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 상황을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내가 중 2때인가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으로 숨어들었을 때 엄마는 대번에 눈치챘다. 그런데도 말은 이렇게 했다.
“오, 책! 좋지. 좋아.”
그날 읽은 책 이야기를 내가 건넬 때 내 이야기를 반만 듣고 있는 느낌, 불안한 감정을 떨구고 내가 전하는 그 위인의 인생 스토리에 애써 집중하고 있는 눈빛을 나는 보았다. 우리 둘은 그렇게 서로의 예민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가슴에 숨긴 채 후 시리즈의 그 위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내가 그날 알게 된 이야기를 섞으면서 이야기는 더 풍부해진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내 약점을 덮어주는 사람.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알지만 내가 말하지 않았으므로 모르는 척 해주는 사람. 내가 초등학생 때 내 엉덩이가 의자에 진득하게 붙어있지 못한 것에 대해 할머니는 대놓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약을 먹이든, 정신 상담을 받게 하든 무슨 일을 해야 해. 그게 어미인 네가 할 일이야. 엄마가 쉬운 줄 알았어? 너는 네가 아플 때도 의사한테 시원찮게 얘기해서 제대로 된 약도 처방받지 못하잖아.”
엄마는 할머니의 분명한 성격과 달리 소박하고 진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개그프로그램을 굳이 찾아서 보고 개그콘서트가 종방할 때 마치 한 시대가 기울어가고 있는 듯한 아쉬움을 보였던 것이 엄마가 가진 소박함이고, 함부로 상황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한 발자국 멀리에서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적용하려고 하는 노력이 진중함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는 할머니의 성화에도 나를 문제 있는 아이로 인지하지 않고, 마음속에 드는 의구심을 의구심 채로 그대로 놔뒀다. 그렇다고 나에 대한 전적인 신뢰로 내 어깨에 짐을 싣지도 않았다. 모호성과 불안을 견디는 힘, 엄마에게는 그게 있는 것 같았다.
똘끼 충만, 안드로메다... 이게 가족들이 내게 자주 붙이는 수식어다. 호기심이 많고, 특이한 것에 꽂히면 모든 용돈을 붓는다. 처음에는 런치패드, 그리고 픽시 자전거. 둘 다 가격이 비싼 거라 나는 엄마와 늘 협상을 했다.
“엄마, 내 생일에 얼마 정도의 선물을 사 줄 거야?”
“음, 한 7만 원?”
“그럼, 어린이날에는? 어린이 아니라고 동생만 사주고 나는 안 사주는 것은 아니겠지?”
“음, 그것도 한 7만 원?”
여기에 아직 오지도 않은 크리스마스 선물 비용 10만 원, 새해 선물 비용 10만 원 그리고 매달 받을 용돈의 50%를 선지급하면 100만 원도 나온다. 그럼 나는 모든 선물 비용을 합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사겠다고 한다. 엄마는 그런 식으로 전략을 짜서 하는 것을 기특하게 생각했다. 막무가내로 사달라고 하는 것보다 성공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선지급된 용돈도 때가 되면 기억이 나지 않는 척하면서 더 주고는 했다.
책장에 각종 픽시자전거의 파츠들이 전시되고 장롱에는 옷이 아니라 타이어와 휠, 핸들바들로 채워졌다. 방에서는 자전거 공방 냄새가 났다. 그 안에서 자는 것이 가능한가, 엄마는 걱정했을 뿐이었다.
엄마가 밤새 골라놓은 대학들을 아침이면 내가 거절했던 까닭으로 수시 전형에 넣은 대학이 모두 떨어졌다. 그리고 수능은 모의고사보다도 더 형편없는 점수가 나왔다. 3학년 1학기는 정시를 대비한다는 핑계로 이전의 점수보다도 한 등급씩 떨어져 내신 점수도 절망적이었다. 유튜브에 떠도는 잘난 놈들의 수능 정복기는 꾸준히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엄마는 그래도 내게 화내지 않았다. 내가 구겨놓은 수능 성적표를 요리조리 펴보더니 조용히 입시 컨설팅 사이트에 성적을 넣었다.
“수시 때 붙을 수 있었던 대학도 이젠 어렵겠네.”
엄마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괜찮아, 너를 받아줄 수 있는 대학을 찾아보자.”
밤새 강원도와 충청도 일대의 대학들을 싹 다 뒤지고 세 곳을 골라내었다. 한 곳은 수능 성적으로는 가기 아슬아슬한 대학이었는데 뜻밖에 정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내신 성적만으로 갈 수 있는 전형이 있음을 발견해 내었다.
“수능보다는 내신이 조금 나으니까. 이 전형 한번 넣어보자.”
결과는 같은 대학 같은 학과인데도 수능 성적 전형은 7대 1이 되었다. 이걸 넣었다면 떨어졌겠지. 엄마가 공략한 내신 성적 전형은 0.98 대 1이 되었다. 마감되자마자 씩, 웃으며
"붙었네."
나는 웃는 이모티콘을 날렸다. 나의 어처구니없는 그 모든 행동에도 엄마는 맞장구를 쳤다.
“대학에 가서, 애들한테 무슨 전형으로 붙었는지 굳이 밝히지 마라. 은근히 그런 거 캐서 비교하는 애들 있으니까.”
정시는 세 곳 모두 붙었다. 등록하지 않은 나머지 두 곳에서도 등록을 독려하는 교수님들의 상담 전화가 왔다.
이렇게 시작된 대학 생활은 애매했다. 주변 동급생은 물론 선배들도 상경을 꿈꾸는 산업화시대의 농촌 청년들처럼 정신이 벙벙했다. 신입생 환영회도, 과 MT도 즐거운 듯, 허전한 듯 분위기가 애매했다. 가고 싶었던 그 어느 대학들로 영혼이 절반은 가 있었다. 군수라는 개념도 나왔다. 군 입대를 위해 휴학하고 군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 대입 전형을 넣어보는 것. 정시는 어렵겠지만 수시는 누구라도 해볼 수 있다는 분위기였다.
KTX를 타고 가면 한 시간, 서울역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간 엄마가 집에 도착할 때쯤 나도 그 도시에 도착했다.
“음, 나쁘지 않아.”
엄마는 좋다고는 안 했지만 이 대학이 그물망과 같은 최소한의 방편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것은 아마도 수능 성적표를 받아보고, 개념 확인 문제들만 풀어져 있을 뿐 그 이후 문제는 손도 못 댄 수능 참고서들을 보고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
“네가 공부를 잘 못해도 너를 구박하지 않는 이유가 있어.”
엄마는 나와 같이 떡볶이를 먹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성공할지도 모르잖아. 꼭 공부만으로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니까. 너의 똘끼 충만한 호기심 천국이 어떻게 풀릴지는 아무도 몰라. 공부해서 좋은 직장 가면 안정적이어서 좋겠지만 아니어도 길이 없진 않겠지. 아빠도 그러던데? 공부만 공부만 하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보다는 너처럼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열심히 살면 더 성공할 수 있다고. 열심히 네 길을 찾아봐.”
나는 아들에게 어떤 엄마였을까 생각해보다가 쓴 글입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고 제 바람이죠. 아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