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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작가 나혜옥 Oct 03. 2024

당신의 사랑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엄마 어린 시절 꿈은

   

엄마의 어린 시절 꿈은 미용사였다

내가 엄마의 어린 시절 꿈을 알게 된 건 근래의 일이다.

몸이 아픈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

은 세수다.

고운 가제 수건에 비누를 조금 묻혀 정성스럽게 얼굴을 문지른다.

맑은 물로 깨끗이 씻은 후 스킨, 로션, 영양크림을 바른다.

나는 화장품을 순서대로 바르는 것도 귀찮아서 하나만 바르면 되는 제품을 사용한다.

그런 나로서는 엄마의 아침마다 치러지는 성스러운 의식과도 같은 행동이 썩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화장품 바르기가 끝나면 엄마는 머리에 구르프를 만다.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아파서 온몸에

파스로 도배를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건 구르프를 마는 일이다.

하루는 팔 아픈 엄마를 도와주려고 내가 구르프를 말아 드렸는데, 엄마 마음에 안 드셨는지

두 번 다시 나에게 구르프 마는 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엄마의 구르프로 완성된 머리는 가히 작품에 가깝다.

어깨와 팔이 아픈 엄마가 말았다고 볼 수가 없다.     

엄마가 구르프를 마는 동안 밥상에 차려진 반찬이 식어 갈수록, 내 마음도 식어간다,

"엄마! 밥 식어~ 얼른 식사하세요!"

"괜찮아! 나는 뜨거운 거 못 먹어"

아무리 재촉해도 엄마는 눈썹 그리기까지 마쳐야 식탁에 앉는다.

"엄마 팔 아프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야 나 같으면 귀찮아서 못 할 텐데, 

매일 아침 참 정성 이슈"

밥숟가락을 드는 엄마를 쳐다보고 나는 웃음이 터졌다.

엄마는 구르프를 만 머리에 된장 항아리에 덮는 망을 쓰고 앉아있다.

엄마의 주문으로 모자도, 머리 망도 여러 개 사다 드렸는데, 도무지 마음에 안 드시는지

구르프를 말고 난 후에는 항상 된장 항아리를 덮는 망을 머리에 쓰고 계신다. 


처음에는 어찌나 우스운지 벗으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면 엄마는 머리 사이즈에 딱 맞는다고 괜찮다고 절대로 벗지 않으셨다.

하긴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요강을 사서 쌀을 담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용하기 따라서 요강도 되고 쌀독도 되는 것처럼 

엄마의 머리 망은 된장 항아리 망이 아니라 엄마의 머리를 예쁘게 만들어 주는 

머리 망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엄마는 머리 자르는 것도 예민하다.

우리 동네로 이사 온 후로 동네 미용실을 한 번씩 다 순례를 했다.

이 미용실은 파마는 잘하는데 커트가 마음에 안 든다, 

저 미용실은 머리는 잘하는데 늙은이를 우습게 안다, 

하다 하다 원장 태도까지 들먹이며 매번 미용실을 바꿨다.

나는 머리를 자를 때도 미용실 원장한테 맡기고, 어떤 스타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골로 다닌 지 20년이 되니, 의자에 앉기만 하면 알아서 척척 잘라 준다. 

어쩌다 마음에 안 들게 되더라도 머리는 금세 자라니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 엄마는 머리 자를 때부터 주문이 많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탤런트 누구처럼 잘라라, 

오른쪽이 길다, 파마는 뽀글거리면 안 된다, 

자연스럽게 나오게 해라, 너무 주문이 많아서 언제부턴가 내 단골 미용실은 모시고 가지 않았다. 

미용실 원장 보기 미안해서 잘 모르는 미용실로 모시고 다닌다.


이쯤 되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해서

"엄마 내가 보기에는 머리가 다 거기서 거긴데 왜 이렇게 까다롭게 주문해?"라고 물어봤다.

엄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수줍은 새색시처럼 미소를 띠며

"나 어릴 적에 미용사 되고 싶었어"

'아 엄마도 꿈이 있었구나!' 

그것도 내가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꿈.


엄마는 일본에서 국민학교 2학년 다닌 게 배움의 전부였다.

한글을 제대로 쓸 수 없어서 미용사 시험을 볼 수가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한글을 읽을 수는 있어도 마음대로 쓸 수 없어서 평생 주눅 들어 살았다고.

마음이 아팠다. 

할 말을 잃었다.

엄마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일곱 살 무렵이고 늘 쓸고 닦던 엄마, 고운 모래로 양은 냄비를

닦고, 마루를 반들반들 윤을 내던 엄마가 기억난다.

하긴 나는 엄마의 어린 시절도, 처녀시절도, 본 적이 없으니, 엄마의 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리나 병아리가 처음 본 동물이 엄마인 줄 알듯이, 내게 젖을 물리고, 밥을 해준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배우지 못해 미용사 시험을 볼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엄마는 아직도 아침마다 당신

머리로 꿈을 펼친다.

구르프를 말고, 드라이를 하고, 스프레이를 듬뿍 뿌려서 부풀릴 대로 부풀린 머리가

엄마를 미용사로 만든다.

나는 엄마의 꿈을 알고 난 후부터는 엄마가 구르프 마는 걸 모른척했다.

꾸미는 거에 도대체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모른척하는 게 최선이다.

괜히 아는 척하고 말해야 본전도 못 찾는다.


그런데 엄마가 이제는 구르프를 말지 않는다.

주간보호를 다니실 수 없기 때문이다.

구르프를 말던 그 시절이 그립다.

더 좋은 구르프를 사 드릴 걸...

구르프 만다고 구박하지 말 걸...

1년 사이에 엄마는 많은 걸 하지 못한다. 

엄마의 꿈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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