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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Apr 23. 2024

안도의 눈물이 난다.

- 소심한 나는 언제쯤 대범해질 수 있을까

  얼마 전 한 환자분이 재작년에 치료한 임플란트가 약간 흔들린다며 내원하셨다. 이런 경우의 대부분은 임플란트 내부의 나사가 풀린 것이어서, 임플란트 크라운을 열고 나사만 조여주면 된다. 같은 케이스려니 하고 임플란트 크라운을 살짝 움직여 봤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임플란트 주변 치아들의 잇몸에서 고름도 나오고, 악취도 올라왔다. 우선 엑스레이를 찍어 봤는데 좀 애매하다. 사진상으로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느낌적인 느낌상 임플란트의 크라운 부분만 흔들리는 게 아니라 왠지 픽스쳐(인공치근, 임플란트 치아의 뿌리가 되는 부분)까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이 환자분이 2년 전부터 전신질환으로 인해 면역억제제를 비롯한 약을 많이 복용하고 있고, 잇몸 관리가 잘 안 되어서 치주염도 자주 생겼었다는 점이었다.(오실 때마다 구강 위생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지만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인가...) 혹시나 심한 임플란트 주위 염증으로 인해 치조골이 녹고 그것 때문에 흔들리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환자분에게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고, 혹시라도 임플란트의 인공치근 자체가 많이 흔들리면 빼내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분도 평소에 구취가 많이 나고, 잇몸 질환이 자주 생기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상황에 대한 납득은 했지만 걱정은 태산같이 커져 있었다. 다행인 것은 개원 초부터 오셨던 분인지라 충분한 라포가 형성되어 있어서 문제가 될 만한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술에 대한 준비는 언제든 되어 있기에 바로 치료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환자분이 내일부터 여행 일정이 있다며 며칠만 미루면 안 되냐고 하신다. 혹시라도 임플란트를 제거해야 되는 상황이 되어 뭔가 시술이 길어지거나 불편해지면 준비한 여행에 차질이 생길 것 같다며, 다음 내원일까지 조심할 테니 며칠 지나서 진행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상태가 어떤지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당장 뭔가 큰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테니 어쩔 수 없다. 며칠 뒤로 환자분과 약속을 잡고 보내드렸다.  

  

  치료 자체는 단순하다. 

  '상부 보철물을 제거해 보고 잇몸과 임플란트 내부 상태를 확인한다. 인공치근이 흔들리거나 골소실이 심하면 임플란트를 빼낸다. 치조골 상태를 확인해 보고 바로 다른 임플란트를 식립 하거나 당분간 묻어두었다가 다시 시술한다.'이지만 소심한 나는 그날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환자분이 불편하실 텐데... 여행 중에 빠지면 어쩌지... 혹시 안에서 나사가 부러진 거면 어떻게 제거하지...' 등 끝없는 걱정과 고민의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환자분이 내원하시기로 한 날 아침에도 머릿속에는 온통 이 케이스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어떤 원장님들이 내 이야기를 들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래?", "임플란트 빠지는 거 흔히 있는 일 아냐?"라고.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내가 심은 임플란트를 빼 본 적이 없다. 추적 관찰이 끊어진 환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개원할 때부터 지금까지 내원하는 내가 임플란트를 심은 환자들만큼은 임플란트가 빠진 경우가 없어서인지 실패가 더 두렵고 걱정스러웠던 것 같다. 

      

  드디어 환자분을 마주한 날. 조심스럽게 크라운의 스크루 홀을 열고, 드라이버를 넣고 돌려보았다. 내부 고정 나사가 쉽게 풀려나온다. 크라운을 조심스럽게 제거하고 잇몸 안에 심긴 인공치근을 보니 깨끗하다. 흔들림도 없는 상태이다. 임플란트 고정 상태를 확인하는 기계를 대서 수치를 확인하니 아주 단단하게 잘 붙어있다. 결론은 그냥 나사가 풀린 것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환자분에게 "다행히 그냥 나사가 풀린 거였어요. 안에 임플란트는 아주 깨끗하게 잘 붙어있고요, 나사만 다시 조이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나려고 한다. 환자분께 이야기했다. "환자분, 제가 소심해서 그런지 며칠 동안 걱정 엄청 많이 했어요. 다행히 안에도 깨끗하고 이상도 없어요.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요. 하하." 그런 내 소심한 마음을 아셨는지 환자분도 다행이라며 웃어주신다. 내부의 나사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다시 조여서 고정해 드렸다. 


  마무리를 짓고 퇴근할 준비를 하는데 직원이 스타벅스 카드를 하나 가지고 들어온다. 방금 그 환자분이 주고 가셨다며, 우리에게 늦은 시간까지 애써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가셨단다. 아뇨, 무사해 주셔서 제가 감사할 따름이죠... ㅠ.ㅠ


  며칠 동안 마음 졸였지만 그래도 좋은 날이다. 졸아들었던 마음이 펴졌고, 앞으로 조금 더 용감해질 수 있을 것 같았고, 환자분께 감사하다는 인사도 들을 수 있었던 날이다. 


  그나저나 소심한 이 가슴은 언제쯤 커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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