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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Jan 28. 2024

너를 본다

밤이 지나 새벽이 밝아도 어둠 속이다

희미한 빛이 먹먹히 새어 들어오다가 이내 그림자에 먹혀버린다

빛 속에 검댕이들이 춤을 추다가 눈을 감으면 하얀 먼지 파리들이 춤을 춘다

너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소용돌이치고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카메라를 열어 새 필름을 넣었다

필름 한쪽 끝을 조금 빼서 반대쪽 막대에 끼워 넣고 레버를 돌렸다

뚜껑을 닫고 셔터를 눌러 햇빛이 금빛으로 내려앉은 그곳을 훔쳤다

눈은 빛을 내뿜고 그 빛은 너에게 닿고 너를 훑고 그대로 삼켜 내 필름에 담았다

그러나 모래 속에 파묻혀 영겁을 순간으로 이내 삭아버렸다

눈물이 피가 되고 다시 모래가 되어 망막을 긁고 얼굴을 할퀴고 지나간다 

태양이 뜨면 모래의 여자는 쏟아내리는 모래를 퍼낸다


하얀 파리들이 춤추는 장막이 걷히자 너의 모습이 보였다

체크무늬 잠옷에 헝클어진 머리, 기름진 얼굴에 금빛이 내려앉았다

"잠깐 이리와바."

두 손으로 그 빛을 감싸고 셔터를 눌러 두 눈으로 사진을 찍는다 

모래 바람이 불어닥치기 전에 시곗바늘을 뒤로 돌리고 조용히 그 빛을 훔친다

새하얀 벽에 사진을 또 하나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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