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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 음악으로 교감하는 사람들

by 낭중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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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저자온다 리쿠출판현대문학발매2017.07.31.




<꿀벌과 천둥>은 꿀벌의 날개짓에서 나오는 소리의 차이를 감지하는 천재 음악가 가지마 진, 어릴적 엄마의 도움에 힘입어 천재성을 발휘한 아야 그리고 체계적인 훈련으로 또한 한껏 음악성을 발휘하는 마사루가 나온다. 일본의 어느 도시에서 열리는 콩쿨에서 이들은 음악으로 만난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듯, 서로의 음악에 충격을 받고, 그 충격을 자신의 음악을 발전의 계기로 삼아 서로 더 좋은 음악으로 표현하는 계기가 된다. 사람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사람인 것 같다. 만약 이들이 각자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었다면 외로웠을 그 길이, 서로의 존재가 있기에 기꺼이 자신에게 남은 길도 마저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덕에 고등학교 시절 음악샘을 떠올리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음악 선생님은 꽤 멋진 외모를 가진 분이었다. 항상 양복을 입고 다니셨고, 눈은 저 먼 피안의 세계를 보는 듯한 체스처를 취하며 오른쪽 45도 방향을 바라보면서 수업을 했다.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며 감상문을 쓰는 수업이 있었다.



감상문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데, 그저 느낀 감상을 쓰라고 지시를 하는 거였다. 누구의 음악인지는 기억도 안나지만, 한편의 그림을 떠올렸고, 그 그림을 눈 앞에서 보는 듯 느낌과 색깔을 묘사했다. 감상을 아주 잘썼다고 칭찬을 받았다. 어떻게 내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식의 감상을 못쓴 친구들은 음악을 느낄 줄 모른다며 선생님으로부터 내내 타박을 받았다. 그 칭찬 덕인지 음악 이론에 자신이 생겼다.

피아노는 한 번도 안 쳐봤지만 음악 이론 시험 공부를 하면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듯 하나씩 하나씩 상상하며 풀어갔다.덕분에 전교에서 피아노를 제일 잘치는 친구보다 내가 더 좋은 성적을 받아서 음악 선생님이 놀라워하셨다. 피아노를 가장 잘 치는 친구는 음악 시간에 반주를 도맡아 하면서 선생님의 이쁨과 기대를 받는 아이였는데, 항상 자신만만하고 도도하던 그 친구의 표정에 약간의 그늘이 보였다.


어린 시절 웬만한 아이들은 피아노 학원 문턱은 다 밟아봤을 것이다. 피아노 가방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이 어려워 나에게까지 그런 기회는 올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내가 시작한 것 중의 하나가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었다. 꽤 오래 망설이다 집 근처의 피아노 학원을 방문했다. 이렇게 늦은 나이에 피아노 좀 배우겠다는 나 자신에게 주눅이 들면서도 대견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나이가 20대 중반이다.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다. 부부가 운영하는 학원이었다. 남편이 나를 지도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회식도 해야하고 술도 마셔야 하는 상황에서 피아노 학원을 규칙적으로 간다는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일과 취미 생활을 병행하는 노하우가 없던 나는 6개월의 학원 생활을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다.



음악 선생님 덕분에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모짜르트 음악을 많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난 부모님과 다른 별채에서 할머니와 같이 지냈다. 나 홀로 거실이나 방에서 밤 늦게까지, 새벽가지 공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혼자 공부할 때 나와 같이한 건 바로 바로 모짜르트 음악이었다. 당시엔 줄이 칭칭감겨진 테이프를 카세트에 넣어서 음악을 들었는데, 줄이 늘어질 때까지 들은 음악은 모짜르트 41번 교향곡이었다. 공부를 시작할 때는 거의 항상 나와 같이 한 배경 음악이나 마찬가지였다. 혼자가 아니어서 좋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난 이후에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좋아서 바하 음악을 좀 들었었다. 바흐는 독실한 신자라 신을 경배하는 마음을 담아 신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천여곡 이상을 작곡했다.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던 바흐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에 정통했는데 중세에 교회 건물이 커지면서 그 안을 파이프 오르간 소리로 채워 교회의 위상을 한껏 더 높인 듯 하다. 교회당 안에서 울려퍼지는 묵직하면서 맑은 소리가 마치 내 마음의 심연에서 울리는 내 감정의 온도같은 느낌이 좋았다. 우울하고 힘들때 오르간 소리를 들으면 위로를 받는 느낌이 좋았다. 물론 내가 종교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바하의 토카타와 푸가를 듣다 보면 그 소리에 끌려 나도 종교를 가지고 싶어질 정도다.



바하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그 만틈 음악사에서 바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바흐 음악을 재해석한 글렌 굴드는 "여생을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보내야 하는데 단 작곡가의 음악만 듣거나 연주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바흐"라고 말했다고 할 정도이고 요요마는 " 바흐의 음악은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것 중 하나'라고 했다고 하니, 내가 바흐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천둥과 꿀벌' 이 책을 두번째로 읽으며 또 다시 바흐를 듣게 되었다. 요즘 좀 외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바흐 라는 사람이 있어서 외로움이 가시게 될 것 같다. 바흐가 1685년에 태어났으니 적어도 3백 40년 전에 만들어진 음악이 이 넓은 우주에서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한다. 나의 감정과 그의 음시공간을 뛰어넘어 서로 교감이 되는 것 같다. 물질 문명이야 발달했지만,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는 인류의 상수라는 말이 진짜 맞는 말이다. 바흐가 나를 위해서 음악을 작곡한건 아니지만, 인간의 보편적 정서는 3백여년이 지난 사람들과도 소통이 되는 것인, 바흐 인생을 살다간 보람이 있어도 되다고 말해주고 싶다. . 바흐의 음악은 격정적이고 낭만적인 느낌은 아니다. 감정을 과시하지 않고도 감동적일 수 있음을 바흐는 보여준다. 그래서 바흐가 좋다. 격정적인 내 감정도 바흐 음악처럼 담담하게 흘러가게 놔둘 것이다. 살아가는 것도 어떻게 살겠다는 마음보다 그냥 살면 살아지게 될 듯하다. 바하의 생가가 있는 독일의 아이제나흐마을에서는 바하 음악제도 열린다 하니 괴테의 생가와 더불어 바하의 생가도 방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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