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6 댓글 1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서로를 만지며

요르단 페트라에서 만난 벨라

by 여행가 데이지 Jan 16. 2025


사진: Unsplash의 Kira auf der Heide사진: Unsplash의 Kira auf der Heide

다채로운 물감이 하얀 캔버스에 색조를 달리하듯이

저마다 경험은 짙고 옅은 농도가 되어 삶에 그려진다.


각자의 팔레트로 저마다 한 편의 회화를 만든다.

내가 걸어온 삶과 상대가 걸어온 삶의 색채는 다르다.


색연필을 이용해 세밀한 묘사가 표현되고,

파스텔을 이용해 미묘한 색 변화가 나타나며,

종이에 스미지 못하고 고인 물이 있기도,

유성 재료가 물을 밀어내며 거친 질감을 만든다.


햇빛에 반짝여 투명한 삶이란 그림 속

중요하게 강조되는 피사체가 보인다.


저마다 중요한 가치와 삶의 무게가 다름을 보여준다.

그 다름을 알아가고 존중하는 것.

내가 그림을 보는 이유,

여행하는 이유이자,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이유이다.


요르단 페트라에서 일몰을 바라보며요르단 페트라에서 일몰을 바라보며

다채로운 색의 삶 속 동일한 명제가 있다.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관계를 이루어가며

우린 서로의 관계망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삶이란, 

다양함 속의 동일함,

본질적 동일함 속에서 

다양한 삶의 색채를 그려나가는 것이다. 






황량하지만 장엄하게 펼쳐진 사막.

묵묵히 자리하는 돌덩이는 사막의 쓸쓸함을 채워준다.  

창문 너머 고동색 사막에서 이국적 냄새가 풍긴다. 


창문 너머 기다란 흰색 깐두라(kandura)를 입고 

붉고 흰 체크문양을 가진 카피예를 머리에 두른 아랍인이 보인다.

사막의 유목민, 베두인은 사막 도시를 유유히 방랑하듯 와디무사*를 다닌다. 




*와디무사: 요르단에 위치한 관광지로 '모세의 골짜기'를 의미한다.

*베두인(Bedouin): 사막에서 낙타를 키우며 유목 생활을 하는 아랍민족이다. '사람에 사는 사람들'

깐두라를 착용한 모습, 깐두라(kandura는  상하 일체형의 기다란 원피스로 목부터 가슴까지 전면을 단추로 여밀 수 있다.깐두라를 착용한 모습, 깐두라(kandura는  상하 일체형의 기다란 원피스로 목부터 가슴까지 전면을 단추로 여밀 수 있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사막을 맞이하며

사막이 주는 고요함과 

베두인에게서 풍기는 낯섦에 잔뜩 들뜬다.



와디무사라는 마을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거대 고대 도시 페트라. 

페트라는 바위를 신처럼 여긴 고대 나바테인들의 삶을 담는다. 

바위에서 시작해 바위에서 끝나는 나바테인의 자취를 보고 있노라면 

바위의 굳건한 삶이 느껴진다. 



undefined
undefined
고대 도시 페트라의 모습


페트라에서 호스트 벨라와 만난다.

벨라도 보통의 베두인처럼

흰색의 깐두라와 카피예를 두른 채 나타난다.



"리틀페트라를 먼저 볼래?

아니면 캠프 가서 쉬고 싶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페트라 외에

벨라가 지내는 캠프 주변에는 '리틀페트라'가 있다.



그의 환한 미소를 보이며

만나자마자 나의 선호를 살핀다.




undefined
undefined
벨라의 리틀페트라 근처 조그만 캠프에서


"중국은 어떤 나라야?"


한국인을 처음 본 베두인 벨라는 한국의 존재를 아예 모른다.

벨라 삶에 개념으로 존재조차 없던 한국을 알려준다.


차근차근 한국을 소개하며 나의 우주를 공유하고

사막에서 평생을 살아온 벨라의 우주를 조금 맛보면서

우린 안쪽 깊은 사막으로 들어간다.



덜컹거리는 벨라의 차창 너머 조금씩 인적이 드문 사막이 펼쳐진다.

이제껏 보지 못한 지구의 색다른 모습 앞에서 심장이 요동침을 느낀다.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으려 할 때마다 벨라는 가던 차를 멈춘다.



리틀페트라에 도착해서도

그는 나의 안부를 묻고,

나의 사진을 찍어주고,

리틀페트라에 대해 설명한다.

undefined
undefined
깐두라와 카피예를 입은 베두인의 모습


만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베두인이

온전히 나를 위해 희생하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따뜻함을 직감으로 느낀다.



벨라는 올해 서른 후반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흔을 앞둔 중년 남성이란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때 묻지 않은 어리숙함과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



벨라의 따뜻함을 가리개 삼아

우린 함께 리틀페트라를 걸으며 사막의 더위를 피한다.

협곡이 가져오는 자연의 매력을 느끼고,

상점을 운영하는 베두인과 잠시 대화를 나누면서.


undefined
undefined
나를 위해 요리를 준비하는 벨라


벨라가 운영하는 캠프에서 잠시 낮잠을 자고

차 한잔과 함께 물끄러미 사막이 보내온 영겁의 시간을 바라본다.


불과 오늘 처음 본 베두인과 단둘이 사막에 남아있는 이 순간.

나를 위해 바비큐를 준비하는 베두인의 손을 타고 숯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타오르는 숯의 불길 너머

사막의 수평선 위로 타오르던 태양이 조금씩 진다.

어스름 지는 사막이 가져다주는 고요한 적막.


호 모스, 토마토소스, 채소를 가득 담아 벨라는 익힌 고기를 내게 건넨다.

5성급 호텔이 맞먹는 벨라의 작은 캠프에서

짙은 수평선을 남기며 붉게 타오르는 일몰을 배경으로

서로의 우주를 공유하기 시작한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벨라가 운영하는 캠프의 모습


책을 보며 공부하기보다

당나귀를 타며 밖에 나가길 좋아하던 벨라는

9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시작했다.



관광객을 만나 사막 캠프를 가고,

사해 투어처럼 여행 상품을 꾸리는 그는

일하며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루는 투어를 가서

사막 한가운데 텐트 안에서

관광객과 누워서 자야 하는 상황이었어.

한 여자분이 텐트 안에서 나에게 말하더라.



“벨라! 저를 건들지 마세요.

건들지 말아 줘요!"



잠깐의 침묵이 이어진다.

침묵은 그가 받은 충격을 말해준다.

관광객을 건드릴 생각조차도 없던 벨라는

그저 하나의 인격체로 함께 자리를 공유하는 것뿐이지만,

벨라를 거칠게 취급한 관광객의 말에 대한 상처 말이다.

그는 익은 고기를 내게 얹어주며 말을 잇는다.


"그렇지만,

나는 짐승이 아닌걸.

나도 사람이야."



그의 말을 듣자마자

알게 모르게 그를 경계했던

내 마음이 들킨 느낌이 든다.


요르단 사막 한가운데,

불과 몇 시간 전에 처음 본 베두인과

단둘이 있다는 사실은

남몰래 경계심을 가져다주었다.



"다음날 그 관광객은 내게 사과하며

나에게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키스를 해주었지만,

여전히 내게 상처로 남아있는 순간이야."



나도 모르게 마음을 꿰찬 경계심이

그에게 상처되는 말과 행동으로 보였을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



undefined
undefined
벨라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베두인이었다. 그와 잊지못할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어느새 하늘은 검정 스케치북으로 변한다.

수많은 별은 떨어질 듯이 스케치북을 채운다.

대화는 자연스레 '사랑'을 주제로 넘어간다.


뚱뚱한 사람을 보면 사랑하는 감정이 안 생긴다는 벨라는

여행하며 만난 이탈리아 관광객과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때 그와 함께 사랑을 나눈 모든 순간은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있어.

그이는 지금 다른 남자 친구가 있지만, 그 순간은 영원히 내게 남을 거야."



조용히 눈을 감고 지난 기억을 아련히 품는 벨라.

그 모습은 마치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야수 같다.

사랑에, 애착에 목마르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야수.



짐승이 아닌

하나의 객체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

사막의 유목민인 벨라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사진: Unsplash의 Kira auf der Heide사진: Unsplash의 Kira auf der Heide

다채로운 물감이 하얀 캔버스에 색조를 달리하듯이

저마다 경험은 짙고 옅은 농도가 되어 삶에 그려진다.


각자의 팔레트로 저마다 한 편의 회화를 만든다.

내가 걸어온 삶과 상대가 걸어온 삶의 색채는 다르다.



색연필을 이용해 세밀한 묘사가 표현되고,

파스텔을 이용해 미묘한 색 변화가 나타나며,

종이에 스미지 못하고 고인 물이 있기도,

유성 재료가 물을 밀어내며 거친 질감을 만든다.


햇빛에 반짝여 투명한 삶이란 그림 속

중요하게 강조되는 피사체가 보인다.


저마다 중요한 가치와 삶의 무게가 다름을 보여준다.

그 다름을 알아가고 존중하는 것.

내가 그림을 보는 이유,

여행하는 이유이자,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이유구나.


짙어가는 리틀페트라의 석양을 바라보며짙어가는 리틀페트라의 석양을 바라보며

다채로운 색의 삶 속 동일한 명제가 있다.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관계를 이루어가며

우린 서로의 관계망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삶이란, 

다양함 속의 동일함,

본질적 동일함 속에서 

다양한 삶의 색채를 그려나가는 것이다. 


그가 걸어온 삶의 색과

내가 살아온 삶의 색이,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삶의 무게가 다르구나. 



사막의 고요함을 깨는 밤을 뚫고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브런치 글 이미지 19





내 삶의 이유는
보살핌(affection)이야.
  
서로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를 만지면서
 인생을 나아가는 힘을 얻어. 








Offering others what you have to give. ···  
I mean your time. Your concern. Your stroytelling 

[Tuesday with morrie]



undefined
undefined
잊지 못할 최고의 객실, 사막 한가운데 바위 위에서



하늘에 별이 수도 없이 펼쳐진 밤하늘 아래에서

베두인과 함께 사랑을 논한 밤은

더없이 찬란하고 아름답다.



견고히 자리한 바위 위에 이불을 깔고

눈앞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별을 마주한 채

찬란한 별과 입맞춤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2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https://omn.kr/1p5kj : 오마이뉴스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이전 28화 요르단 슬러시 상인과 함께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