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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막 한가운데에 집을 지으며 사는 거야?

이스라엘 에일랏 사막에서 만난 세르지오와 엘레나

by 여행가 데이지


#1. 너는 오늘 아침, 오늘 저녁의 일을 예상하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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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뜨거운 사해를 지나 바닷가 마을 에일랏에 도착한다.

따가우리만큼 강렬한 햇빛은 에일랏 바다에 분화되어 반짝이는 빛이 된다.

사막에 산다는 에일랏 호스트를 만나니 어느덧 날은 저문다.

오랫동안 자연에 있는 듯이 야생의 모습을 한 호스트는

본인을 세르지오라고 소개하며 따라오라 손짓한다.



깜깜해진 밤, 세르지오 전등에 의지해 산속을 오른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점차 멀어지며 울퉁불퉁 돌멩이 사이를 오른다.

희미하게 파도 소리가 들릴 즈음,

사막 한가운데 우뚝 세워진 집이 보인다.



홀로 있는 나무집 안에는 세르지오의 여자 친구 엘레나와

놀러 온 친구들, 반려묘가 함께 저녁 담화를 나누고 있다.


말 한마디 없이 어두운 사막을 비장하게 오르던 세르지오는

집에 다다라 전등 불빛을 끄며 말한다.


"데이지,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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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온 세르지오와 엘레나는 10년 터울 커플이다.

미용사였던 엘레나에게 머리 손질을 받던 손님 세르지오는

연인관계로 발전해 십 년 넘게 동거를 이어왔다.

여행을 함께 해오다 5년 전, 장기 배낭여행을 함께 시작했다.


"2013년, 여느 때처럼 일상을 지내던 중에 삶에 대한 근본적 접근을 바꾸기로 결심했어.

업무를 마치고 돌아와 차를 팔고 배낭을 메 집을 나섰지.

관심사가 완전히 달라졌기에 가족과 몇몇 친구들과 관계도 유지되지 않았지."



러시아와 인접한 유럽국으로 시작한 여행은

1년 동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머물고,

이스라엘로 그들을 이끈다.


그들은 4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머물며

여행을 집짓기 프로젝트로 발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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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엘레나의 멋진 집 앞과 집 안 풍경



"<두 잇 유어셀프 하우스>라는 프로젝트야.

새로운 장소에서 독립적으로

도시 밖에 스스로 집을 건설하고 살아보는 프로젝트이지."



사막에 우뚝 있는 집이 손수 세르지오와 엘레나 손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상상조차 못 한다.

배낭을 내려놓고 연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데,

엘레나는 방을 소개해 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손님이 묵을 텐트와 연결된 위층,

뒷간에 마련된 자연 화장실,

세수를 하는 수제 화장실, 부엌과 침실을 구경한다.

어디선가 받아오거나 주워 온 액세서리는 벽에 걸려 찰랑거린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 대지인 사막에서

내가 바라본 방들을 짓는데 걸린

그들의 오랜 시간과 맺힌 땀방울을 상상한다.

연신 놀라는 나에게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엘레나는

저녁으로 수제 후모스를 가져다준다.

저녁 식탁에는 세르지오와 엘레나가 에일랏 레스토랑에서 일할 적 만난 친구들과 함께한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친구들은 2년 전, 에일랏으로 거처를 옮겼다.


오늘 아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사살했다는 뉴스를 보고 온 나는

권력 엘리트층이 만든 사건과 관계없이

우크라이나인에게 음식을 나누는 러시아인을 바라본다.

한 식탁에서 음식과 미소를 공유하는 이 순간, 세르지오는 말한다.


"인생이란 결국 주는 것만큼 받는 거야.


하루는 이런 적이 있었어.

내게 필요 없던 비싼 브랜드의 신발을 갖고 있었지.

우리를 찾은 한 청년에게 신발을 주었고, 그는 비싼 신발을 주는 나에게 의아해했지.

그렇지만, 어느 날 우연히 신발 그 이상의 것을 다른 이에게 받게 되었어.


결국 무언가를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하는 게 삶이잖아.

그러니, 마음 넓게 나눠주는 삶을 사는 게 편해."


후모스, 치즈와 빵, 샐러드와 와인이 가득한 식탁에서

한층 웃음꽃이 피어난다.

멈추지 않고 망고와 수박을 들고 오는 세르지오에게 묻는다.


"세르지오,

사막에서 이런 음식은 어떻게 구하기도 힘들 텐데,

왜 이렇게 나누는 거야?"


그가 메는 상아 뼈 목걸이를 흔들며 말한다.


"why not? (안 할 이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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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커플은 우크라이나, 오른쪽 커플은 러시아 출신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우린 다 함께 잊지 못할 저녁시간을 나눈다.



세르지오는 진지하게 말을 잇는다.


"데이지,

오늘 아침을 상상해 봐.

오늘 아침에, 너는 저녁에 이런 사람들(세르지오와 엘레나)을 만날 거라 예상했어?"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집을 짓는 커플을 만나리라 예상하지 못한 나는

적극적으로 고개를 젓는다.


"그처럼, 우리는 우리 앞을 예상할 수 없어.

그러니, 지금을 즐겨."




잠에 들기 위해 제공된 텐트로 올라간다.

텐트 앞에 놓인 의자에 가만히 누워 사막의 밤하늘을 바라본다.

청명한 에일랏의 하늘을 찾은 수많은 별이 밤하늘을 메꾼다.

불확실한 이 순간조차도 즐기라고 말한 세르지오의 울림을 떠올린다.


평온하게 보내던 일상을 벗어나

아는 이 없는 낯선 땅에 집을 짓기 시작한 세르지오와 엘레나.

자신만의 길을 뚜렷이 나아가는 그들이 멋지다.


사막에 덩그러니 놓인 집의 전등불이 꺼진다.

꺼지지 않은 에일랏 사막의 별은 이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2. 바람을 껴안아본 적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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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사막이 품은 일출을 보고자 아침 6시에 눈을 뜬다.

사막 넘어 바다는 지평선으로 해맞이를 준비한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느낀다.



세차게 부는 바람을 두 팔 벌려 맞이한다.

바람은 온몸을 휘감아 나를 껴안는다.

산을 타고 올라오는 일출을 바라보며 두 팔 벌려 있는 힘껏 바람을 껴안는다.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아, 좋다.'


아름다운 일출 못지않게

에일랏이 품은 바다는 환상적이다.



여유롭게 스노클링까지 한 뒤

나른한 마음으로 프로젝트 작업을 하는 세르지오와 엘레나를 구경한다.

화장실 만들기에 몰두하는 세르지오와 정원을 꾸미는 엘레나.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는 이들이 마냥 신기하다.

누가 보아도 독특한 삶인 그들은 남들이 선택한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 위에서 프로젝트를 해내고 있다.

선인장을 옮겨 심는 엘레나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엘레나, 너희가 선택한 삶이 남들과 정말 다른 삶이잖아.

왜 이런 삶을 사는 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내 질문에 엘레나는 선인장을 누르며 대답한다.


"이 삶이 행복하니까."


IMG_8362.jpg?type=w966 집 앞 조그만 정원에 선인장을 심고 있는 엘레나


여행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며

매 순간 새로운 걸 가져다준다고 덧붙이며

그는 이어 말한다.


"우리도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야.

처음엔 관광으로 호텔을 예약하고 사진 찍고 맛있는 거 먹고 돌아오는 여행을 했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방식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더라.

어느 순간 그건, 진짜 여행이 아니란 걸 깨달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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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에 머물며 그들의 삶을 느끼는 게 우리의 여행인 거야.

우리만의 여행을 시작하니까 훨씬 신나고 흥미롭더라.


"가령 러시아를 여행할 때

단지 모스크를 보고 와서 러시아 여행했다고 말할 수 없어.

러시아가 땅덩어리 크기 때문에 다양한 러시아가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진정 러시아를 여행하고 싶다만 오랫동안 머물면서 느끼는 것이 진짜 여행이야."


자신만의 여행이 무엇인지 체득하고

자신의 여행을 하는 세르지오와 엘레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우리는 꿈이 있어.

우리는 지구상의 많은 장소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는지를 보고 싶어.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 있는 멋진 장소를 찾고,

그곳에서 행복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게 꿈이야."



화장실 공사를 마친 세르지오가 저녁을 먹으라 부른다.

우리는 건조한 토양에 뿌리던 비료를 정리한다.

정원을 나와 식탁으로 향하며 엘레나의 말을 되새김한다.


그들의 삶을 느끼고,

그 삶 속에 빠지는 것.

삶을 함께 공유하는 것.



홍해를 배경으로 가진 사막 한가운데에서

별을 바라보고, 함께 저녁 담소를 나누는 것.

그것이 내가 하는 여행이자,

내가 삶을 살아가는 여행이구나.



무언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인 것처럼,


세르지오와 엘레나가 굳건히 가진 그들만의 방식이,

그들 앞에 놓인 프로젝트가,

그들을 계속 나아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


세르지오와 엘레나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세르지오)
나는 삶의 이유가 없어. 삶은 삶이야.
나는 모든 걸 좋아해.

그게 좋은 삶이든, 좋지 않은 삶이든 다 좋아해.
모두는 하나의 삶을 살고 있지.


(엘레나)
나도 세르지오와 같아.
나도 하루하루가 행복해.
매일이 새로운 삶이지.




세르지오와 엘레나는 웃음을 머금고 이어 말한다.


메일 아침에 눈 떠서 조그만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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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순간은 행복을 떠올리지 않는 순간이라는 말처럼,


삶의 이유가 없다고 말하지만

세르지오와 엘레나의 대답 속에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굳건한 의미가 엿보인다.


굳이 이유를 찾지 않고도

자신만의 굳건한 의미로 나아가는 삶,

매일을 살아가게 하는 굳건한 힘.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자신만의 삶을 사는 힘.


그런 삶을 살아오는 세르지오와 엘레나에게서

그 무엇보다 풍만한 삶이 느껴진다.


홍해 사막에서의 두 번째 밤.

텐트로 들어가기 전

사막의 밤하늘과 다시 인사 나눈다.


사막을 둘러싼 고요한 산 가운데로

별들이 총총총 인사한다.

별들에 손짓하며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오늘 저녁에 나눈 이야기 하나,


세르지오와 엘레나가 가진 철학 둘,


그들이 나눈 손길 셋.




홍해의 시원한 바다도,

사막 밤하늘의 별도,

아침의 일출도,

세차면서 포근한 바람도,

에일랏의 마지막 밤을 채워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든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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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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