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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페이 여행2

by 낭중지추

에어비앤비 숙소를 관리하는 사람은 '존'이라는 사람이다. 근데 우리가 머무르는 시간 동안은 타이페이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여행중이라며, 대신 관리해주는 '안'이라는 사람이 나와 키를 관리하는 법을 알려주곤 쏜살같이 사라졌다. 이곳에서의 에어비앤비는 사실 거의 다 합법의 틀에서 벗어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에어비엔비의 조건 자체가 주인이 같이 머무르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이렇게 주인이 집을 빌려주고는 다른 곳에 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3년 전에 해운대 해변에 있는 에어비앤비에서 이틀을 머무르며 여행한적이 있었다. 오피스텔의 한 칸을 에어비앤비로 대여해주는 곳이었는데 한창 시즌이라 겨우 잡은 숙소 치고는 해변에 가깝고 깨끗해서 흡족해하고 있었다. 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주인은 ' 저녁에 혹시 경찰같은 사람이 방문해서 여기 사는 사람이라며 물으면 그렇다고만 답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별 이상한 문자라고 치부하며 복도의 안내판을 보는데 거기에는 불법 에어비앤비 사례라며 '주인이 거주하지 않은 경우'가 적혀있었다. 그래서 이 숙소의 주인도 점검을 피하려고 우리에게 그런 부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이 있었다. 같은 이유로 타이페이에서의 대부분의 에어비앤비는 불법이다. 하지만 워낙 호텔비가 비싸고, 사이즈가 작아서 많은 여행객들이 에어비앤비를 선호하다보니 암묵적으로 성행하고 있는 것 같다.

아파트의 1층이라고 했지만, 막상 가서 본 숙소는 2층 건물의 1층이었다. 이정도의 건물도 아파트라고 부르는 것 같다. 1,2층 모두 여행객들이 사용하는 건물이었다. 무엇보다 좋은건 20미터 거리에, 그러니까 문열고 스므 걸음을 걸으면 세븐일레븐편의점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곳에는 편의점이 굉장히 많았고 반면 대형 쇼핑몰은 적어보였다. 건물들의 외벽은 대부분 회색빛을 띄었다. 그 이유는 습기와 황사가 많고 햇빛의 량이 적은 도시라 밝고 화려한 색으로 도색을 해도 얼마가지 않기에 아예 회색빛으로 건물 외관을 칠한다. 그래서 화려한 도시라는 느낌보다 어딘가 칙칙하고 우중충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환경이나 일조량이 사람의 몸과 마음, 정신에 끼치는 영향이 정말 크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침부터 긴장하며 이동을 한 탓에 배고픔이 밀려왔다. 밥을 먹으러 가야 할 시간이다. 숙소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온갖 간판들이 이곳에 서울이 아님을 알려준다. 낯설었다. 내가 살아온 경험의 어느 지점에서 이 도시를 받아들이고 이해할지 모르겠다. 거리에 지나치는 사람들과 도시 분위기, 건물의 네온싸인을 보며 서울의 어디쯤에 해당할까라며 서울과 견주어보는 의식이 발동된다. 이 도시를 이 도시 자체로 봐야하는데, 자꾸 내가 살던 곳과 비교하는 습성이 나오려고 한다. 아마도 '안전'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서로 비교해서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물을 이해하는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법이면서 동시에 가장 폭력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하기에 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몰아내려고 애를 써본다. 가끔 지나치는 '한국 사람들'을 보니 반갑다. 입성에서 그 티가 난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에 속하는 곳이니 만큼 혼자서 여행하는 한국 사람이 많다더니 정말 사실인 것 같다.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는 벌써 정해져있었다. 샤오롱바오가게였다. 두 팩을 사고 길거리의 한 켠에 있는 식탁에서 서서 먹었다. 아니 흡입했다.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아니면 입맛에 맞았는지 순삭이었다. 두번째로 간 식당도 입맛에 맞았고 그 다음에 간 타피오카펄이 들어간 밀크티도 맛있었다. 우유가 많이 들어가 있었고, 토치로 설탕을 녹이는 탓에 단맛이 입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한국인의 평이 좋은 곳으로 간 것이 주요했던 것 같다.

편의점에는 한국 물건들이 많았다. 박카스 젤리도있었다. 내가 즐겨먹은 거라 눈에 잘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와서 한국의 음식을 먹을 순 없다고 결심하며 알수없는 대만어가 들어가 있는 맥주와 과자로 바구니를 채웠다. 과자를 먹지않으면 좋겠다는 건 순전히 나의 마음이고 과자와 라면 그리고 야식은 아이들에게 최적화된 기호식품이다. 거실 탁자에 모여 밑도 끝도 없는 농담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오랜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어쩌면 여행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같이 공유하기 위해 하는 거 같다. 내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을 허락하고, 그 누군가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공유하고, 같은 사물을 바라본다는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적당한 거리는 필수다.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침해해서는 안되다는 것을 알기에 10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각자 방으로 간다.

대만은 '난방'이라는 개념이 없다. 아열대 기후라서 그렇다고 한다. 평사시 2월 기온이 14~20도라 사람들의 옷차림은 반팔에서 경량패팅까지 스펙트럼을 보인다. 바람이 많고 습도가 높아 체감 기온이 서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대만은 추웠다. 벽의 두께가 얇고, 땅에로 올라오는 냉기가 기본값이다. 침대 위 이불속은 냉기는 없었지만 따뜻하지는 않았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전기 장판'을 가지고 왔다.

2박 3일 여행에 28인치 캐리어를 가지고 온 이유는 오로지 이 전기장판 때문이다. 다른 모든 물건을 최소화하며 전기장판을 가지고 온건 여행에서 잠을 잘자기 위해서였다. 보안점검에서 혹시 걸리지나 않는지 항공사 홈페이지까지 뒤지며 확인했다. 콘센트 선이 있는 물건은 짐칸에 실어도 괞찮다는 문구를 확인하며 가지고 온 물건이다. 110볼트 돼지코와 전기장판을 연결했다. 바로 이맛이다. 등이 따뜻해지고 발에 온기가 느껴지니 기분이 좋아진다. 등따시고 배부르면 그게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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