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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13. 2024

곁에 있는 사람을 보낸다는 것은

업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자리에 앉아 이제껏 진행되어 있던 일을 다시 한번 검토하던 때였다. 진동이 워치에 전달되길래 폰을 슬쩍 바라보니 친한 주무관님분께서 전화를 주고 계셨다. '아침부터 바쁜데 왜 전화하시지? 오늘 저녁에 퇴근하고 술 한잔 하시자고 하는 건가?' 싶어 전화를 받아 들었다. 전화기 너머로 별 다른 말이 들리지 않아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느끼며 무슨 일 때문에 전화 주셨냐고 재차 물어봤다. 


"... 가셨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뭐라고요?"

"○○○ 주무관님 돌아가셨다고. 지금 빈소 마련 중이다. 좀 이따가 자세한 내용 문자로 보내줄게"

"네? 다시 한번 말해주세요.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


그때부터 시간은 멈춰버렸다.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없어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잠시 후 황망하기 그지없는 부고 문자가 다시금 내 현실을 사정없이 깨부수고 말았다. 




타지에서 올라와 입사 후 첫 자취생활을 시작했었다. 대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4년 동안 했으나 자취방은 첫 경험이었기에 이십대 중반의 사회초년생으로서는 버거운 삶 그 자체였다. 먹는 일부터 시작해서 청소, 빨래, 기타 등등 했다 하면 돈이었다. 거기다가 공직업무를 해본 적이 없었으니 조직에 적응하는 일까지 합치면 항상 정신없이 살았었다. 


그때 날 도와주신 주무관님은 마치 엄마 같은 분이셨다. 내 나이 또래의 자식들을 키우고 계셔서인지 이십대 중반의 자취생인 나를 항상 신경 써주셨다. 어느샌가 내 자취방 냉장고에는 주무관님이 챙겨주신 반찬으로 가득 찼고, 명절 때 바빠서 고향으로 갈 수 없었던 나를 위해 명절음식도 우르르 가지고 오셔서 내 손에 쥐어주시고 업무스트레스 때문에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고 툴툴대면 회식을 하다가도 내 곁으로 앉으셔서 어깨를 토닥이시면서 따듯하게 안아주셨다. 그러면서 항상 잘하고 있다고, 몸도 아픈데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이 장하다며 안아주셨다. 


물론 업무를 하면서도 이리저리 다투기도 하고, 의견이 맞지 않아 며칠 동안 서먹서먹해질 때도 있었고 술자리에선 항상 호탕한 웃음을 지으시며 분위기를 이끄시던 그분은 언제나 나의 엄마역할. 말 그대로 엄마주무관님이셨다. 


그러다 내가 첫인사이동을 하게 된 날엔 인사조서에 떡하니 올라간 내 이름을 확인하시고는 벌떡 일어나셔서 날 꽉 안아주시며 드디어 일다운 일을 하러 간다면서 본인이 더 기뻐하셨다. 그렇게 우린 다른 공간에서 일을 하면서도 서로를 위해주고, 의지하고, 응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바쁘고 고된 업무에 일을 때려치우고 싶었어도 든든한 버팀목이 항상 거기에 서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랬다고 생각했다. 영원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엄마 주무관님은 저 벽 한편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덩그러니 액자로만 남아계신다. 


3일 내내 업무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빈소를 지켰다. 주무관님의 자식분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솟구쳐 오르는 울음을 겨우 참아가며 슬픈 내색을 들키지 않으려 했다. 나마저 울음을 주체하지 못한다면 그분이 슬퍼하실 것을 알기에. 입술을 꽉 물며 참아냈다. 


발인 당일 날, 잠을 잔 것도 안 잔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에서 화장터로 향했다. 수많은 인파 속에 고요히 서 있던 운구차량을 눈앞에 두고 차라리 세상이 날 두고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는 거라면 좋겠다고 다시 한번 소원해 봤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3일 전. 그때까지만 해도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며 언제 또 술자리를 가지냐고 물어보던 게 마지막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인자한 웃음을 지어주시던 그분은 이제 내 앞에 바닥에 누워계셨다. 

가족분들께서 관을 들어 화장터로 들어서던 그 순간 속이 뒤틀리며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나를 휘감았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넘쳐 꺼이꺼이 울었다. 세상 떠나갈듯한 곡소리 사이에서 나는 무너져 내렸다. 


저기로 들어가시면 안 되는데, 

저기는 너무 뜨거우실 텐데,

지금이라도 박차고 일어나셔야 하는데...


화장터 문이 그대로 닫힌다.



유골함 하나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단지에 적힌 성함과 날짜가 나를 다시 무너트린다. 납골당으로 가는 길엔 맑디 맑았던 날씨가 우중충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맑아야 잘 올라가실 텐데라며 괜히 하늘을 원망해 본다. 

납골당에 안치하기 위해 여러 절차를 진행 중에 그곳에 먼저 잠들어계신 분들의 인생을 살펴봤다. 그들 모두 누군가의 부모님,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녀와 손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사유를 갖고 여기에 잠들어계셨다. 그리고 이제 이곳엔 주무관님이 평안히 잠드시기 위한 자리가 마련된다. 


장례지도사께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하셨다.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 순서로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이 인사를 하게 되면 정말 마지막인 것 같아 하기 싫었다. 내가 인정하는 것 같아서, 진짜 보내드려야 하는 것 같아서 더욱 하기가 싫었다. 


그런데, 이미 내 몸은 단지 앞에 서있었다. 한마디 한마디 내뱉으려 할 때마다 울음이 벅차올라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냥... 너무 고생하셨고, 그곳에선 제발 아프지 마시고 행복하시라고. 지금까지 너무너무 수고하셨어요. 주사님 이제 다 내려놓고 편히 쉬세요. 안녕히 가세요..."

뭉개지는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하염없이 단지를 쓰다듬었다. 

아, 단지는 아직까지 이렇게나 따뜻한데. 온기가 이렇게나 느껴지는데. 



밖으로 나오니 거세게 비가 내린다. 다시 한번 하늘을 원망해 보다가도 혹여나 가시는 길 울고 계신 건 아닌가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냥 여기서 다 울고 가시라고 내리는 비 모두 맞고 한참을 서 있었다. 


카톡 알림이 울린다. 무심코보니 선물 받은 기프티콘 기한이 30일 남아 연장할 것이냐는 알림이었다. 

뭔가 싶어 눌러보니 작년 내 생일날에 보내주신 커피 기프티콘이었다. 


아, 아마 이 커피는 평생 먹지 못하겠지. 

그분의 마지막 온기는 이 커피 기프티콘에 오롯이 스며들어있으니까.


보고 싶을 거예요. 아주 많이 많이요.
수고하셨어요, 안녕히 가세요.
나의 엄마 주무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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