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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구두를 신은 Oct 25. 2023

정약용의 <견여탄>

- 그의 통점(痛點)이 어디에 있는가 보라

간혹 좋은 작품을 가르치면 보람을 느낀다. 좋은 작품이란 당연히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이겠다. 가르쳤는데 아이들도 반응이 좋으면 그때는 행복하다. 나도 좋고 학생들도 좋고, 거기에 월급도 받는다니 와우! 정약용의 '견여탄'은 5년 전쯤 수능특강에 실린 한시이다. 길 가다가 좋은 물건을 공짜로 얻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솔직히 정약용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 고달플 것 같다. 나의 허술함과 무지몽매함을 끊임없이 꾸짖을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업적을 생각하면 역시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상가, 정치가이면서 지리학자, 과학 기술자까지 문어발식 학업 경영을 했는데도 미흡하지 않은 까닭은 나도 모른다.(역시 나는 무지몽매하다.) 그동안 내가 접한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쓴 그분, 자식들에게 자상함을 넘어서는 정도의 잔소리를 늘어놓은 깐깐한 아버지였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그는 자식들에게 텃밭에 무엇(생지황, 끼무릇?)을 심을지도 권하고 있다.

이 시에서 정약용은 나라님께도 잔소리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잔소리에는 동료에 대한 고자질이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고자질이 '자신의 일'과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이권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은 것이어서 그렇다.


견여탄 / 정약용


사람들은 앉아 타는 가마의 즐거움만 알고

가마 메는 괴로움은 알지 못하네.

가마 메고 높은 비탈길을 오를 적에

빠르기는 산을 오르는 사슴 같고,

가마 메고 벼랑길을 내려갈 때에

빠르기는 우리 돌아가는 양 떼 같으며,

가마 메고 깊은 골짜기 건너뛸 때면

다람쥐가 달리며 춤추는 것 같다오.

바위 곁에서는 살짝 어깨를 낮추고

좁은 길에서는 빠르게 다리를 엇바꾸고,

절벽에서 검푸른 연못을 내려다보면

놀라서 넋이 달아날 듯하다가도,

평탄한 곳을 빨리 달리면

귀에서는 씽씽이 비바람이 이는 듯하다오.

이 때문에 이 산에 노닐 적에는

이 낙을 반드시 먼저 꼽는다오.   

멀리 돌아서 관첩을 얻어오는데도

역속들은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데

하물며 너희들이야 역마 타고 부임하는

한림학사를 누가 감히 업신여기랴.

통솔하는 아전은 회초리로 지시하고

우두머리 중은 대오를 정돈하여

영접하는데 시한을 어기지 않고

가는 데는 엄숙히 서로 뒤따르노라니

헐떡거리는 숨소리는 여울지는 폭포소리에 섞이고

장국 같은 땀은 헌 누더기를 적신다오.

좁은 길을 지나갈 적엔 옆 가마꾼은 뒤처지고

험한 곳 뛰어오를 땐 앞 가마꾼은 허리를 구부린다.

가마줄에 눌린 어깨에는 홈이 생기고

돌에 부딪친 멍든 발은 낫지를 않는다오.

스스로 고생하며 남을 편케 함이니

당나귀나 말이 하는 일과 나란하구나.

너와 나는 본래 같은 동포로서

하늘의 조화 똑같이 받았건만

너는 어리석어 이런 천역을 감수하니

내 어찌 부끄럽지 불쌍하지 않으리오.

나는 너에게 덕 입힌 것 없는데

너의 은혜를 어찌 혼자 받는단 말인가.

형이 아우를 가련히 여기지 않으면

부모 마음에 노여워하지 않겠는가.

중의 무리는 그래도 괜찮거니와

저 산 밑의 백성들이 애처롭구나

큰 지렛대 쌍마의 가마에

온 마을사람들은 복마꾼 참마꾼으로 동원하네

개나 닭처럼 마구 몰아내는구나

지르는 소리는 승냥이보다 심하구나.

예로부터 가마 타는 데도 계율이 있었는데

이 도리를 흙과 같이 버렸으니,

김매는 사람들은 호미를 버리고

밥 먹던 사람들은 삼키던 밥도 뱉고서

아무 잘못 없이 꾸짖음을 당하면서도

만 번 죽어도 머리만 조아리네.

파리한 몸으로 어려움을 넘겨야

오호라, 그제야 (아전들의) 노략질을 면하는구나.

호연히 일산을 펼쳐들고 가면서

위로의 말 한마디 없구나.

힘이 다 빠진 채로 밭으로 돌아오니

끙끙거리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는 실낱같은 목숨이네.

내 가마꾼 그림을 그려

돌아가 밝으신 임금께 바치고자 하노라.  


* 견여(肩輿)는 사람 둘이 앞뒤에서 어깨에 메는 가마를 말한다. 견여탄은 가마꾼의 탄식이라는 뜻이다.


여기 역마 타고 부임하는 한림학사들이 있다. 그들은 벼슬살이를 시작하는 새내기일 수도 있고 새롭게 승진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들은 부임지로 가는 도중에 의전에 강한 아전들이 준비한 명승지 관람에 들어간다. 아전들은 백성들을 규례까지 위반하면서 가마꾼으로 동원한다. (예나 지금이나 어디나 의전에 강한 놈들이 있다.)


가마를 탄 벼슬아치들이 신이 났다. 요즘식으로 쓰면 이렇겠다.

"와우! 이렇게 높은 곳을 사슴처럼 오르다니!"

"속도는 어떻고? 다람쥐처럼 빠르잖아."

"좁은 길을 걸을 때 보소. 나는 간담이 서늘했잖아. 왜 선배님들이 이 산이 관람 필수라고 했는지 알겠네. 스릴 넘치네!!"


이제 카메라는 한림학사의 유쾌한 표정을 아웃포커스하고 그 곁에 가마를 매는 사람들에게로 초점을 맞춘다. 헐떡이는 숨소리에 장국 같은 땀을 흘리는 누더기의 백성, 파리한 몸매에 어깨와 발에는 타박상 투성이... 가마를 들쳐매는 불쌍한 몸이 이리 휘청 저리 휘청대나 잘못 디디면 죽을 수도 있으므로 겨우 견뎌낸다.  


이 둘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으니 그가 정약용이다. 정약용 그는 분명 한림학사와 같은 양반 신분이다. 그런데도 그의 센서는 백성들에게 달려있다. 백성들의 어깨에, 발에, 그리고 밭에 돌아가서도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그들의 한숨에...  백성을 동원하는 데도 룰이 있는데(농번기에는 농민을 동원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그 마저도 무시하고, 고마운 줄도 모르는 한림학사들을 보면서 어떻게 백성을 위한 '목민관'으로서의 선정을 기대하겠는가? 그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 그는 이에 대해 고자질하고 싶은 것이다.


"구중궁궐에 있는 전하! 당신의 통점은 어디에 있는가요? 백성들이 이토록 아픈데 당신은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당신을 백성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렇게는 말하면 유배가 아니라 사약을 받을 테니까 그는 급히 말을 바꿨으리라.

"나는 백성들이 내 아우라도 되는 듯 분하고 아픈데 말이죠. 전하도 이 사실을 안다면 벼슬아치들의 행동에 화가 나고 백성들이 불쌍할 것입니다. 당신은 백성의 아버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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