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일을 겪고 나선 사람들을 잘 믿지 않게 되었다.
무심코 내 마음을 다 내주었다가 겪게 될 상처가 너무 두려웠으니까.
그래서 항상 웃고 다니던 미소를 감추고, 친한 사람들에게도 내 온전한 모습이 아닌 사회적인 가면을 써가며 상대했다. 직장상사들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면 함께 웃고 떠들다가도 그들이 자리를 뜨는 순간 바로 무표정으로 돌아서게 됐다.
자연스럽게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서도 연락이 뜸해지고 나랑 같이 일했던 사람들만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 정도로 상호작용은 잦아들었다. 덧붙여 카카오톡이든 인스타그램이든 연락 없이 하루종일 지나간 적도 숱하게 많아졌다.
어느 날 어김없이 야근을 밥먹듯이 한 뒤 터벅터벅 홀로 퇴근한 내 작은 방에 눕자,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 마치 넌 지금 왜 이러고 있는지 세상마저도 나에게 물어보는 듯했다. 나지막이 혼잣말로 "그러게..."라며 세상에 답한 뒤 베개로 얼굴을 덮어버린 채 빨리 잠이 들기를 바랐다.
점차 이런 날이 반복되자, 내 마음속의 우울과 심연이 꾸물꾸물 자라나기 시작했고 이는 왜곡되어 이제껏 친구들이나 동기 사귄 의미가 없다고, 이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힘들어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구나라고 질책하기도 하고 부글부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냉수를 숨도 안 쉬고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다.
아니, 멀어지고 있는 건 나였음을.
그들에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멀어지고 있는 것 역시 나였음을.
비난의 대상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남들에게 화살을 돌리고자 했다. 그런데 천성적으로 쫌생이 같은 마음을 갖고 태어나서 그런지 남들에게 돌린 화살을 곧장 나 스스로를 향해 조준하기 시작했다. 나에겐 이게 더 편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하면 할수록 나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어느샌가 거리는 아득히 멀어져 나와 나는 서로를 분간할 수도 없을 만큼 멀어져 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책을 무작정 읽어대기 시작했을 때가.
감정이나 마음을 대변한 에세이를 우르르 대여해서 주말엔 하루종일 책만 본 것 같다. 그러면서 침잠하고 있던 마음을 점차 일으켜 세우고자 했다. 그리고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나를 다독였다.
또, 무작정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들으며 밤하늘을 쳐다보며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다리가 아파오고 숨이 헐떡이는 것 같지만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만이라도 고민은 다 가라앉고 나는 나를 찾아 이리저리 사방을 헤쳐 다니고 있는 거니까.
그렇게 몇 개월 간의 홀로 여행은 이제 마무리되어 가는 듯하다.
이제 더욱 바빠진 업무 때문에 야근은 더 잦게 하고 있고, 사회생활도 그럭저럭 전처럼 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나는 나를 찾지는 못했다. 잡힐 것 같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놓쳤다 싶으면 저 앞에 슬며시 나타나 내 시선을 이끈다.
언젠가는 나는 나를 만나 진실된 인사를 하고 말 것이다.
그때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시련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난 어떻게든 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나도 멀어지지 말고 그 긴 거리를 쫓아 나에게로 다가와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