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에일랏 사막에서 만난 일리야
뻥 뚫린 사막의 밤하늘 아래,
어떠한 고요도 개입할 수 없는 고요함 속에서 숨죽여 별들과 인사한 순간.
검정고양이는 내게 야옹거리며 야릇한 장난을 치고
별들은 달콤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인다.
세르지오와 엘레나와의 환상적인 날들로 사막에서의 시간이 흐른다.
▶ 세르지오 엘레나와 함께한 순간 다시 보기 : 왜 사막 한가운데에 집을 지으며 사는 거야?
우리의 환상적인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찾아온 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일리야.
세르지오, 엘레나 집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신의 거처가 있는 그는
오래전부터 세르지오, 엘레나 이웃으로 어울려왔다.
고작 나무 막대기 몇 개를 세워 만든 일리야의 집은
단출하기 짝이 없지만,
그는 고요한 사막에서 나무 막대기로 둘러싸인 자신의 공간을 사랑한다.
지붕이 없어 비가 오면
세르지오, 엘레나 집을 찾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세르지오, 엘레나 집을 찾아 함께 나누기도 한다.
점심을 함께하여 나른한 오후 시간을 보낼 때
사막의 뜨거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서로의 우주를 공유한다.
새파란 눈동자를 가진 일리야는 이스라엘 청년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자라왔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그의 가정 아래서
그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이스라엘로 넘어왔다.
"홀로 넘어온 거야?
가족이 그립지는 않았어?"
"가족들에게 같이 넘어오자고 말했지만,
그들은 우크라이나에 남고 싶어 했어."
어눌한 어조로 삶을 읊는 그는
언제나 몽상에 빠진 듯 분위기를 풍긴다.
그의 새파란 눈동자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해
그의 삶을 아련하게 만든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유대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전부터 가난했지만,
전쟁 후에도 우크라이나에 남아있겠다는 그의 가족을 뒤로
일리야는 홀로 넘어와 일을 시작한다.
†
"망고 농장에서 망고 따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노란 망고, 빨간 망고를 비롯해
망고 상태만 봐도 어떤지 알 수 있지."
농장 일부터 시작해, 닥치는 대로 잡일을 하며
가난으로부터, 먹고살 궁리로부터 하루하루 분투해 왔다.
그의 분투는 망고를 식별하는데 탁월함으로 나온다며 그는 웃음 짓는다.
독실한 유대인이 아닌 그는
이스라엘로 넘어와 전 여자 친구를 따라
이스라엘 수도 하이파에서 살기도 했지만,
에일랏 사막에서 자신만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이어가는 현재에 만족해한다.
"오늘은 뭘 할 거야?"
"오늘은 글쎄,
무엇을 할까.
음, 망가진 오토바이 수리를 며칠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수리점에 맡겨야 할 거 같아.
수리점에 가볼까."
느린 속도로 어눌하게 말하는 그는
어제도 뉴스에 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사실을 하나도 모르는
순수한 소년의 모습과도 같다.
가난한 가정에서 벗어나 홀로 외딴곳에 발을 딛고
자신의 나라에 폭격이 떨어지고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는 곳에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여유롭고 느슨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전하는 그의 말투는
그가 살아온 삶이 어떤지를 어슴푸레 알려준다.
"우린 평화, 사랑, 존중을 해야 해.
전쟁은 참 아픈 거야.
서로를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잖아.
서로를 껴안고, 사랑해야지."
한결같이 여유를 보이면서도
그는 종종 평화와 사랑에 대한 말을 하곤 한다.
어눌한 말투와 언제나 순수한 미소로 끝나는 그의 말속에서
그가 살아왔을 삶을 상상한다.
나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삶을 겪고
어쩌면 내가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정을 마주했을 그가 지내왔을 길을 떠올린다.
여전히 굶주림에 힘겨워하는 가족과 자기의 삶에서
이다지도 순수한 웃음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난에 허우적거리며 분투하기보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미워하기보다
지금, 이 삶에 만족하고
평화롭고, 사랑하며 지내기를 선택하며
그는 인간이 가진 선한 모습을 실천하기로 다짐한 걸까.
에일랏을 떠나는 날 아침,
아침 인사를 하러 오겠다고 약속한 일리야는
졸린 눈을 비비며 나를 찾아온다.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헤어지기 전,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나와 내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기 때문이야.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다른 이를 위해 언제나 소망을 가져.
주위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어.
그가 어릴 적부터 마주한 가난과
가족을 두고 떠난 나라와
그 나라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전쟁.
그가 내린 결정과
감당하는 결과의 무게를
그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지만,
사막의 단출한 나무판자 집에서 지내며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고,
주위 사람의 좋은 일을 바라며
평화를 이야기하는 그를 바라본다.
그의 어눌하며 느릿한 말투와 함께
새파란 동공이 유독 내 가슴에 짙게 남는다.
앞으로도 순수한 소년의 모습처럼
그의 청명한 눈동자가 여전히 남아있기를
조용히 바라며 사막을 나온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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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