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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작가 나혜옥 Oct 12. 2024

당신의 사랑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무심코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줄 수 있다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

어제는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하루였다. 아침에 엄마는 당신 때문에 딸이 신경 써서 대상포진이 걸렸다고, 당신을 요양원에 보내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가 아직 요양원 갈 때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요즘 진땀이 자주 나고 하루 일과가 몸에 부친다는 느낌은 있었다.

그래도 직장도 안 다니고 도서관이나 다니면서 책보고 글만 쓰는데 힘들다고 말하기가 입이 안 떨어져서 신경을 안 썼다. 그런데 물집이 잡히더니 쿡쿡 쑤시고 아프다. 옷만 닿아도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대상포진이라고 한다.

워낙 주사 맞는 걸 싫어해서 평소에 독감도 예방 접종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대상포진 백신은 당연히 맞지 않았다.

주사를 맞고 약을 지어 먹었는데 일주일 동안 별반 차도가 없다.

아마도 처음 물집이 잡혔을 때 바로 조치하지 않았던 게 문제였나보다.     

주간 보호를 다니던 엄마가 안 가신 지 6개월이 지났다.

몸무게도 늘고 걸음걸이도 둔해졌다. 눈에 띄게 유연성이 떨어지는 게 보인다.

발등도 소복이 부었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발이 부었다 내렸다를 해서

2년 전 검사를 하니 심장, 신장이 이상 없다고 했다.

오늘따라 얼굴도 부었다.

엄마의 부은 얼굴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혼자 고민하고 있는데, 요양원 보내라는 소리까지 들으니 가슴이 무너졌다. 

나는 의사가 처방한 약 이외의 영양제를 일주일간 끊어보기로 했다.

이가 아프시다고 드시는 인사돌, 무릎 관절에 좋다는 천심련

눈이 침침하다고 드시는 루테인, 종합 비타민 센트룸, 엄마가 드시는 약에 영양제까지

합하면 한주먹이다. 약만 먹어도 배부르게 생겼다.

엄마에게 일주일간 기본 약만 드셔보고도 부기가 빠지지 않으면 병원에 다시

검사하러 간다고 설명했다. 엄마가 이해했는지 물어보고 또 설명했다.     

어제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성금요일이라 성당에 성체조배를 하러 갔다.

기도하는 내내 엄마의 말이 메아리처럼 뇌리에 울린다

‘너 힘드니까 나를 화장실 딸린 요양원으로 보내라’

기도하는 내내 속에서 토할 것 같은 울음이 꾸역꾸역 올라왔다.

기도하는 공간에 나 혼자였으면 엉엉 울었을 텐데, 구역 식구들과 합을 맞춰

기도하니 울음을 삼켜야 했다.

비 오고 흐린 날씨만큼 내 마음도 어두웠다.

정신을 놓거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기 전까지는 요양원에 보낼 수 없다.

아무것도 인지가 안 되는 어르신에게는 요양원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전문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체계적 관리가 되니 생명 유지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엄마는 인지가 좋다. 까다로운 성격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단체 생활을 엄마가 견뎌낼 수가 없다.     

지금 엄마의 가장 큰 문제는 통증과 배뇨의 어려움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스스로 감내해야만 하는 노년의 고통이다.

기도 시간이 끝나고 혼자 사시는 어르신에게 점심 대접을 해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니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혼자 실컷 울었다.

부모님과 시부모님 병간호를 했던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다.

직장 동료였던 간호사님한테 전화를 걸어 엄마의 상태를 설명하고 의논했다.

전 직장 동료에게 문자를 보냈다.

링 위에 올라선 허약한 권투선수의 주먹이 상대를 겨냥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허공에 펀치를 날리듯, 생각나는 대로 전화를 돌렸다.

어떻게 하는 게 엄마를 위한 최선일까?     

울어서 눈과 코가 빨개진 얼굴을 찬물로 세수한 후 엄마 집으로 갔다.

엄마는 오후가 되니 얼굴의 부기가 조금은 빠졌다.

아침에 요양원으로 보내라고 강펀치를 날렸던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TV를 보면서 웃고 계셨다.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니 아침에 생채기 났던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풀린다.

따뜻한 물을 받아 엄마 발을 담갔다.

엄마의 무좀 발톱을 깎기 위해 발을 불렸다. 따뜻한 물로 불리기 전에는 엄마의 발톱은 깎을 수가 없다. 손톱깎이로 깎을 수 없는 발톱은, 네일 버퍼로 뒤꿈치와 함께 갈았다.

발가락 사이를 비누 거품을 내어 문질렀다. 엄마가 몸을 잘 굽히지 못하니까

발가락 사이를 잘 닦지 못해서 냄새가 난다.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닦을 때를 생각하면서

오래오래 닦았다.

"고마워! 딸이 있으니 살지, 딸 없으면 어떻게 살아!"

엄마가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하길래,

"엄마! 요양원 가면 내가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은 면회 가겠지, 

그러다 한 달에 한 번이나 갈래나?" 엄포 아닌 엄포를 놓았다.

"네가 힘드니까 그렇지“

나는 대상포진쯤은 끄덕없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씩씩하게 발을 닦았다.

엄마 발을 닦고 핸드크림을 듬뿍 발랐다.

저녁때가 되어 저녁밥을 차렸는데 엄마가 안방에 들어가셔서 안 나오신다.

”엄마 찌개 식어 빨리 나와“

엄마는 살짝 붓기가 남아 있는 얼굴에

눈썹을 그리고 있었다. 오늘은 엄마가 눈썹을 그리는 게 밉지가 않다.

아니 반가웠다. 엄마가 눈썹 그리는 모습은 내 마음을 비극에서 건져 올려 다시

희극으로 만들어 주었다. 엄마는 나에게 눈물 콧물을 빼더니 웃음도 준다.

앞으로 닥쳐올 일들을 생각하면 걱정과 근심이 한가득 이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무렴 지나가고 말고...

비극으로 시작한 하루가 희극으로 끝나는 것처럼, 

항상 멀리서 보고 인생을 희극으로 즐길 준비를 하자.

오늘은 어린 시절 이발소에 걸려 있던 액자의 글이 어렴풋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푸시킨의 삶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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