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전에 일어난다. 새벽이랄 수도 있고 아침이랄 수도 있는 시간이다. 지나고 보니 이 시간에 하던 일이 쭉 변해왔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침 식사 준비를 무슨 명제처럼 해냈던 것 같다. 안하면 안되는 일이었고, 무슨 의미나 감정을 부여하기 이전에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마치 폭풍이 지나가듯 휘쓸고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 안스러운 감정이 들때가 있다. 좀 더 여유를 갖고 살아도 되는데 당시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한 순간이라고 마음을 놓으면 마치 기차를 놓쳐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순간 한치도 방침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세뇌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다 크고 대학을 간 이후에는 마라톤을 했었다. 2년 정도 했다. 달리기를 잘 하는 타입이 아닌데도 '완주'경험 그 자체를 가지고 싶어서 시작을 했다. 마라톤을 시작한 첫 날이 기억이 난다. 5월이라 춥지는 않았다. 6시쯤이었다. 잠은 아직 덜 깨어 있고, 바지는 실내복 비슷한 옷을 입고 무작정 뛰러 나갔다. 장비를 준비하기엔 마음이 더 앞섰고 우선 실행부터 하기로 나 자신과 약속을 한터였다. 부스스한 표정을 한 나와 달리 깔끔한 차림으로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생경하고 낯설었다. 한 껏 멋을 낸 옷을 입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새벽시간에 삶을 시작했을까를 상상했었다.
최근에 나의 아침시간은 그날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와는 달라진 것이 음식을 만드는 요령이 늘어서 시간이 많이 단축된다는 점이다. 전에는 마치 의무처럼 명제처험 해내야먄 하는 일이었다면 요즘은 나의 삶의 정원을 가꾼다는 의미도 조금은 가미하게 된다. 가사노동이라는 패러다임 대신에 삶을 가꾼다는 의미를 좀 더 가지게 된 것이다. 그건 아마도 이 일이 힘들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도 되고, 내가 하기 싫으면 안할 수도 있다는 선택의 기회가 생겨서 가능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설정한 목적을 향해 치열하게 달렸던 그 시간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치열하게 달려야할 그 무엇이 과연 있기나 한가라는 회의를 하게 된다. 무엇보다 나를 편안하게 할 그 일들이 무엇인지 찾게 되고, 목표를 향해 치열함 보다는 이제는 다채로운 경험을 더 하고 싶어진다. 내가 가야할 길이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좀 더 넓어졌다. 가야만 하는 길이 아니라 갈 수도 있는 길이고, 선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자신만이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겐 필요없는 일이 나에게는 필요할 수가 있다. 또 나에게는 필수적인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의미없고 쓸데없는 일일수도 있다. 나는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나의 시간을 잘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