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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여행3

by 낭중지추

서울과의 시차는 1시간이다. 서울에서 대만으로 오면 1시간을 벌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 1시간을 더 보태야 한다. 대만에서 지내면 시계를 볼 때마다 기준이 되는 건 '지금 서울은 몇시일까'라는 거였다. 저녁 9시는 서울의 밤 10시로 치환이 되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고, 새벽 6시는 서울의 아침 7시로 치환이 되어 더 이상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다간 게으른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대만의 시간으로 사는 게 아니라 서울의 시간으로 살려고 하는 모습이 자꾸 나왔다. 여행이란 다른 시공간을 사는 것인데, 공간을 달리해도, 시간을 달리해도 여전히 이전의 시공간으로 생각하고 살려는 모습이 자각이 될 때마다 애서 이건 아니라고 부인하게 된다. 타이페이라는 도시를 보면서 서울과 견주어야 비로소 이해되는 모습이란 어쩌면 문화의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화 문맹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만은 한국, 홍콩, 싱가폴 등과 더불어 아시아의 용이라고 불릴정도로 경제발전을 빠른 시간에 이룩한 나라다. 국민소득도 우리와 거의 비슷해서 3만 달러가 넘는다.

둘째날의 자유여행은 주로 타이페이의 중심인 메인스테이션역 중심으로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옮겨다니며 도심 뒷골못을 세심하게 걸어다녔다. 메인스테이션 역 주변은 어느 나라의 수도 못지 않게 높은 빌딩으로 숲을 이루고 있었고 교육열이 높은 탓에 대치원 학원가처럼 많은 학원의 간판으로 메워져있다. 서울역 못지않게 사람들의 이동에 중심이 되는 역이다. 메인스테이션 역에서 다른 '선'으로 옮기느라 길을 잘못들어선 적이 있었다. 근데 바로 그 지점에서 '직원'이 있어서 바른 길로 안내를 해주었다. 급하게 들어간 역 화장실은 깨끗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었지만 다소 차분함에 가까웠다. 선진국의 면모를 보는 듯했다. 외향적이고 소비지향적인 도시는 아니었지만 내실을 다지는 도시에 가까웠다.

서울의 성수, 망우, 경리단 같은 핫플레스가 있다. 시먼딩역, 중산까페거리 같은 곳이다. 시먼딩역주변은 서울의 명동 분위기 이상으로 거리의 모양새가 거의 똑같았다. 지난 겨울에 친구와 함께 오랫만에 추억을 들먹이며 간 명동거리는 예전보다 중국과 일본 관관객들로 꽉차 있어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움직여야 할 정도였다. 쇼핑하는 가게마다 중국인과 일본인을 위한 상품 설명은 기본이었고, 상품목록을 알려주는 안내지에도 중국어와 일본어는 기본이었다. 조금이라고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사람에게는 "Are you chinese?" "Are you Japanse?"라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이 시먼딩 거리에서는 "한국인이세요?"란 질문으로 한국인을 유혹하고 있었다. 들어가는 식당마다 한국인을 위한 한국어 메뉴판도 다 준비되어 있었다. 중산까페거리는 서울의 홍대와 비슷해서, 버스킹 공연장부터 즐비하게 늘어선 옷가게며 까페가 서울의 홍대거리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쩌면 도시 개발이 어느 한 나라의 독특한 모습이라기보다는 다른 나라의 개발 과정을 벤치마킹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하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니, 다른 나라의 성공 모델을 모방하는건 실패 확률을 줄이는 안전한 방법일 수도 있다. 밀크티는 서울에서 먹었던것 보다 단맛은 덜하면서 우유는 더 많이 가미 되어있었다. 하긴 나라마다 사람들의 입맛이 조금씩 다르기에 같은 음식이라고 해도 그 나라의 취향에 맞는 방식으로 정착이 된다. 같은 신라면이라고 해도 일본에서 파는 신라면과 중국에서 파는 신라면의 맛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음식만 그런게 아니다. 넷플릭스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의 썸네일을 만들때 해당 나라의 기호와 정서에 맞게 서로 다르게 만든다고 한다. 예를 들면 같은 오징어게임이라고 해도 나라마다 만들어지는 썸네일은 각각 다른 식이다.

해가 어둑해질 때 까지 하루 종일 걸었다. 만보기를 보니 1만 5천보를 걸었다. 식사 시간과 쇼핑 시간을 하며 멈춰있던 시간을 제외하면 많이 걸은 셈이다. 신발을 새로 사서 신은 탓에 발이 아프다. 여행을 하려면 역시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더 보고 싶었지만 무리다. 쉬어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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