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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구두를 신은 Oct 24. 2023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

- 이토록 아름다운 숲은 보는 사람이 임자

우리 집 불문율이 있다. '냉장고에 있는 것은 먹는 사람이 임자다.' 착한 아들들은 그런데도 꼭 내게 묻는다.

"엄마, 이 아이스크림 내가 먹어도 돼?"

"응 먹어."

"내가 이미 하나 먹었는데?"

이 말은 두 개 중 하나는 동생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동생 입장에서는 형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고. 두 녀석은 그렇게 닮았다.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그렇게 예쁘게 자랐다. 처음에는 나도 1인당 한 개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큰애가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게 하고 놔둔다고 작은 애가 그것을 좋아하지는 않더라. 역으로 작은 애한테 먹지 말라고 하고 기껏 남겼는데 큰애는 거들떠도 안 보더라. 그래서 결정했다. 먹는 사람이 임자라고 묻지 말고 먹으라고.

아. 서론이 너무 길었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시는 미국 시인의 시이다. 아마도 이분은 굉장히 유명한 분일 거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 중에 그의 <가지 않은 길>이 꼽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유명세에 기대어 이 시를 좋아하게 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이 시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파블로 네루다도 아닌데...

시를 읽기 전에 문제를 하나 낼까 한다.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이 시의 어떤 부분과 관련이 있는지 서술하시오. 편하게 감상하시고 답도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 / 로버트 프로스트


이것이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듯도 하다

하기야 그의 집은 마을에 있어서

내가 눈 덮인 그의 숲을 보느라

여기 멈춰서 있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내 당나귀는 농가 하나 안 보이는 곳에

일 년 중 가장 어두운 밤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이렇게 멈춰서 있는 걸 이상히 여길 것이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듯이

흰 당나귀 방울을 흔들어 쩔렁거린다.

방울 소리 외에는 숲을 쓸어가는

부드러운 바람과 하늘거리는 눈송이뿐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다운데

그러나 나에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눈 덮인 숲과 얼어붙은 호수, 그 사이에 부는 부드러운 바람, 하늘거리는 눈송이가 너무나 아름다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분명 갈길이 먼데 말이다. 당나귀는 말한다.

"주인님, 제가 알기로 우리의 목적지는 맛있는 건초가 마련되어 있는 따뜻한 마구간이 있는 곳이잖아요? 여기는 그런 농가가 하나도 없는데요? 지금 여기에 멈추는 것은 좀 이상하다고 봐요."

그러나 당나귀는 말을 못 하므로 이 고요한 숲에 방울만이 짤랑짤랑 울린다. 당나귀 보채는 그 소리마저 청량하다.

지금 숲에 서 있는 이 사람이 진정한 주인이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어둡고 깊고 아름다운 숲을 우연히 지나다 발견하게 되어 멍 때리고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있는 이 사람이.

나는 로버트 프로스트가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장면은 누구라도 마주친 적이 있다. 길을 가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기도 하고, 비 오는 날 산책하다가 마주친 풀잎들도 경이롭고, 눈 오는 날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보거나, 너무나 작은 새와 마주쳤을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호들갑이 그 모든 감흥을 일상으로 떨어뜨리는 것 같다.

"어머!!!!! 너무 예쁘다. 그렇지?"

눈 덮인 숲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는 시 속의 화자가 보고 있는 숲과 호수를 상상하면 가슴이 이상해진다. 차가운 공기가 내 코끝에 느껴진다. 눈송이가 내 피부에 닿는 것 같다. 찰나를 이토록 아름답게 그린다는 것은 위대하다. 나는 슬플 뿐이다. 시에 대한 감흥을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어서.

큰 아이 고1 때인가 영어선생님이 이 시를 영어로 외우는 수행평가를 시키셨다. 아이는 투덜거렸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영어 선생님을 흠모했다. 같은 팬심을 가진 것 같아서.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 Robert Frost -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원문으로 읽어보니 운율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1연 know, though, snow 끝발음이 같다. 각운으로 읽는 재미를 주었다. 2연도 queer, near, year. 3연도 4연도 마찬가지다. 내용도 아름답고 형식에서도 꼼꼼하게 시어를 갈고닦았음을 느낄 수 있다. 한시에서도 끝자락에 같은 발음의 글자를 두어 운율을 형성하는데 머나먼 미국 땅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하다니. 신기하다.


어떤 이들은 마지막 줄을 두고 삶에 대한 책임감을 논하는데 뉘앙스를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1. 여기 있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워. 하지만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고.

2.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지.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도 있고. 하지만 여기 있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떠날 수가 없네. 가야 할 길이 있는데...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2번에 한 표를 던지겠다. 가야 할 길이 있음에도 떠나지 못하는, 아름다움에 발이 묶인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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