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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졸업 한 엄마는 학습지 배달 '선생님'

여름 날 매미는 울어야 산다.

by 라구나


그날은 아침부터 매미 울음소리가 유독 큰 여름날 아침이었다.

유독 큰 울음소리를 내는 매미는 어제저녁 밤부터 울고 있는 그 매미인 것 같다.

다른 매미가 울지 않아도 본인은 울어야 한다는 것이 그 매미의 존재 이유다.

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계약을 그 누군가와 맺은 것처럼.

그 누군가는 신일까, 사람일까, 매미일까. 아마 대장 매미일 확률이 높.

그 매미는 끊임없이 울어야 살 수 있는 매미다.


나는 내 휴대용 가방에 플라스틱 물통에 담은 원한 물 한 병과 손수건을 담았다.

그리고 상준이 형에게 받은 레포츠 21단 자전거 쇠 자물쇠를 하나씩 푼다.

'6636'

상준이 형이 만든 자물쇠 번호인지 만들어질 때부터 만들어진 비밀번호인지는 모르겠다.

기회가 되면 상준이 형을 만나서 물어고 싶지만 상준이 형은 먼 곳으로 이사를 갔.

자물쇠 고 자전거에 앉아본다.

레포츠 21단 자전거이다.

그렇게나 가지고 싶던 기어를 바꿀 수 있는 자전거다.

상준이 형이 나에게 자전거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자전거는 여름에만 달리는 자전거야. 겨울에는 달리지 못해"

"형, 왜 이 자전거는 겨울에는 못 달려?"

"나도 여러 번 시도해 봤는데 이상하게 겨울에는 자전거를 탈 수가 없어"

나는 믿을 수 없는 상준이 형의 이야기를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

"겨울이 되면 자전거는 움직이지 못해. 그게 추운 날씨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어, 다만 나는 이 자전거를 겨울에 한 번도 탈 수가 없었어. 혹시 모르지 너는 겨울에 탈 수 있을지도?

겨울에 달릴 수 없는 자전거.

그 자전거를 타고 있는 지금은 다행히 한 여름이다, 7월과 8월 사이의 여름. 7월과 8월 사이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한다.


엄마가 무거운 학습지 가방을 들고 집에서 나다.

국민학교 여름 방학이라 오늘은 엄마를 도와서 학습지를 같이 배달하려고 한다.

사실 엄마를 돕기보다는 상준이 형에게 받은 21단 레포츠 자전거를 시험해보고 싶은 욕심이 더 크다.

엄마 자전거는 기어가 없는 자전거다. 자전거 앞에는 커다란 철제 바구니가 달려있고 그 철제 바구니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아도 무거워 보인다. 아주 단단하고 무거운 쇠창살로 만들어진 바구니다. 습지를 훔쳐갈 용기조차 무력화시키는 단단하고 무거운 쇠창살 바구니. 엄마는 그 무겁게 보이는 바구니에 무겁게 보이는 학습지가 가득 들어있는 가방을 올려놓는다. '툭'하니 자전거 앞바퀴와 뒷바퀴가 위아래로 요동친다.

매미는 아직 울고 있다.

엄마가 나에게 묻는다.

"준비됐어?"

"웅 난 아까부터 준비가 됐는데?"

"그래, 그럼 이제 출발하자"

그렇게 엄마와 내 자전거의 바퀴는 천천히 돌기 시작다. 천천히 천천히 바퀴가 바퀴가 빨라지고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매미 울음소리는 점점 점점 작아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 이상 '그' 매미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매미가 울음을 그친 것인지, 매미와 멀어져서인지, 자전거 바퀴가 돌기 시작해서인지는 알 수가 없다. 집으로 다시 돌아을 때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자전거 바퀴가 쉴 수 없이 돌아간다.

아스팔트 바닥은 른 아침이지만 여름의 햇빛으로 조금씩 말랑해지고 있었다.

나는 엄마 자전거 길이보다 3배 정도 앞선 위치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다.

레포츠 21단 자전거가 기어가 없는 엄마 자전거보다 뒤에 있는 일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갈림길에서 내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없었고 하는 수 없이 엄마 자전거보다 반 자전거 크기만큼 뒤 떨어져서 엄마를 따라갔다. 내 레포츠 21단 자전거 체면이 말이 아니다. 상준이 형은 이 광경을 더라면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혹시 몰라서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엄마와 내 자전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천만다행이다.

엄마 자전거의 뒷바퀴와 내 자전거의 앞바퀴가 맞물려 함께 움직이듯 나아갔다. 내 키보다 2배 정도 높은 여름 아침 하늘에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 한 쌍이 보였다. 잠자리 한 쌍은 목적지가 없이 자유롭게 날다. 엄마와 나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잠자리. 그건 어린 날의 내가 본 잠자리의 자유였다. 실제로 잠자리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자유롭게 날아다닌 잠자리 한 쌍을 잡아서 각각 독방에 넣고 '죄수의 딜레마' 질문을 하지 않으면 정확한 대답을 듣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유롭게 날았는지 자유롭지 않게 날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엄마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본 잠자리가 자유롭게 날았다고 느낀 그 순간이 중요했다. 성인이 되고 또 십여 년의 세월이 2번은 지나서 희미하게 느껴졌다. '자유'는 하늘을 마음대로 날 수 있는 여름날의 잠자리에게만 주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말이다.


36분가량 엄마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엄마의 일 자리에 도착했다.

처음 와본 엄마의 일 자리에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여기 이모 사는 곳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웅 맞아, 여기 중심부에 이모 집이 있어"

"여기 중심부에 이모 집이 있다고?"

"웅 엄마 일 하는 이곳, 중심부에 이모집이 있어. 설날에 왔었던 것 기억하지?

이모의 집은 먹을 것으로 기억한다. 이모는 요리를 정말 잘한다. 이모 집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식혜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이모는 내가 식혜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명절이면 꼭 식혜를 해주셨다. 돼지머리가 두 개는 들어갈 것 같은 큰 통에 맛있는 식혜가 한가득 담겨있다. 나는 그 식혜와 함께 가라앉아 있는 밥을 한 움큼 가득 푼다. 차갑고 단 식혜를 마시고 남아있는 물컹하고 이를 살짝 대기만 해도 샤르륵 부서지고야 마는 밥을 큰 수저로 퍼먹는다. 차고, 달고, 부드러운 식혜 밥. 매가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가리가 다 빠져버린 식혜 밥. 난 식혜 밥을 국 수저로 두세 번은 퍼 먹어야 '아 이제 명절이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36분가량을 자전거를 타고 온 바람에 그리고 바람이 하나도 안 부는 바람에 땀이 송골송골 이마에서 튀어나왔고 땀과 땀이 만나 '땀강' 이루어 이마를 슬며시 흘러내려왔다. 이모의 시원한 식혜가 더욱 생각났다.

엄마에게 물어본다.

"엄마 이모집에 식혜가 있을까?"

"식혜 먹고 싶어?"

"날씨가 더워서 그런가 식혜가 먹고 싶긴 한데... 난 이모 식혜 아니면 맛이 없어서~"

"식혜는 명절 아니면 보통 해 먹지는 않으니까 없을 것은데 엄마가 집에서 해줄게"

"웅 그냥 이모 집이 여기 있다고 해서 생각나서 물어본 거야"

"시장 가서 있으면 식혜 사줄게"

"아니야 괜찮아 빨리 가자"


엄마의 일자리는 그 어느 회장님의 집무실보다 넓었다.

빌라와 빌라 사이를 자전거로 비집고 들어가서 정해진 위치에 학습지를 내려놓는 것이 엄마와 그리고 오늘 하루 나의 일이었다.

참 신기했다.

엄마는 지도나 메모장 하나 보는 것 없이 어디에 학습지를 내려놔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아들, 여기 빌라 2층 오른쪽 집이야. 학습지 가방이 달려 있으니까 거기에 집어넣고 오면 돼"

"웅 알았어 엄마"

나는 후다닥 재빠르게 뛰어서 학습지를 넣고 내려왔다.

그런데 엄마는 안 보이고 엄마 자전거만 옆 건물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원래 그 자리에 영원히 있었던 것처럼.

'엄마도 학습지 배달하러 갔나'

그때 먼지가 잔뜩 낀 창문 사이로 엄마가 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다가 5층에 도착해서 학습지를 두고 깊게 숨을 내쉬면서 주머니에 꽃무늬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는 모습이 보다. 작년 엄마 생신 때 사드린 3개에 만원 하는 BYC 손수건 세트 중 하나였다.

그리고 다시 먼지 낀 창문으로 엄마 내려오기 시작한다.

4층, 3층, 2층, 1층...

복도 창문에 낀 먼지는 제각각이지만 엄마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1층에 도착해서야 엄마의 표정은 서서히 변한다. 무표정에서 웃는 모습으로.

"아들 잘 넣고 왔어?"

"웅, 2층에 오른쪽 집에 넣고 왔어"

"아들 잘했어 고마워~"

"웅 내가 다음엔 높은 층 올라갈게! 엄마는 느리니까 낮은 층 해~"

엄마는 살며시 웃는다.

"아들 고마워"

엄마와 나는 다시 자전거 페달을 굴렸다.

바람 하나 불지 않는 여름날의 햇빛은 뜨웠다.

엄마는 이 여름에 매일 학습지를 돌리는 것일까?




눈앞에 높은 언덕길이 보인다.

"엄마 여기 올라가야 해?"

"웅웅 아들 힘들면 끌고 천천히 올라와"

엄마의 말이 나의 승부욕을 오히려 자극했다. 레포츠 21단 자전가가 있는 나에게 언덕길을 내려서 올라오라고? 나는 다시 주변에 상준이 형이 있는지 돌아봤다. 분명 상준이 형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능숙하게 기어를 바꾸고 페달을 렸다.

기어 21단이다. 이 정도 언덕쯤은 문제없다.

혼자 열심히 앞만 보고 올라가고 보니 엄마는 아직도 제자리에 있는 듯하다.

아 맞다. 엄마 자전거는 기어가 없지.

엄마는 중간쯤부터 자전거를 끌고 올라온다.

하는 수 없이 엄마에게 다시 내려가 본다.

"그러니까 내가 기어있는 자전거로 바꾸랬잖아"

"괜찮아, 엄마는 내려서 올라가는 게 좋아"

"아후~내가 다시 내려와서 그러지"

"아들, 안 힘들어? 방학인데 엄마 일 도와주고"

"하나도 안 힘들어, 상준이 형이 준 자전거가 좋긴 하네"

"다행이다, 얼른 일 다 하고 엄마가 맛있는 점심 사줄게"

힘들게 올라왔던 시청 언덕길 너머로는 그만큼 내려가야 하는 내리막길이 있었다.

"오예~엄마 나 먼저 내려간다"

"조심해서 내려가 천천히 천천히"

한 여름의 바람은 시청 너머 내리막 길에 모두 모여있었다.

가파른 내리막길과 함께 시원한 여름 바람이 나를 거칠게 매만졌다. 시원하고 거침없었다.

오르막 길을 올라간 시간의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시간에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멀리서 엄마가 내려오는 게 보인다. 오르막길과 똑같이 엄마는 천천히 천천히 내려온다.

내가 크게 소리쳤다.

"엄마 빨리 내려와야지 왜 천천히 와 재미없게"

나는 소리치지만 엄마는 대답이 없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리막길은 저렇게 타는 게 아닌데...

엄마는 내가 서 있는 지점을 살짝 지나쳐서 멈췄다. 멈추는데 자전거에서 크게 "끼이익" 소리가 난다.

"왜 이렇게 끼이익 끼이익 거리는 거야?"

"웅 자전거가 배고파서 그래"

"자전거가 배고파서 그런다고?" 엄마의 농담은 항상 재미가 없다.

"내가 엄마 자전거 타볼게 엄마가 내 거 타봐"

"안돼~엄마는 엄마 자전거 탈 거야"

"내가 한번 볼게 잠깐 내려봐"

엄마는 마지못해 자전거에서 내린다.

나는 엄마의 기어 없는 어른용 자전거도 탈 수 있다는 것을 뽐내려고 이리 갔다 저리갔다를 몇 번 반복했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잡아 보는데 브레이크가 잘 안 잡히고 아까와 같이 "끼이익" 소리가 들린다.

달리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듯 브레이크를 밞을 때마다 '끼이익'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끼이익 힘들어 이제 그만' '끼이익 살려줘' '끼이익...제발' '끼이익'

"엄마, 이거 브레이크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웅 좀 그런 것 같아~ 괜찮아 조심히 타면 돼"

"고장 난 것 같으니까 럭키슈퍼 앞에 자전거 가게 한번 가봐"

"웅 알았어 고마워 아들~"

엄마는 항상 그렇다. 괜찮다고 하고 문제없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문제가 많아 보이는데...


그리고 다시 자전거는 출발한다.

천천히 천천히 빌라와 빌라 사이를 미로처럼 돌아다며 학습지를 배달한다. 학습지에 미로를 나가는 방법이 적혀있을까? 나는 엄마의 명령을 받으면 쏜살 같이 튀어가서 학습지를 넣고 오는 일을 반복한다. 학습지를 넣고 나오니 엄마가 요구르트 배달 옷을 입은 아줌마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엄마에게 다가가는 나를 보고 요구르트 아줌마가 흠칫 놀라며 엄마에게 이야기한다.

"오늘은 아들이랑 왔어요?"

"예. 아들이 여름 방학이라고 도와준다고 해서 같이 왔어요"

"아들이 착하네 엄마 일도 도와주고"

나는 사실 상준이 형한테 받은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나온 것인데 갑자기 효자가 된 기분이다.

"예 우리 아들이 효자예요~"

"엇어 내 정신 좀 봐. 이거 하나 먹고 하렴. 착한 아들, 아들이 참 잘 생겼네"

요구르트 아줌마가 나에게 작은 요구르트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하고 나는 요구르트를 단숨에 먹어 치워 버린다. 달콤 새콤한 요구르트가 시원하고 맛있다.

"그럼 수고하시고 다음에 또 봐요. 착한 아들 엄마 잘 도와드려~"

엄마가 대신 대답한다.

"예, 요구르트 감사합니다."

"예 더운데 수고하세요."

나도 요구르트 아주머니께 고개 숙여 인사했다.

엄마와 나는 다시 골몰길을 돌아다녔다. 붉은색 벽돌로 지은 빌라와 빌라 사이를 미로처럼 돌아다녔다.

그렇게 2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가서 또 다른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는 엄마가 갔다 올 테니까 아들은 여기 잠깐 있어"

엄마는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노벨과 개미예요"

조금 있다가 한 아줌마가 문을 열고 나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예옙, 아이고 오늘 날씨가 푹푹 찌네요. 고생 많으세요. 물이라도 한잔 드릴까요?"

"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여기 학습지 받으시고요. 지난달 요금을 아직 못 받아서요..."

"아 맞아요. 제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줌마가 문을 닫고 다시 후다닥 집으로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잠시 뒤에 시원한 물병과 컵 그리고 돈을 가지고 나왔다.

"죄송해요. 선생님. 매번 깜빡해서 여기 지난달 요금 받으시고요. 이거 물 한잔 드시고 하세요."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엄마의 어깨 뒤로 나를 슬쩍 쳐다보신다.

"선생님 아들이에요?"

"아, 옙옙. 인사해 아들"

"안녕하세요."

"여름 방학이라고 일 도와준다고 같이 왔어요"

"어머어머 세상에, 너무 착해라. 일루 와볼래?"

쭈뼛쭈뼛 올라가니 아줌마가 나에게 물을 따라주고 5천 원짜리 지폐를 하나 꺼내신다.

"너무 착해라, 이거 물 마시고 아줌마가 이건 아이스크림 먹으라고 줄게"

"아 괜찮아요 안 주셔도 돼요" 엄마가 급히 돈을 제지하고 나선다.

"아 선생님, 아들이 너무 착해서 그래. 편하게 생각하세요. 여기 여기 이거 받고 좀 있다가 아이스크림 사 먹어. 알았지?"

"옙 감사합니다" 나는 마지못하는 척 5천 원을 받아 챙긴다.

"아들이 너무 잘생겼다"

"감사합니다. 물도 잘 마셨고요."

"옙 선생님, 들어가 볼게요 더운데 수고하시고요. 아들 엄마 잘 도와드려~"

"옙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엄마가 대신 대답한다

엄마와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탈 준비를 했다.

"아들 힘들지? 이제 거의 다 했어 여기서 좀만 더 가서 다섯 집만 배달하면 끝이야."

"아니야, 하나도 안 힘들어."

"아들 고마워. 빨리 하고 맛있는 점심 먹자."

"웅, 근데 엄마한테 사람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네?"

"웅, 엄마 선생님이야."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엄마는 부끄러운 듯 싱긋 웃는다.

엄마는 엄마인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라니. 담임 선생님인 김병삼 선생님만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우리 엄마도 선생님이었다. 우리 엄마는 국민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고 김병삼 선생님은 교육대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아는데 꼭 대학교를 졸업해야 선생님이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사람들이 엄마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 갑자기 엄마가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마지막 다섯 집을 배달하고 나니 쇠창살 같여있던 학습지들이 용케 모두 탈옥한 듯 엄마의 학습지 가방과 철제 바구니가 가벼워 보였다. 탈옥이 다 나쁜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많은 않은 것 같았다.

"아들 덕분에 오늘은 일찍 끝났네. 고마워 아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엄마는 학습지를 배달할 텐데 내 레포츠 21단 자전거 성능테스트는'이상 없음'으로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아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웅 아니 없는데."

"그럼 일단 집 쪽으로 돌아가면서 찾아볼까?"

"웅 그래 가는 길에 한번 보자"

엄마와 나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꼬불꼬불 빌라 미로를 지나서 내리막길을 다시 오르고 오르막길을 다시 내려가고 테이프를 뒤로 감듯이 왔던 길을 되돌았다.

힘들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아들 힘들지? 오늘 괜히 따라와서 아들 힘들겠어"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엄마는 학습지를 배달할 텐데... 내 레로츠 21단 자전거 성능테스트는 '이상 없음'으로 종료되었는데...

"아들 저기 롯데리아 있는데, 저번에 동민이 생일파티에서 먹었는데 맛있었다면서, 그거 햄버거 먹으러 가볼까?"

동민이 생일파티에 처음 먹어본 '데리버거'. 엄마에게 그 햄버거를 먹고 와서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엄마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데리버거' 안에 악마의 갈색소스가 발라져 있다. 동민이 생일파티에 먹었던 데리버거에 감자튀김 그리고 시원한 콜라를 마시면 기분이 째질 것 같다.

엄마랑 함께 롯데리아 앞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니 투명한 유리창에 데리버거 세트가격이 포스터로 대문짝만 하게 적혀있다.

'롯데리아 데리버거 SET 3,200원'

"아들 오늘 고생했는데 우리 맛있는 햄버거 먹고 들어가자."

햄버거가 무지 먹고 싶었지만, '3,200원'이라는 가격 포스터가 싸니까 들어와서 먹으라고 붙여놨을 텐데 나에게는 '경고장'으로 보였다.

'롯데리아 데리버거 SET 3,200원'

'3,200원' 너무 먹고 싶었지만 먹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너무 먹고 싶었지만.

"엄마, 나 힘든데, 집에 얼른 가서 쉬면 안 될까?"

"어디 아파? 그래도 맛있는 거는 먹고 가야지."

"아니 어디 아픈 건 아닌데, 힘들어서 집 가서 쉬고 싶어."

"그래? 에휴 우리 아들 오늘 갑자기 너무 고생해서 그런가 보다. 그럼 좀만 힘내서 집에 가자. 엄마가 집에 가서 임연수 구워줄게."

"웅웅 그러자."



그렇게 엄마와 나는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밞았고 데리버거와도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천천히 천천히 왔던 길을 돌아서 집으로 갔다. 데리버거와 멀어짐이 아쉬운 듯 페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자전거가 여름에 너무 달려서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는 것일까?'

'아니면 자전거는 죽었다가 겨울이 지나서 다시 태어나는 것일까?'

이제 저 멀리 우리 집이 보인다.

무덥고 바람 하나 불지 않는다.

점점 매미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집 앞에 그 매미가 분명하다. 페달을 밞을수록 매미소리가 커진다. 매미는 울고 있다. 망을 보고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 우는 것인지 계속 성실하게 울고 있었는지는 몰겠다.

"맴맴맴맴"

매미는 한 여름에 울어야 사나 보다.

"맴맴맴맴"

못된 대장 매미가 부하 매미에게 쉴 새도 없이 울라고 한 것이 분명하다.

양버즘 나무 몸통이 3갈래로 나뉘는 오른쪽 갈래에 매미가 붙어있다.

어제저녁부터 끊임없이 울고 있는 그 매미다.

힘들어도 더워도 매미는 울어야 한다.

그래야 그래야 매미는 살 수 있다.

"맴맴맴맴"


그래야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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