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만난 모타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 사해에 가기로 한다.
카우치서핑을 통해 연락이 닿은 모타와 사해에서 만나기로 정한 뒤 사해행 버스에 오른다.
창밖을 바라보며 눈에 담은 이스라엘 풍경은
조금씩 드러나는 사해로 바뀌며 사막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무더위가 피부를 뚫고 들어온다.
사막을 품은 더위는 아스팔트에 돌진하는 듯이 아스팔트를 밟고 나아가는 내내 온몸에 더위를 감싼다.
유심이 없던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무작정 이동하는데,
지나가는 한 차량이 내 앞에 멈추어 창문을 연다.
"데이지?"
나와 만나기로 연락을 주고받은 모타다.
더위를 뚫고 당장 그의 차에 오르니 모타와 그의 친구 무함마드가 인사한다.
몸이 둥둥 바다에 떠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고
머드를 이용해 장난치며 사해를 즐긴다.
모타는 덥다며 바닷속에 들어가지 않고 연신 시샤를 피운다.
무함마드와 나는 사해가 주는 색다른 바다의 매력을
바다와 머드를 오가며, 있는 힘껏 즐긴다.
가만히 부력에 의지해 하늘을 바라보며 둥둥 떠 있는다.
바다에 몸을 담그는 내내 따가운 몸은
바닷물이 살짝만 눈에 들어가도 굉장히 따갑다.
따가움을 무함마드와 함께 공유하며 묻는다.
이스라엘을 여행하며 팔레스타인인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는
팔레스타인인이라는 모타와 무함마드에게 올바른 질문을 고민하다 무작정 묻는다.
"무함마드, 팔레스타인에서 어디 여행하기를 추천해?"
"텔아비브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야. 하이파도 추천해."
그들에게 질문하면서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나 가자지구 내의 지역을 답할 줄 알았던 나는
현재 이스라엘 지역으로 되어있는 도시 이름이 나와 놀란다.
"팔레스타인은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를 많이 갖고 있어.
여기 사해도 자연이 주는 놀라운 선물이지."
아랍어와 영어만 할 수 있는 무함마드의 답과
히브리어를 모른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이스라엘 하이파에 다녀온 이스라엘 호스트 다니엘과 이야기 나누었고,
히브리어로 이루어진 모든 신호판을 지나왔지만,
지금, 이 순간은
팔레스타인 하이파를 추천하는 무함마드와 이야기 나누고 있으며
아랍어로만 소통하며 지내온 이들과 함께 사해에 있다.
같은 땅이지만, 결코 같은 땅이 아닌 것.
같은 땅이지만, 결코 같은 국가가 아닌 것.
뉴스를 통해서만 접한 땅을 둘러싼 갈등을 실감한다.
충격받지만 동시에 드러내지 않도록 하면서 자연스레 대화를 잇는다.
따가운 사해의 염분을 넘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중동전쟁의 갈등은 마음을 콕콕 쑤시는 기분이다.
사해를 나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나를 위해
예루살렘에 데려다준다는 모타와 무함마드 차에 오른다.
팔레스타인인 모타는 이스라엘 구역인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주차하고자 팔레스타인 구역으로 향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테러로부터 이스라엘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2002년에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이스라엘을 둘러싼 분리장벽을 쌓았다. 1948년 발생한 1차 중동전쟁을 시작으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4차례에 걸쳐 갈등을 이어왔다.
팔레스타인 구역에 가까워져 오니 잿빛의 분리 장벽이 보인다.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을 지나치며 이스라엘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긴장감을 느낀다.
장벽이 마치 콘크리트 감옥과 같다고 생각할 찰나,
이스라엘 군인이 차창 너머 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모타, 지금 군인이 왜 우리에게 총구를 겨누는 거야?"
“그야 우리가 팔레스타인이기 때문이지.”
단지 운전만 한 것뿐인 우리는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이유로 위협의 대상으로 간주한 것이다.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는 내게 모타는 말한다.
"나는 어릴 적 미사일로 나의 친구가 죽는 장면도 목격하곤 했어."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 태어난 모타는 어려서부터 조종사를 꿈꿨다.
공항이 없는 팔레스타인에서 다른 나라로 가는 방법이 그에게 주어진 최선이었다.
학생비자를 받아주는 곳을 찾던 중, 스웨덴에서의 교환학생 기회를 잡아 출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스웨덴에서 전공을 살리는 것의 어려움을 느껴 택시 운전사로 일을 시작해 왔다.
스웨덴에서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그의 부모님은 비자 문제로 스웨덴에 오지 못한다.
"탕 탕 탕"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총소리가 퍼진다.
"모타, 방금 총소리가 났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군인이 팔레스타인 아이를 겨냥해 위협을 주기 위해 총을 쏜 거야.
아이가 돌을 던졌거든.”
단순히 돌을 던진 아이를 위협하기 위해 탄환을 발포하다니.
여전히 머릿속에 울리는 총성 소리에 머리가 하얘진다.
씁쓸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짓는 무함마드 뒤로 모타는 말한다.
"이게 팔레스타인인의 현실이야."
분단의 현실적 상황을 총소리에 완전히 정신이 든 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오랜 갈등이 얼마나 첨예한지를 실감한다.
실감으로부터의 반응은 어이없는 웃음과 벌어진 입뿐이다.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팔레스타인인 모타는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특별 허가증을 받아 검문소를 통과한다.
관광객 신분의 나는 절차 없이 버스로 쉽게 왔던 길이지만,
모타와 무함마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갈 때도 마찬가지야.
팔레스타인은 공항이 없지만, 이스라엘 공항을 쓸 수 없어.
육로를 통해 요르단에 가야 하지.
고작 두 시간도 안 되는 거리인 하이파(수도)에 가기 위해서
옆 나라 요르단에 가서 비행기를 타야 하는 거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오랜 갈등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갈등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한 발의 총성에도 놀란 나는
총성 소리를 들으며 자란 모타의 삶 앞에서
말할 무언가도 찾지 못한다.
지난밤 예루살렘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에서
팔레스타인 젊은이 10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우여곡절 도착한 예루살렘.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재난을 추모하기 위해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모든 무슬림 가게의 문은 닫혀있다.
길거리의 깊은 침묵 속에서 오늘 일어난 일을 곱씹는다.
콘크리트 감옥 같던 분리 장벽과
삼엄한 이스라엘 군인의 총구,
어린아이를 향한 총탄과 죽음의 추모.
땅을 둘러싼 대립은 모타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삶을 바꾸었고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오늘 발생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모타는
어릴 적 자라온 동네에서 얻은 무뎌진 마음인 걸까.
인생 한평생 동안 풀리지 않은 갈등 앞에서 찾은 스스로의 방어인 걸까.
평생을 국가 없이 분쟁 속에 놓여있는 삶을 살아온 모타.
그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황금돔사원에서 기도를 마친 모타는 내게 미소 지으며 사원을 나온다.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나의 아이들이 꿈꾸는 삶을 위해서야. 팔레스타인이 자유로워지는 삶이지.
훗날 아이들과 함께
나의 국가 전부를 방문하고 싶어."
스웨덴에서 아내와 함께 있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 모타를 상상한다.
비참한 현실 속에서 저마다 가족을 돌보고 일상을 살아가는 이의 모습이 보인다.
참혹해 보이기만 한 분리 장벽 사이에서 돋아날 초록빛 새싹을 떠올린다.
가까운 미래조차 갈등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분리 장벽 속 새싹은 모타에게도, 우리에게도 삶의 소중한 존재를 위해 오늘도 살아가는 이유를 알려준다.
국가도, 이념적 갈등도, 분쟁도, 전쟁도 막을 수 없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말이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https://omn.kr/1p5kj : 오마이뉴스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