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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인생 연봉 협상 시작
돈의 무게
by
라구나
Mar 08. 2024
땅콩처럼 길쭉한 형태의 하얀 공간
방금 전까지 있었던 공간이 눈처럼 새하얀 공간이었다면 지금 들어온 공간은 하얗지만 회색 빛을 띠는 좀 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니 멀리서 누군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머리는 이 공간과 비슷한 회색 머리이고 얇고 동그란 안경을 쓴 중년의 남자로 보였다.
하조대 앞 동해바다의 물결을 닮은 부드럽고 유연한 포물선 형태의 하얀 책상에 앉은 그 사람은 하얀 종이에 적힌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조금씩 걸어갔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본 그는
재킷은 입지 않고 있
었지만 다림질이 말끔하게 된 하얀 셔츠를 살짝 폼 입게 입고 있었다. 넥타이는 하지 않았다.
덩치가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살짝 통통한 축에 속하는 체형이었고 키는 170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나이는 50 초중반으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다가가고 있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내가 있는 쪽을 쳐다보지 않고 책상 위에 놓인 하얀 서류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그 종이를
보기 위해 이 공간이 존재하는 듯하다.
이제 그 사람과 나의 거리는 열 발자국 내외에 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 사람이 앉아있는 의자 뒤로 내 양손을 다 뻗은 크기보다 큰 유리창문이 보인다.
유리창문으로 환하고 밝은 빛이 책상의 서류가 있는 만치 뻗쳐 나갔다.
하얀 이 공간과 하나 같이 어울리는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다.
드디어 그가 서류에서 눈을 떼고 내 쪽을 살펴보며 말을 걸었다.
"이쪽 의자에 앉으세요"
팔걸이가 없는 연한 베이지색 오동나무 의자가 책상 앞에 무심히 놓여있었다.
아무 대답이 없는 나를 향해 그는 왼손을 들어 의자를
가리키며
소리 없이 이야기했다.
'이쪽 의자에 앉으세요'
그 사람의 명령, 요청,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자유'가 나에게 없는 것처럼 나는 오동나무 의자를 살며시 뒤로 미루어 앉으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마음속에서 또 다른 내가 소리쳤다.
'앉지 마! 도망쳐!'
왼쪽 무릎을 구부려 앉으려는 순간 다시 일어난 나를 보고 그는 이번에 눈으로 나에게 이야기했다.
'이쪽 의자에 앉으세요'
'자유'가 없다. 그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고 도망치고 박차고 나갈 '자유'가 없다.
굴복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일까?
모든 걸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오동나무 의자에 앉았다.
그는 다시 서류를 들고 쳐다보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뻘쭘한 손과 다리가 어떤 방향으로 어떤 형태로 잡고 있어야 할지 내려놔야 할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손을 모두 책상 아래로 놓고 있으니 갑자기 내 안의 무엇인가가 또다시 소리쳤다.
'
쫄
지 마! 왜
쫄
아?!'
그러면 오른손을 들어 살포시 책상 위로 올려놓자 이번에는 왼쪽 발이 뻘쭘하게 느껴졌다.
살포시 발을 꼬고 앉아볼까 생각이 들어 왼발을 들어 다리를 꼬려고 하자 내 안의 무엇인가가 다시 소리쳤다.
'꼬지 마! 왜 꼬아!?'
다리를 꼬려다 만 다리가 서글프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는 사이 팔짱도 껴보고 의자를 고쳐 앉기도 하고 그 사람이 나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시나브로 그 사람에게 구속되고 있었다.
공간, 시간, 그리고 빛으로
서류를 한참 쳐다보던 서류를 내려놓고 오른쪽 안경을 살짝 고쳐 쓰고 두 손을 가지런히 배에 올려두고 몸의 중심부를 살짝 뒤로 놓으면서 두 번째 말을 꺼냈다.
"그래요, 얼마를 받기 원하시나요?"
무엇을? 어떤 거를? 나는 묻지 못하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혼혈인이 분명하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보인다. '검머'로 부르는 '검은 머리 외국인'인가.
그런데 머리가 회색이라서 '회색머리 외국인'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대답이 없는 나에게 그가 다시 한번 물어봤다.
"인생 연봉으로 얼마를 받기 원하시나요?"
인생 연봉? 인생 연봉이 무슨 말이지? 연봉은 연간으로 받는 것 아닌가. 인생 연봉이라는 말은 살다 살다 처음 들어본다.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아무 대답 없는 내가 귀찮다는 듯이 그가 다시 말을 건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괜찮습니다."
정말 물어봐도 되는 것일까?
'그 사람'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 사람을 믿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우선 변두리 질문으로 '그 사람'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여기가 어디죠?"
질문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 사람'이 대답했다.
"여기는 인생 연봉을 계약하는 곳입니다."
아무래도 이 공간에 대한 더 이상의 질문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공간은 공간일 뿐.
그렇다면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인생 연봉'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 질문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인생 연봉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거죠?"
"말 그대로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받을 연봉을 의미합니다"
"제가 인생을 살면서 받을 총연봉을 말한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인생 연봉' 협상.
그렇게 나는 '그
사람'과
인생 연봉
협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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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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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자유와 행복을 찾아서
15
인생 연봉 협상 시작
16
인생 연봉 협상
17
일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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