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꿰맨 눈의 마을>, <히노의 파이>, <램>과 에세이 <빛나는 모형들>로 구성되었다. 앞서 말한 세 작품은 연작소설이라고 설명되어지긴 하지만(<꿰맨 눈의 마을>만 23년도에 발표되고 뒤의 두 작품은 미발표작으로, 후에 덧붙여 썼기 때문인 듯) 완전히 한 작품으로 읽힌다. 처음에 소설집에 웬 에세이?라고 생각했던 다소 생뚱맞은 뒷켠에 자리잡은 에세이조차 이야기의 동기와 전말을 보여주는 것이라 통으로 하나의 그림이라고 보면 된다.
작가의 작품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경험해 본 그녀의 작품 속에서 왠지 모를 인간에 대한 신뢰와 긍정적 미래관이 느껴진다. 신박하고 기묘한 설정 아래 현실은 시궁창일지언정 뭔가 어떻게든 잘 될 거라는 희망. 개인적으로는 영화 <미스트>나 소설 <1984> 같은 지독하고 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엔딩을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화같기도 한 말랑한 조예은식 엔딩이 나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따지고 보면 우리가 디스토피아물 속 끝 간 데 없는 절망을 보면서 실제로는 끊임없이 그 속에서 인간에 대한 희망을 찾고 있기 때문이리라.
"백우는 자신 앞에 놓인 구차한 밑그림과는 별개로 타운의 규칙을, 제1 규칙을 믿었다. 그 규칙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수한 태엽들이 돌아가야 했고 자신과 아버지는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최선을 다하는 게 어떤 최악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p.68<꿰맨 눈의 마을>
"최대한 먹음직스럽고, 진짜 같지만 어딘가 이상한, 이상해서 계속 바라보다 끝내 진짜라고 믿고 싶어지는 그런 걸 만들고 싶다. 나는 모형들이 좋다. 지면과 스크린 위의 진짜인 척하는 모든 이야기들을 사랑한다."p.178 <빛나는 모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