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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구두를 신은 Oct 23. 2023

헌화가

역사상 최고 멋진 할아버지의 연가

향가. 이처럼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갈래가 없다. 우선은 음독과 훈독이 뒤섞인 향찰이라는 표기체계로 기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난해하면서도 매력적이다. 향가에 대해 가르칠 때면 향찰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내가 만든 향찰 문장도 해독해 보라고 한다.

"향찰은 실질 형태소(구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부분은 훈차 방식을 사용하고, 형식 형태소(문법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 조사나 어미) 부분은 음차 방식을 사용했어요. 훈차 방식으로 된 부분은 뜻을 읽으면 되고 음차 방식으로 된 부분은 음을 읽으면 됩니다. 자, 선생님이 즉석에서 향찰로 된 문장을 적어볼 테니 그 뜻을 맞혀보세요."(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해보길 바란다.)

我恩非也

花二非也


 아이들은 문장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정답이 나오는 반도 있고 안 나오는 반도 있다. 정답은 다음과 같다. 

我恩非也 나는 아니야

花二非也 꽃이 아니야

실질형태소인 '나'와 '아니다', '꽃'은 훈차 방식, 조사 '은'과 '이', 어미 '야'는 음차 방식이 사용되었다. 그다음엔 아이들에게 향찰 퀴즈를 내 보도록 한다. 학생들이 낸 문장은 훨씬 재미있는 문장이다. '000은 바보래요.', '오늘 점심은 탕수육이야' 같은 문장도 모두 향찰로 표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한자 실력이 중요할 것 같지만 의외로 까불까불하는 보통 아이들이 더 잘 맞힌다. 

"진성여왕 때 <삼대목>이라는 신라의 가집()이 편찬되었다는데 그것이 소실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더 많은 시를 읽게 되었을 거예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작품은 25수가 전부거든요. 집에 가서 삼대목이라는 제목의 옛책이 있거든 조용히 선생님한테 가져오세요. 값은 잘 쳐드리죠." 

혹시 아는가? 정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향가 중에서 제일 많이 가르치는 작품은 <제망매가>이지만 나에게는 <헌화가>가 제일 매력적이다. 짧아서 좋고 여운이 끝내준다. 이 작품은 배경설화가 같이 소개되어 있는데 <삼국유사>에 실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덕왕대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다가 해변에서 점심을 먹게 되는데 그 곁에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 돌산 봉우리 옆에 철쭉꽃이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그 꽃을 보고 그의 무리 중에 그 꽃을 바칠 자가 있느냐고 물었고, 모두가 발길이 닿지 않아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마침 암소를 끌고 그 곁을 지나가던 노옹이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고 이 노래를 지어 바쳤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묻는다.

"왜요? 왜 그 노인은 그렇게 한 거죠?"

"수로부인이 무진장 예뻤대."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이 납득한다.

"아!"


수로부인은 그 뛰어난 미모 때문인지 '바다의 용'에게 납치된 적도 있었다. 그때에도 한 노인이 근방의 백성들을 불러 모아 '해가'를 부르며 막대기로 땅을 치게 했더니 수로부인이 풀려났다고 한다. (이 노인이 아까 그 노인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상상해 본다. 평생 소나 끌던 할아버지를 천 길이나 되는 절벽을 오르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젊은 사람도 감당치 못할 높이의 절벽을 오르게 할 만큼 예뻤다면 도대체 얼마나 예뻤을까? 꽃처럼 예뻤을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것도 즐겁지만 내가 더 오래도록 상상하는 것은 그 노인이다. 아름다움을 향한 늙지 않은 마음. 암소를 끌던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부끄러움을 내려놓고, 사람들 눈을 아랑곳하지 않고, 절벽을 오르던 순간에 노인이 느꼈을 그 마음.


노인이 지어 불렀다는 노랫말도 간결하고 멋지다. 아니, 간결해서 멋지다. 


헌화가 / 견우옹  [박노준, 1991 해석본]


자줏빛 바위 끝에 

잡으온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신라 성덕왕 때의 노래순정공() 강릉 태수로 부임하여 가던 길에 동행하던 아내 수로(부인이 해룡에게 납치되자 노인이 근방의 백성들을 불러 모아  노래를 부르며 막대기로 땅을 치게 했더니 수로 부인이 풀려났다는 내용으로, ≪삼국유사 실려 있다작가와 연대는   없다.

신라 신라 성덕왕 때의 노래순정공() 강릉 태수로 부임하여 가던 길에 동행하던 아내 수로(부인이 해룡에게 납치되자 노인이 근방의 백성들을 불러 모아  노래를 부르며 막대기로 땅을 치게 했더니 수로 부인이 풀려났다는 내용으로, ≪삼국유사 실려 있다작가와 연대는   없다. 성덕왕 때의 노래순정공() 강릉 태수로 부임하여 가던 길에 동행하던 아내 수로(부인이 해룡에게 납치되자 노인이 근방의 백성들을 불러 모아  노래를 부르며 막대기로 땅을 치게 했더니 수로 부인이 풀려났다는 내용으로, ≪삼국유사 실려 있다작가와 연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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