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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구두를 신은 Oct 24. 2023

이황의 <만보>

대학자의 서글픈 산책

내가 퇴계 이황 선생님의 한시 <만보>를 접한 것은 그의 <도산십이곡>을 십수 년이나 가르치고 난 뒤였다. <도산십이곡>은 뭐 참 가르치기도 쉽고 가르치는 시간도 쑥쑥 잘 가는 작품이었다. 주제가 명백하고 표현법이 뚜렷하여 나중에는 눈감고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져서 학생 보고 읽으라고 한 다음 뒷짐 지고 걸으면서 듣다가도 학생이 잘못 읽으면 알아챌 정도였다.

"어허, 한 줄 빼고 읽었구먼."

신기해하는 아이들을 등지고 배시시 웃으며 '이런 것만 가르치면 교사 생활 할 만하잖아' 하는 생각도 했었다. 자연에 깃들여 살면서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라.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니 긔 아니 쉬운가

성인(聖人)도 못다 하시니 긔 아니 어려온가

쉽거나 어렵거나 중에 늙는 줄을 몰라라

                             -도산십이곡 제12수


어리석은 사람도 시작할 수 있는 것, 성인도 못 다 이루는 것 그것이 학문인데 그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고 세월 가는 줄을 모르고 학업에 정진하는 사람. 학생들에게 '너희들도 이런 사람이 돼라' 하면서 나는 정작 꿰어놓은 곶감 빼어먹듯이 임용고시 준비할 때 공부하던 것을 우려먹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황 선생님의 <만보(晩步)>를 접하게 되었다. 건강에 좋다고 하는 만보(萬步)가 아니다. '저녁에 산책을 하다'라는 뜻이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의 산책은 어땠길래 하면서 시를 읽었다.


만보 / 이황


苦忘亂抽書 잊기를 자주 하여 어지러이 뽑아 놓은 책들

散漫還復整 흩어진 걸 다시 또 정리하자니

曜靈忽西頹 해는 문득 서쪽으로 기울고

江光搖林影 강 위에 숲 그림자 흔들린다.

扶筇下中庭 막대 짚고 마당 가운데 내려서서

矯首望雲嶺 고개 들어 구름 낀 고개 바라보니

漠漠炊烟生 아득히 밥 짓는 연기가 피어나고

蕭蕭原野冷 쓸쓸히 들판은 서늘하구나.

田家近秋穫 농삿집 가을걷이 가까워지니

喜色動臼井 절구질 우물가에 기쁜 빛 돌아

鴉還天機熟 갈까마귀 돌아오니 절기가 무르익고

鷺立風標逈 해오라기 서 있는 모습 우뚝하고 훤하다.

我生獨何爲 내 인생은 홀로 무얼 하는 것인지

宿願久相梗 숙원이 오래도록 풀리질 않네.

無人語此懷 이 회포 털어놓을 사람 아무도 없어

搖琴彈夜靜 거문고만 둥둥 탄다, 고요한 밤에.     


나는 정말 이럴 줄 몰랐다. 목이 아플 만큼 우러러 보이는 대학자의 내면과 이렇게 마주하게 될 줄을, 그리고 진심으로 공감하게 될 줄을...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는데도 오래도록 풀리지 않는 숙원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세월 가는 줄 모르고 공부하겠다던 <도산십이곡>에 나타난 시인의 자신만만은 어디에 갔는가.

'저물 만(晩)'이라는 단어는 이황 선생님의 나이(막대 짚는 나이), 서늘하고 쓸쓸한 계절 가을, 그리고 하루의 끝이라는 세 가지 심상이 겹치면서 서글픈 감정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화자의 내면은 절구질하는 농삿집도 즐거워 보이고, 우뚝 서 있는 해오라기도 훤해보인다. 서글픈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거문고를 타는 심정이라니....

내가 이 시를 사랑하는 까닭은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이토록 투명하게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대학자로의 꼬장꼬장한 자존심이나 제자들 앞에서 큰소리치던 자신의 체면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이니 대학자라고 기억력이 초능력 수준은 아닐 터, 잊어버린 내용을 찾아 찾는 것이 당연한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같다. 그래서 쩔쩔맸던 같다. 수업을 준비하고도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올까 노심초사했다. 심지어 꿈에서는 수학도 가르쳤다. 그래서 그의 서글픈 내면이 마치 내면의 사본이라도 되는 듯 읽고 또 읽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야 내 마음의 불안을 인정했다.   

'거봐, 이렇게 훌륭한 사람도 그렇잖아. 그러니 너는 뭐, 하루 종일 공부하고도 안 되는 게 있을 수 있지. 오늘 밤은 이황 선생님의 거문고 소리나 듣자. 위로가 될 거야.'


이 시를 읽고 나면 뜻밖에 샘에서 물이 솟듯 용기가 생긴다. 다시 한번 <도산십이곡>의 시인처럼 정진해 보자.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古人) 못 뵈

고인(古人)을 못 뵈어도 녀던 길 앞에 있네

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녀고 어쩔고

                        - 도산십이곡 제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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