은 거기서 일주일간에 살면서 사는 거지."
학창 시절에 여행자가 된 내 모습을 무수히 상상하던 나이지만,
자신의 꿈을 프린트해서 갖고 있는 아이작이 신기하다.
나아가, 이제껏 꿈꿔보지 않은 '본능으로의 귀화' 프로젝트는
내게 새로운 세계를 속삭이는 듯하다.
"데이지, 눈을 감아봐."
그의 속삭임은 내 귀에 닿는다.
"너는 냉장고의 물병을 마신다고 상상해 봐.
그리고 이제 레몬을 갖고 칼을 갖고 그 레몬을 너의 혀에 넣는다고 상상해 봐."
그의 속삭임을 따라 상상의 세계를 잇는다.
은밀하고 천천히 그의 말을 따라 상상한다.
"신맛이 느껴지니?"
"응! 느껴지는 거 같아!
신기하다!"
"그 이유는 네가 너의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야."
"단지 상상만 했는데도!"
마치 영적 체험을 하는 듯한 놀라움은
작은 세계의 문을 두드린다.
놀란 토끼 눈으로 신기해하는 내게 그는 말한다.
"시네스타샤(synestasia).
공감각이지.
우리는 공감각이란 능력으로 모든 걸 느낄 수 있어.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의 시스템이 공감각 능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지."
"데이지, 이걸 기억해.
비록 세상은 넓고 시간이 짧더라도
느리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Live slowly).
느리게 살면 네가 보지 못한 순간이 보일 거란걸 기억해."
그는 작은 세계 속삭임을 다시 한번 두드린다.
"저쪽을 보고 빠르게 여기를 봐볼래?"
그의 말을 따라 벽에 걸린 물건을 본 뒤에 빠르게 아이작을 쳐다보니
그는 이어 말한다.
"시선을 옮기던 중에 너는 무엇을 봤어?"
빠르게 시선을 옮긴 나는 당연히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그럼, 이번엔 천천히 여기를 볼래?"
똑같은 물건에서 천천히 시선을 아이작에게 옮기니
이전에는 보지 못한 티브이와 냉장고, 벽지가 눈에 들어온다.
사이에 본 다양한 걸 나열하는 나에게 아이작은 말한다.
"그게 삶이야."
그의 말이 내 중심으로 한순간에 침투하며
무언의 깨달음을 흡수하는 내게 그는 말한다.
"만약 너의 삶을 살고 싶다면,
느리게 살아.
사람들은 매우 빠르게 살지만, 그들의 삶을 잃어가고 있어.
마침내, 그들 삶의 끝에서 그들은 뭐라고 말할까?
'내 삶을 잃었어!'라고 말하겠지.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더 나기 전에 웃을 줄 아는 거야.
그러니, 천천히 느리게 이 삶을 살아."
그는 덧붙여 말한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어.
우린 우리 안의 소리만을 들으면 되지.
누구도 알지 못해 우리가 느끼는 것을.
우린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거야."
창가 너머 새는 짹짹 소리 내 울고
아이작은 걸걸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사람들은 남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자신보다 더 행복하길 원하지 않아.
그들은 만들어진 무언가를 따라가기 때문이지.
나는 사람들에게 진짜 삶을 보여주고 싶어.
매일 아침에 일어나 단지 먹고 즐기는 거야.
맛있는 음식, 좋은 대화, 멋진 사람들과 함께...."
말끝이 아련해지는 그의 속삭임은
마치 통달한 마법사와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
삶을 꿰뚫는 이야기는 물론
다양한 경험 속에서 발현된 삶의 지혜는 영적 세계와 현실 세계
그 사이에서 심오한 삶의 메시지를 받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누군가 나보고 중국인이 보인다고 해.
과거에 나는 승려였던 게 아닐까 생각해.(웃음)"
그저 신비로운 이 대화에서 그가 경험해 온 삶의 깊이를
그저 가늠조차 할 뿐이다.
결코 죽지 않고 환생을 거친다는 그의 표현에서
과거 정말 승려였을 법한 그의 말을 곱씹으면서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나무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야.
나무의 방식으로
내 안의 평화를 찾는거지
그는 덧붙여 말한다.
"이 삶을 돈을 위해서 산다고?
그건 미친 짓이야.
완전히 슬픈 일이지.
중요한 것은 나는 아빠라는 사실이야.
나의 아들은 내가 선택한 삶을 똑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
첫 번째로 내가 이루어야 하는 건 가족을 위한 무언가야.
그 이후에 나만의 삶을 살아야지.
나무의 삶 말이야."
아이작과의 대화는 마치 운명적으로
나에게 찾아온 듯한 신비로운 느낌마저 든다.
아이작과 같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참 좋다.
아이작과 같은 관점을 가진 사람이 참 좋다.
아이작과 같은 용기를 가진 사람이 참 좋다.
아이작과 같은 속도를 가진 사람이 참 좋다.
어느덧 버스 시간을 훌쩍 넘겨버려 떠날 채비를 한다.
그의 주옥같은 말과 삶의 신비로움 앞에서 작별 인사를 고한다.
그는 나의 손등에 진한 키스를 남기며 말한다.
"데이지, 너의 삶을 응원할게."
굳건히 나무가 되어 살아갈 아이작.
그가 속삭인 본인의 세계를 통해
넓어진 나의 세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말한다.
"아이작, 나만의 나무가 될게.
나무의 길을 추구할게."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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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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