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여행을 앞두고
혼자 자취를 하기 시작할 즈음부터 여행을 떠나기 전 집 정리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막연히 여행을 갔다가 다른 사람이 내 집에 먼저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이었던 듯. 특히 일주일 이상 집을 떠나 있을 때면 냉장고 속까지 뒤집어 김치나 장아찌, 소스류를 제외하고는 미리 먹어치웠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귀신이 은탁이에게 자신이 살던 고시원 냉장고를 채워달라 부탁하던 장면과도 비슷하다. 가족이나 지인이 내 집에 와서 짐을 챙길 때 내가 사는 모습에 속상하지 않으면 하는 바람.
이번 한국행을 앞두고 뉴질랜드 집을 열심히 치우고 치웠다. 바닥에서 습기가 올라오는 집이니 낮시간에는 내내 제습기를 틀어두었고, 냉장고를 비웠다. 미뤄두었던 이불빨래와 청소기를 돌렸다.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을 당시 방학을 맞아 고국을 찾았던 수많은 유학생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지인을 동원해서 살던 집을 정리했다고 들었다. 우리에게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하거든 그래도 정돈을 해두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
출국 전날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 일 년 뉴질랜드에서 시간을 보내니 한국에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여행하고 돌아왔을 때 집이 무사히 있겠지, 습한 집에 곰팡이나 벌레가 침투하지 않아야 할 텐데.
며칠 전 함께 한국에 왔다가 먼저 뉴질랜드로 돌아간 남편이 집은 괜찮다며 영상통화로 보여주었다. 서랍장 겉면에 곰팡이가 내려앉긴 했지만 거미줄도 없이 집이 잘 있었다. 다행이다. 돌아가서 청소며 정리며 또 한바탕 푸닥거리를 할 테지만 남편이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을 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