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를 갖는 건 자유를 얻는 거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만난 아던

by 여행가 데이지



이스라엘 홍해에서



잃는 게 있다면 받는 게 있다.

받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사실 그것은 잃는 게 아니다.

사실 그건 받는 게 아니다.



그저 돌아가는 순환의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그건 매 순간 바람의 흐름을 따라 흐르며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IMG_7063.jpg?type=w966 기차 안에서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기차는

이스라엘의 깔끔함과 담백함이 느껴진다.


예루살렘 기차역에 나오니

라이트 레일이 내는 종소리와

길거리 벽에 달린 꽃이 나를 반긴다.



"예로부터 듣기만 했던 예루살렘이구나!"



IMG_7382.jpg?type=w466
IMG_7380.jpg?type=w466
IMG_7385.jpg?type=w466
과거를 걷는 듯한 예루살렘 거리


예루살렘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 과거 역사를 걷는 느낌이 든다.

역사를 가진 도시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깨달으며 상상한다.


'서울에 있으며 서울 과거 거리를 상상하며 걸은 적이 있나?'


언제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며 걸었던 서울 거리에서 벗어나

과거 삶이 투영된 듯한 예루살렘 거리를 걸으며 과거를 상상한다.


IMG_7375.jpg?type=w966
IMG_7372.jpg?type=w466



과거와 연결됨을 느끼고

과거를 살아간 이들을 상상하고 반추하는 행동이

삶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는구나.

역사 도시가 가진 힘을 느끼며

예루살렘 호스트 야던과 다니엘과 집에 가는 길,

집 근처에서 지나가는 이에게 우연히 길을 묻는다.



"혹시, 이곳에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시나요?"


"혹시, 데이지?"


"설마, 다니엘?"



호스트 다니엘은 나를 알아보며 반갑게 집 문을 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손수 호무스를 대접하며 환대한다.



#1. 예루살렘 첫째 날, 다니엘과 함께



SE-f2b72cb1-49d5-4f3b-a293-3c8620e36095.jpg?type=w966 다니엘이 만든 호무스. 호무스는 중동지역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넓은 다락방 느낌의 안락한 집은 편안함을 준다.

따끈따끈하게 나온 호무스는 배조차 편안하게 한다.

병아리콩의 진한 소스에 듬뿍 빠진 채 호무스를 음미하는 나를 보며

다니엘은 웃으며 말한다.



"오늘 마침, 중앙시장에서 공연이 있을 예정인데,

같이 가지 않을래?"


IMG_7349.jpg?type=w466
IMG_7335.jpg?type=w966



그의 제안에 함께 찾은 시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흥으로 가득하다.


잔뜩 시장 내의 흥을 느끼다가 이스라엘 음식을 사서

근처 스트로베리 공원에서 함께 먹으며 이야기 나눈다.


일본 오니기리와 한국 김밥을 헷갈려 하지만

다니엘은 아시아 문화에 큰 관심을 보인다.


흥이 가득했던 시장은 요리사까지도 춤을 추며 요리를 만든다.

함께 리듬에 맞추어 거리 곳곳 시장을 즐긴다.




%EC%8A%A4%ED%81%AC%EB%A6%B0%EC%83%B7_2024-09-24_%EC%98%A4%ED%9B%84_10.28.21.png?type=w466
%EC%8A%A4%ED%81%AC%EB%A6%B0%EC%83%B7_2024-09-24_%EC%98%A4%ED%9B%84_10.27.51.png?type=w466
%EC%8A%A4%ED%81%AC%EB%A6%B0%EC%83%B7_2024-09-24_%EC%98%A4%ED%9B%84_10.28.07.png?type=w466


시장 안과 밖에는 조그만 공연이 즐비하고

저마다 무대 위에서 수준급 이상으로 퍼포먼스를 뽐낸다.


시장의 역사를 기리며 함께 민요를 부르는 사람들,

정장을 빼입고 향수 시음을 하는 유대인 신사,

트럼펫을 맛깔나게 연주하는 연주자와 함께

우린 공연이 끝날 때까지 함께 노래를 부른다.



IMG_7360.jpg?type=w966 시장에서 잔뜩 신이 난 채로 다니엘과 함께

흥이 넘치는 예루살렘의 공연을 마무리한 뒤,

집으로 돌아오며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스라엘은 지금의 땅을 얻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어."


남녀 모두에게 징병제를 운용하는 이스라엘 아래에서

시민들은 만 18세가 되면 군 복무를 한다.


한국도 분단 아래 징병제를 시행하기에

이스라엘 상황을 보며 일부 한국의 모습이 중첩된다.



"한국도 여전히 북한과 전쟁 중이야.

엄밀히 말하면 휴전 상태이지만, 여전히 갈등 중이지."



한국도 여전히 전쟁 중인지 몰랐던 다니엘은

놀란 눈으로 이스라엘 분단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인다.

우린 자국이 가진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국이 끼친 본인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매번 한국의 입장에서만 보았던 분단을

다른 나라 입장에서 바라보고,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을 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한국이 위험해 보이지만,

사실 살아가는데 미디어에서 만큼이나 위험하지 않아."


"예루살렘도 마찬가지야.

우리 매우 안전하게 살고 있지."


%EC%8A%A4%ED%81%AC%EB%A6%B0%EC%83%B7_2024-09-24_%EC%98%A4%ED%9B%84_10.38.39.png?type=w966 예루살렘 거리를 비추는 달



우리의 대화 너머로 예루살렘을 비추는 둥근달이 보인다.

다니엘과 함께 걷는 아름다운 거리는

봄과 여름 사이의 경계를 걷는 기분이다.

오로지 흥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사람들로 붐볐던 거리를 떠올리면

예루살렘이 오랫동안 갈등의 역사를 가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다음날에도 예루살렘 곳곳을 구경한 뒤

홀로 다시 같은 거리를 찾는다.

장사를 정리하려는 듯 저렴하게 판매하는 빵을 사 들고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 거리,

이 낭만,

이 분위기,

이 온도,

이 날씨,

이 냄새까지.


예루살렘 거리 곳곳과 사랑에 빠진다.

예루살렘은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이스라엘의 맑은 날씨는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밝은 흥은 행인마저 춤추게 한다.



IMG_7521.jpg?type=w466
IMG_7344.jpg?type=w466
IMG_7530.JPG?type=w466
거리를 걷는 것 만으로도 행복감에 젖던 예수살렘에서의 순간


여느 때와 같이 한껏 기분 좋은 채로, 집으로 돌아온다.

일에 가느라 늦게 올 다니엘은 없고, 다니엘의 남자 친구 야던이 나를 반긴다.

야던은 학교 시험을 마친 뒤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전까지 시험 준비로 이야기 나눠본 적 없는 우리는

저녁 여유시간이 겹친 우연을 이용해 대화를 시작한다.


자신만의 깊고 확고한 생각은 야더니 어떤 사람인지

짧은 대화에서도 느끼게 한다.



#2. 예루살렘 둘째 날, 야던과 나눈



IMG_7340.jpg?type=w966 이전에 야던과 다니엘과 함께 찍은 사진


다니엘과 2년 넘게 연애를 해온 야던은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다. 그에게 이후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으니

결혼해서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는 대개 자신만의 토대가 필요해.

예루살렘은 나의 땅이기에,

나는 앞으로도 이곳에서 가족을 꾸려 살고 싶어.

그게 내 삶의 이유이기도 해."


우린 자연스레

가족을 만드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그래도, 아직

내 삶을 희생하고 싶지 않아."



부모가 되는데 내 생각을 말하자,

쭉 웃고 있던 야던의 얼굴은 단호하게 바뀐다.



"너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그렇지만, 우리가 얻는 게 있지.

부모가 된다는 건,

희생이 아니야. 교환이지."



bruno-nascimento-eo11MS0FSnk-unsplash.jpg?type=w966 사진: Unsplash의 Bruno Nascimento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제껏 내 시간을 희생하는

내 삶이 사라지는 거라고 줄곧 생각해 온 나에게

그의 말은 쿵 하고 한 대를 때리는 느낌이다.


말을 곱씹으며 깊은 생각에 빠진 내게

야던을 이어서 말한다.



"자유(freedom)는 네가 그것을 위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말하지.

자유(Liberty)는 네가 얻고자 노력하는 것들을 말해.

예컨대 아이를 얻을 자유, 종교를 가질 자유가 있지.

자유(freedom)를 위해 너는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지.

너 옆의 누군가도 필요 없을 거야.

그렇지만, 너만의 반려자가 있는 건 더 많은 자유(liberty)를 갖는 거야.

네가 잃게 될 자유(freedom) 보다 얻게 될 자유(liberty)가 있는 거지."




Freedom이 문자 그대로의 '자유'라는 의미에 머물러 있는 사이 Liberty는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와 함께하면서 수백 년간의 고민이 농축된 단어 이상의 개념으로 진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Freedom은 타인이나 특정 권위의 통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Liberty는 어떤 사회나 국가의 구성원들이 정부로부터 보장받아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는 권리의 총합을 의미한다.


Freedom이 국가나 타인으로부터 얻어내는 것이라면 Liberty는 사회 안에서 형성되는 것이며 사회구성원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부여해 공유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집회의 자유는 일반적으로 Freedom이라고 생각되지만 사실 Liberty의 한 측면이다.

당신은 담배를 필 Freedom이 있지만 담배연기를 흡입하지 않은 나의 Freedom이 당신의 Freedom과 충돌할 때 당신의 담배 필 자유는 성립되지 않는다.

Liberty는 이러한 구성원 간의 상충이 전혀 없다. 나의 Liberty는 당신의 Liberty를 절대 제한하지 않는다.


<Freedom과 Liberty의 차이 [작성자: 이강]>


"부모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야.

나는 아이를 갖는 게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아.

아이를 갖기에 더 많은 자유(liberty)를 얻게 되니까.

자유(freedom)는 때로 과대평가되곤 해.

그러나, 항상 자유(freedom)가 중요한 게 아니야.


'부모가 되는 것'을 자유라는 개념으로 생각해 보지 못한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사고의 영역을 열어준 그를 본다.

그의 말에 크게 머리를 맞는 느낌이 든다.

동시에 우연히 내게 스며든 워런 버핏의 말이 떠오른다.


"그 사람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롤모델을 찾으면 된다."

워런 버핏



워런 버핏의 말처럼,

우린 롤모델 혹은 멘토를 주시하며 그와 비슷해지고자 한다.


나의 롤모델인 우리 엄마.


엄마도 야던과 같이 생각했을까.

나를 위해 쓰던 모든 시간을 결코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를 또 다른 자유라고 여겼을까.



늙어서도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잃지 않은 엄마.

바쁘고 고된 하루 속에서도 작은 것에 감사하는 엄마.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하는 엄마.

가방끈이 짧아도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엄마.


삶의 멘토로 존경하는 나의 부모님.



IMG_7361.jpg?type=w966 사진은 다음날 다니엘과 야던 집에서 맞이했던 아침



야던과의 대화를 끝으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바라본다.

물끄러미 부모님 사진을 보다 보니 누군가 내게 한 말이 떠오른다.



"나중에 아이를 갖게 되면,

제 삶 자체가 말하지 않아도

그 아이에게 모범이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잃는 게 있다면 받는 게 있다.

받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사실 그것은 잃는 게 아니다.

사실 그건 받는 게 아니다.


그저 돌아가는 순환의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그건 매 순간 바람의 흐름을 따라 흐르며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한 이스라엘의 밤이 깊어진다.

나의 행복을 잔뜩 느꼈는지, 달은 노랗게 뜬 채로 창문 너머 내게 인사한다.

달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런 삶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더없이 소중한 자유(Liberty) 일 거야."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https://omn.kr/1p5kj : 오마이뉴스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keyword
이전 23화가난해서 학교를 그만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