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만난 새뮤얼
"구글에 '프리워킹투어'를 검색해 봐.
팁 기반으로 투어를 할 수 있어."
*프리워킹투어 : 관광객들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도보 투어로 일반적으로 가이드가 지역의 역사, 문화, 명소 등을 설명해 주며, 참가자들은 투어 후에 가이드에게 팁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호스트 친구 이지퀄의 추천으로 구글에 검색해 보니
다양한 프리워킹투어가 나타난다.
이스라엘 텔아비브가 가진 역사와 문화를
설명과 함께 듣고자 몇 가지 투어를 신청해 본다.
'날씨가 이렇게나 좋을 수 있나?'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날씨의 텔아비브.
선선한 바람과 쾌청한 햇살은
뜨거울락 말락 줄다리기하듯 조금의 더위를 선사한다.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 들뜬 마음은
투어 시작 장소인 시계탑에서도 요동친다.
능숙하게 관광객을 이끄는 가이드를 따라
텔아비브 구시가지의 이야기를 듣는다.
십자군 전쟁부터 오스만 제국을 지나 이스라엘 건국까지
구시가지가 담는 역사와 오늘날 활기찬 분위기다.
텔아비브를 감싸는 해변 너머로
텔아비브의 역사와 현대가 어우러진다.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이들,
투어 가이드의 손짓에 반응하는 관광객들,
화창한 날씨와 아름다운 텔아비브 곳곳을 음미하는 나 자신까지.
맑고 푸르른 하늘 아래
오감각을 깨우치는 아름다움은 평화를 자극한다.
순간을 놓칠세라, 투어를 함께하는 청년에게 사진을 부탁한다.
"제 이름은 새뮤얼이에요.
이름이 뭐예요?"
사진을 찍고 폰을 돌려주며 그는 묻는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은 대화의 물꼬를 만든다.
대답을 시작으로 우린 투어 내내 대화를 이어간다.
1993년에 태어난 새뮤얼은 페루 사람으로
태국에서 다이빙 강사의 삶을 앞두고 있다.
페루에서 태국으로 넘어가는 환승국으로 이스라엘이 되었고,
환승 시간 동안 텔아비브를 둘러보고 있다.
자연스레 이어진 대화는 투어가 끝난 뒤,
해안가를 따라 연결된다.
나는 풍경에 감탄해 섣불리 말을 자르더라도
새뮤얼은 내 말이 끝난 뒤 다시 천천히 말을 잇는다.
섬세하고 친절한 그와의 대화는
대화 내내 상대방을 존중하는 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축적된 사려 깊은 태도는 그의 미소로 드러난다.
"원래 내 꿈은 생명과학 분야에서 공부와 연구를 하고 싶었어.
그러나, 가정 상황이 뒤받쳐주지 못했지.
중간에 대학을 그만둬야 했어."
학비 마련 문제로 분투하던 그는 생명과학의 길을 멈추었다.
학교를 나와 그가 선택한 건 다이빙 강사 과정.
물가를 고려해 유럽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고자 했지만
비자와 강사 등록 처리로 인해 태국 피피섬에서 강사 기회를 갖게 된다.
"내 꿈을 포기한 건 아니야.
가정환경으로 잠시 중단했지만,
훗날 다이빙을 통해 돈을 벌고 다시 공부를 시작할 거야."
흔들리지 않은 그의 눈동자는
따뜻함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굳은 의지를 보인다.
그의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니
그동안 내가 무조건 받아온 혜택 앞에서 겸손해진다.
'나는 장학금 같은 한국 시스템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내 분야를 배울 수 있었구나.'
고등학교 졸업 후 자립해 대학생활을 해나가고
스스로 세계여행 비용을 모을 수 있던 것 역시
결코 나 혼자만 해낸 일이 아니란 사실을 다시금 깨우친다.
내게 겸손과 감사를 전하는 그의 눈동자는
강건하면서도 단단해 보인다.
동시에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표정이 좋다.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내가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건 인정해.
그렇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 왔어."
무엇보다 '다이빙'을 사랑하는 새뮤얼.
자신이 마주할 현실 앞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은 그의 모습이 근사하다.
새로운 사랑으로 삶을 여전히 미소로 마주하는 새뮤얼.
그는 다이빙을 사랑하는 이유를 말한다.
"사람들은 스쿠버 다이빙을 처음 한 순간을 인생의 중요한 순간으로 꼽잖아.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그 순간을 지도할 수 있다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일이야."
훗날 그가 유럽이나 아시아에 다이브센터를 만드는 모습을 상상한다.
꿈에 가득 찬 그의 표정은 이글거리며 내 마음에 고동을 울린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을 지도하는 행복.
그 행복을 말하는 그의 웃음이 멋지다.
우린 텔아비브 해변을 걸으며 계속해 우주를 공유한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노래를 들으며,
잠시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바닷가를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물속에서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가정 상황의 변화로 다니던 대학 공부를 관두어야 할 때,
오랫동안 바랐던 생명공학의 꿈을 접어야 했을 때,
현실적 문제 앞에서 자신의 본을 잠시 멈추어야 했을 때,
그가 느꼈을 감정을 나는 헤아릴 수조차 없지만,
수없이 쓰린 밤을 이겨내고
다이빙이라는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모습이 멋지다.
새로 피어난 꿈에서 타인의 행복을 위하려는 그의 모습이 멋지다.
새로 피어난 꿈에서 어린 시절의 본인 꿈을 잃지 않는 그가 멋지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가진 그가 멋지다.
그런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다이빙 이후에 물 밖으로 나오면서 짓는
사람들의 미소를 위해서야.
일몰이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내려앉는다.
뜨겁게 반짝이던 지중해의 바다공기는 한층 수그러든다.
뜨거움으로 가득했던 텔아비브는 한층 시원하게 바뀐다.
새뮤얼이 들려준 본인의 뜨거운 꿈을 조용히 음미한다.
잔잔해진 텔아비브 해변처럼
새뮤얼의 뜨거움을 나만의 잔잔함으로 승화한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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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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