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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16. 2024

지관서가 선암호수공원점

마음의 여유 제공하기 For me

옛날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취미가 상당히 적막하고 재미없는 일이라 치부하기도 했다. 휴대폰만 손에 쥐어준다면 하루종일 유튜브니, 인스타그램이니, 카카오톡이니 정신없이 시간만 소비하는 똑같은 굴레에 갇히는 게 오히려 더 재미있었으니까. 실제로 독서라는 것은 학생 때 지겨울 만큼 했기에 더욱 하기 싫었고, 그마저도 삽화나 만화책이 더 나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었다.


그러다 작년 좋은 인연을 만나, 찰나 같은 순간을 만나서 독서라는 취미를 얻게 되었다. 나는 활동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랜만에 자의로 독서를 한다는 게 사실 엄청 어색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던 독서와 실제로 행하는 독서의 큰 차이점을 발견하고 만다.




바로 장소의 중요성이다.

독서는 어디서든 할 수 있다. 내가 제일 많이 책을 읽는 곳은 사실 골방 같은 내 방인데, 작년 좋은 인연에게서 알게 된 공간이 있다. 바로 울산 선암동 선암호수에 위치하고 있는 지관서가이다.  



정확한 명칭은 선암호수 노인복지관이지만, 1층에 위치하고 있는 지관서가는 사실상 카페이면서도 2층엔 책만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나이대가 좀 있으신 어르신들이 하고 계시기에 뭔가 마음속의 평화로움을 더 가질 수가 있다.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 땐, 독서가 목적이 아니라 데이트가 목적이었기에 그다지 관심이 가진 않았다. 다만, 그녀가 이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다는 것을 듣고 뭔지 모를 호기심이 마음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관서가 바로 앞에는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선암호수가 자리 잡고 있는데 날씨가 한창 좋을 때,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함께 걸었던 그 경험은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실 지관서가라고 해서 막상 조용하거나 그렇진 않다. 선암호수를 찾는 많은 인구들이 커피 한잔을 하기 위해서 찾기도 하기에 항상 시끌시끌하고, 어쩔 땐 반려동물들과 함께 방문하는 이들도 많아서 어쩔 땐 책을 읽다 잠시 책을 덮기도 한다.


그래도 여기서 책을 읽고 있으면 뭔지 모를 마음의 평온함이 생겨난다. 나처럼 혼자서 책을 읽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지관서가 앞 잔디밭에선 가족들이 한데 모여 비눗방울을 불며 화목하게 뛰어놀고 있다. 그리고 반려동물을 데려오는 사람들은 잔디밭에서 반려동물들이 마음껏 놀도록 잠시나마 자유를 허락하기도 한다.


이런 것을 보며 평화로움과 아늑함을 느낀다. 항상 시청에서 바쁘게 일하다 보면 마음속에 여유가 없어질 대로 없어져 내가 누구인지 까먹고 방황하게 된다. 그렇기에 방에서 하루종일 누워 천장만을 바라보며 들숨 날숨만 내쉬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밖에 나와 드라이브도 하며 사람들 사는 모습을 바라보자면 그만큼 평화로울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여유를 선물하는 것 같아 기쁘다.




이곳의 커피도 맛있는 편이다. 그래서 책을 피기 전에 항상 공손하게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아 진동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린다. 진동벨이 우-웅 소리를 내면 나는 커피 한잔을 받아 들고 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향긋한 커피 향이 코를 자극하고 곧 씁쓸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내 혀를 타고 목구멍으로 스르르 넘어간다. 여기에다가 내가 읽고 싶던 책과 함께라니. 이 얼마나 고즈넉하고 만족스러운 여유인가!


요즘 브런치를 쓰면서 구독자 수 늘어나는 재미를 느끼고 있거니와 내 글을 진심으로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음에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분들이 쓰신 글들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자니 웃음도 나올 때도 있고 한없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슬픔에 공감하기도 한다. 어찌 됐든 우리는 지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방금은 요시노 갠자부로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 읽었다. 본문 중 주인공인 코페르가 자신의 외삼촌에게 주장한 '인간 분자의 관계, 그물코의 법칙'은 옷 한 벌, 통조림 하나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며 나에게 오면서도 수많은 사람들과의 연결을 필연적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어쩌면 인간은 분자가 아닐까, 그물코처럼 모두 엮여 있는 것은 아닐까라며 생각해 낸 법칙이다.(물론 나중에 외삼촌이 '생산관계'라는 경제학과 사회학에서 이미 배우는 지식이라고 하지만...)


평소에는 이 책을 읽는 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뭔가 현재의 논리가 아닌, 1930년대의 시대상이라 마음에 와닿지 않을 거라는 걱정이 앞서서 읽으면서도 의심에 의심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관서가에서 책을 펼친 지 약 2시간 반 만에 다 읽어버렸다. 학생의 신분이던 코페르가 외삼촌과 삶을 살아가며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답을 얻고, 그리고 코페르 본인이 외삼촌처럼 인생의 진리는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내용이었다.


지관서가의 분위기 덕분일까. 어렵게 생각했던 책도 술술 읽히다 보니 선암호수를 거닐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들은 모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슨 행동을 할까, 이제 어디로 갈까 등등을 생각하며 그들 옆을 스쳐 지나간다. 날도 좋고 바람도 기분 좋게 불어오면서 귀에선 내가 듣기 좋아하는 인디밴드 음악이 흘러나온다.




여유롭다. 그리고 이런 날씨가 내 마음을 위로한다. 그리고 지관서가라는 곳이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나는 행복을 느낀다. 지금은 혼자서 테이블에 앉아 있지만 이 마저도 어른이 되어간다는 지침이 될 테지.


그렇기에 모두 자신만의 여유를 줄 수 있는 장소를 하나씩 정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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