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훈수르에서 만난 샬리니
만남과 배움.
내 여행에서 중요한 단어이자
지금까지 내가 행해온 여행 방식이다.
새로운 삶을 알아가며 나의 세계를 넓히는 일.
나의 세상을 넓혀가며
다른 이를 포용하고 인정하는 법을 깨닫는 일.
깨닫는 과정에서 더 넓은 사람이 되어
나의 것을 나눌 수 있는 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대화하는 일.
이 모든 일은 만남과 배움을 통해 일어난다.
만남과 배움은
내가 여행을 하는 목적이자, 여행을 사랑하고,
여행하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이유이다.
세계여행 100일 차.
국제워크캠프기구를 통해 신청한 2주간의 해외봉사를 위해 벵갈루루를 찾았다.
벵갈루루를 향한 50시간의 인도 기차는 내게 감기와 배탈을 남겼다.
북부 인도와 사뭇 다른 벵갈루루에 쾌적한 느낌을 받지만,
끓는 듯한 배를 움켜잡으며 봉사 단체 관계자를 따라 호텔에 들어간다.
밤늦게까지 배를 움켜잡으며 배탈과 사투를 벌인다.
땀을 흥건하게 흘리며 고통의 밤을 보내고 나니
시끄러운 툭툭 소리가 아침을 알린다.
앓은 채로 침대에 누워있다 점심이 되어 느릿느릿 점심을 먹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본인을 샬리니라고 소개한 그는 멀뚱히 내 앞에 서서
배탈로 꾸역꾸역 점심 먹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픈 환자를 위해 천천히 먹으라는 말은커녕
그는 눈을 통해 내게 말한다.
'빨리 먹고 출발하지?'
차갑기보다 되려 무해해 보이는 그의 눈빛은
샬리니와의 첫 만남을 알린다.
이후 2주간 봉사를 통해
샬리니의 똘망한 눈빛의 무해함을 깨닫는다.
종종 어리숙함으로 변하는 샬리니의 변함없는 무해함을.
"편하게 샬루라고 불러!"
올해로 33살을 맞이한 샬루는 인도 서부 조그만 바닷가 마을에서 자라왔다.
조그만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이기에
ISF 봉사로 인해 마을을 떠나게 된 것은 그의 큰 변화이자, 용기였다.
"어젯밤에 눈물이 나왔어.
봉사할 동안 우리 집을 떠나야 하잖아."
봉사가 시작되는 첫날,
가족과 영상통화를 한 샬루는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고,
그의 언니 역시 한 달 동안 샬루를 보지 못해 눈물을 흘렸다.
'그렇구나. 아주 속상했겠네.'
100일간 세계여행을 하며
가족이 그리운 적 한번 없던 나의 천성 때문일까,
평균적으로 서른 살 넘은 사람들은
독립하여 스스로 살아간다고 생각한 나의 인식 때문일까,
그를 이해하는 말을 하면서도
21살이 되어 전 세계를 여행하는 나에게
33살 샬루가 보인 눈물은 색다른 인식을 준다.
그가 33년 동안 보내온 삶과
내가 보내온 삶은 전혀 다른 형태가 된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샬루이 우주를
그 자체의 본연으로 인정하며
서로 다른 두 우주는 인도 남부 조그만 마을에서 서로 확장된다.
봉사 일과의 시작은 언제나 짜이 한잔과 함께한다.
짜이를 통해 머리를 맑게 해 준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며
샬루는 아침에 한잔, 오후에 한 잔씩 짜이를 마신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짜이를 먹지 못했어.. 너무 속상해.."
한국인이 아침에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못한 것처럼
하루는 짜이를 마시지 못한 아침이면 풀이 죽은 모습을 하기도,
"데이지! 짜이 파워를 받았어! 얏호!"
하루는 대왕 짜이 잔을 마셨다며 매우 기쁜 표정을 짓기도 하며
마냥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보인다.
하루는 화장실 건설로 고된 노동을 하다가 휴식을 취하는 내게 샬루가 말한다.
"데이지, 오늘 다 같이 짜이를 못 먹었잖아.
나는 은밀히 짜이를 먹었어."
몰래 따라오라고 속삭이는 샬루를 따라가니
한 가정집 주인분이 우리에게 짜이와 과자를 내준다.
"샬로, 짜이 사랑이 대단하구나."
"말했잖아, 나는 짜이를 마시지 않으면 에너지가 안 돈다고.
아침에 안 먹으니, 머리가 지끈지끈한 거 있지"
우린 문턱에 걸터앉아 비스킷에 짜이를 담가 먹으며 키득키득거린다.
남아시아의 정글에 광활하게 펼쳐진 바나나 나무와 푸르른 하늘을 보면서
행복과 감사한 이 시간을 샬루와 함께 공유한다.
"우리 집이 그리워."
그러나, 함께 웃으며 보내는 평화 속에서도
종종 샬루가 뱉는 말을 통해
나는 그가 어리숙하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샬루가 종종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듣지 않을 때면,
마치 어린아이와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는다.
"샬로, 내년에 계약 결혼을 할 거라고 했잖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계약 결혼을 하는 이유가 뭐야?"
"아무도 나와 결혼해 주는 사람이 없는걸."
시무룩해하며 말하는 그의 대답은
이제껏 생각해 보지 못한 사고를 가져다준다.
"아무도 너와 결혼해 주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너를 좋아해 주기만을 바라는 거야?"
"내가 마음에 든 사람은 모두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
"서로의 마음이 맞지 않다면,
그럼 결혼을 안 하면 되지 않아?"
"그렇지만, 결혼은 하고 싶은걸…."
"그럼 너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되지!
세상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인도만 해도 14억 인구인걸!"
"그렇지만......"
어리숙해 보이는 그의 사고방식이
그의 나이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내게 놀라움을 안긴다.
띠동갑보다도 더 살아온 샬루가 말하는
의아하고 아리송한 대답은 종종 내게 물음표를 던진다.
'내가 지금 33살 성인과 대화하는 게 맞나?'
서로 다른 우주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샬루를 그 자체로 인정하려고 노력하지만,
자동으로 그를 어리숙한 성인이라 생각하는 나를 종종 마주한다.
그러나,
나의 오만한 이 생각을 반성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온전한 자유시간이 주어진 하루.
숙소 근처 조그만 카페에서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운다.
통신 장애로 꺼진 와이파이를 두고 작업에 몰입하다 보니 어느덧 바깥은 껌껌해진다.
다시 연결된 와이파이로 잠깐 연락을 확인하니 샬루에게 10통의 전화가 와있다.
저녁 10시부터 나를 기다리고 찾아다닌 샬루는
다급하게 전화를 받은 나에게 온갖 걱정을 쏟아낸다.
"데이지. 이 마을을 밤에 특히 위험해.
절대 밤늦게 홀로 다니면 안 된다고."
다급히 내가 있는 카페로 달려온 샬루에게 말한다.
"미안해."
"이건 사과의 문제가 아니야. 너의 안전이 달린 문제이고,
너의 안전은 무엇보다도 최우선이야.
우린 너의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
안내 책자에 9시 이후에 나갈 수 없다고 적혀있잖아."
샬리니는 내가 걱정되어 눈물을 흘린다.
눈물의 흔적을 보면서도 그가 어리숙하다고 느끼지만
한편으로 나를 위해주는 그 어리숙함에 고마움을 느낀다.
차에 올라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샬리니는
밤에 마을이 얼마나 위험한지,
시간이 얼마나 늦었는지
열변을 토한다.
괜히 나를 걱정하고 위해주는 그의 마음이 고맙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
정식으로 한 번 더 사과하고 저녁 준비 후 잠자리에 들렸는데 문자가 온다.
'아까 내가 무례했던 거 같아. 미안해.
나는 네가 걱정되었어.'
그저 어리게 생각한다고만 여긴 그에게서
어두운 인도의 작은 마을을 가벼이 여기고
단체의 약속을 어긴 내 모습이
얼마나 더 어리고 어리숙한 행동인지 깨닫는다.
어리숙하고 무해해 보일지라도,
그는 무엇보다 따뜻한 눈물을 갖고 있다.
나는 그 눈물 앞에서
나의 어리숙함을 반성한다.
문득, 함께 봉사 마을을 오가며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샬루, 다시 태어나도 인도에서 태어나고 싶어?"
"응. 나는 우리 인도의 문화가 좋아. 너는?"
"음... 나는 한국에서의 삶을 경험했으니까
다른 곳을 경험하고 싶은걸.
캐나다에서 살아보고 싶기는 하다."
"난 인도가 좋아. 우리 마을이 좋고. "
내 삶의 이유는 나의 가족이야. 특히 나의 엄마이지.
앞으로도 가족들과 함께하며 살아갈 거야."
조그마한 마을에서 자기 삶에 만족하며
꼭 큰 꿈을 꾸지 않아도,
자기 삶에 만족하며 사는 샬루.
그를 통해 삶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새로운 삶을 알아가며 나의 세계를 넓히는 일.
나의 세상을 넓혀가며 다른 이를 포용하고 인정하는 법을 깨닫는 일.
깨닫는 과정에서 더 넓은 사람이 되어 나의 것을 나눌 수 있는 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대화하는 일.
이 모든 일은 만남과 배움을 통해 일어난다.
샬루와의 만남은 나를 더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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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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