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구두를 신은 Oct 23. 2023

이규보의 <시벽>

무엇을 치우치게 즐기는 것, 고치기 어려울 정도로 굳어버린 버릇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있다. 바로 '벽'이다. 대체적으로 '도벽', '도박벽' 등 안 좋은 의미로 많이 쓰인다. 그런 '벽'을 시에 붙인 사람이 있다.

이규보의 '시벽'이란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어느 해 전국연합학력평가 국어영역 시험지를 통해서였다. 고전시가 문항으로 고려시대에 창작된 한시 작품이 출제된 것이다. 나는 다음 날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문제에 대해 논평이라도 해줄라 치면 문제를 풀어봐야 했는데 낯선 지문들을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나도 문제를 틀리기 십상이므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시를 읽는 순간 내가 있는 교무실이란 공간을, 문제를 풀기 위한 나의 독서 목적을 모두 잊었다. 문제나 풀려고 지문을 읽던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여러분은 어떠실지 궁금하다.


시벽 / 이규보


나이 이미 칠십을 넘었으며
지위 또한 삼공에 올랐으니
이제는 문장을 버릴 만도 하건만
어찌하여 아직도 그만두지 못하는가.
아침에는 귀뚜라미처럼 노래하고
밤에는 솔개처럼 읊노라
떼어버릴 수 없는 시마(詩魔)가 있어
아침저녁으로 남몰래 따르면서
한번 몸에 붙자 잠시도 놓아주지 않아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네.
나날이 심간을 깎아서
몇 편의 시를 짜내니
기름기와 진액이
다시는 몸에 남아 있지 않네.
앙상한 뼈에 괴롭게 읊조리는
내 이 모습 참으로 우습구나
남을 놀라게 할 문장으로
천년 뒤에 물려줄 만한 시 못 지었으니
스스로 손뼉 치며 크게 웃다가
문득 웃음을 멈추고 다시 읊는다.
죽고 사는 것도 반드시 이로 말미암을 것이니
내 이 병 의원도 고치기 어려우리.   


삼공의 지위에 올랐으니 출세나 인기를 위한 글쓰기가 더 필요하지 않다. 자신이 이루어놓은 공적을 잘 차려놓은 음식을 맛보듯이 음미하며 남은 여생을 살아가도 충분하다. 그런데도 그는 문장을 버리지 못하고 아침저녁으로 시를 짓느라 진이 빠진다. 그런 자신이 우습고 '천년 뒤에 물려줄 만한 시를 못 지었다'라고 한탄하면서도 간혹 아름다운 문장을 생각해 내고 행복해한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학생시절 국문학을 진로로 선택했고, 그런 비슷한 감동들을 학생들에게 나눠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여 교사가 되었는데 삶은 참으로 녹록지 않았다. 친절하지만 수업이나 평가에 대해 물러서지 않는 미워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선생님으로, 평가의 달인이나 행정의 달인이 삶의 목표라도 되는 듯 살고 있던 나는(물론 학교 현장이 나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있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그대로 사회화되고 있었다.) 그 순간 깊은 감흥에 빠졌다. 그리고 이런 순수한 모습이 있어야 학생들에게 문학의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규보는 당대에서는 독특한 문학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시인이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여 시인 자신만의 독창적인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금은 모든 문학 전공자들이 기본 룰로 삼고 있는 것인데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과거의 고전에서 좋은 구절을 응용하여 시를 짓는 것이 잘 쓰는 글이었다. 말하자면 글 쓰기를 통해 자신의 독서 이력을 자랑하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가 고전 작품을 볼 때 잦은 전고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기억날 것이다. 과거 국어선생님들이 맨날 하셨던 말씀. 이 구절은 과거에 중국의 어느 고사에서 온 것이고, 그 의미는 무엇이고....

그의 자주적인 의식은 <시벽>보다 훨씬 더 유명한 <동명왕편>이라는 한문서사시에서도 잘 발현이 되었는데 민족 서사시의 전통을 최초로 수립했다는 명예를 얻기도 했다. 동명왕편은 고구려 시조 주몽에 대한 이야기로 해모수라는 천제(하늘신)의 아들이 하백(물의 신)의 딸을 꾀어 결혼하고자 한 이야기, 하백이 해모수를 가죽가마에 넣었으나 도망간 이야기, 쫓겨난 유화가 금와왕에게 구출된 이야기, 해모수의 아이 '주몽'이 알로 태어난 이야기, 신이한 탄생 못지않게 비범한 능력을 타고난 주몽이 시련을 극복하고 나라를 세운 이야기는 한문이라는 높은 진입장벽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가히 천년 뒤에 물려줄 만한 시를 쓴 셈이다. 이미 젊었을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시를 쓰는 것이다.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오늘 이 시를 다시 읽으면서 문득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하나에 진심인 사람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저기 머리 하얀 노인처럼.









작가의 이전글 화가는 어떻게 국선에 당선되었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