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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날의 안녕 Oct 03. 2023

며느리에게 함부로 할 권리는
누가 그들에게 부여했는가

나는 지난 추석에 일어난 일을 기억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은 작년 추석 날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


남편은 성묘를 다녀온 후

내 행동을 문제 삼아 소송에서 공격을 하고 있다.

나에 대해 '괴팍하고 폭력적이다'라고 묘사를 하며

자신을 매우 폭력적인 여자와 산 피해자로 둔갑시켜 이혼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날의 일, 정확하게 나만 기억할 수 있는 그 통화를 내가 녹음이라도 해놨더라면

그들은 그렇게 쉽게 나를 공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당시에 녹음은 생각조차 못했었다.




추석날 집안 행사에 대해서 어떤 말도 없었던 남편은 오후에 약을 먹기 위해 일어나 보니 집에 없었다. 

나에게 말도 하기 싫었는지 아무 말도 없이 혼자 집에 간 모양이었다.

나는 약을 먹고 다시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누웠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어둠이 스며드는 시간, 오후 5시가 넘어서 다시 눈을 떴었다. 

여전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날 엄마가 음식을 해두고 가셔서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데워 입에 억지로 넣어 씹고 있었다. 


남편에게 톡이 왔었다. 차가 너무 막혀서 늦으니 밥을 먹으라는 메시지였다.

전날 엄마가 음식을 해주러 집에 왔을 때 엄마를 가사 도우미 대하듯이 하대하는 

남편의 행동에 나는 기분이 꽤 많이 상해 있었고 그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던 중이었다.


평소에는 말 한마디 하지도 않더니, 남편이 언제부터 저런 문자를 보냈는가 싶을 정도로

나에게는 놀라운 톡이었다. 


답변은 하지 않았다. 


이 톡은 이혼소송 그리고 게시글 삭제 소송에서도 모두 증거자료로 등장을 한다.

자신이 아픈 아내를 챙겼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시하고 답도 하지 않았다며

남편으로써 자신은 역할을 다 했다는 증거로 이용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밥을 먹은 뒤 바로 약을 먹고 누워야만 했다.

내 몸을 점령한 강력한 통증으로 몸 전체가 가루가 되어 부서질 것만 같았다.

나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는 것조차도 버거울 정도로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기에

누워 있는 것만이 내가 가장 안정적으로 취할 수 있는 자세였다.




또다시 잠에 취해 있는데 요란하게  울리는 진동 소리에 깨어 전화를 봤다.

남편의 母였다. 

전화를 들자마자 전화가 끊겼다. 꽤 오랫동안 진동이 울렸던 모양이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바로 또 전화를 하는 그녀

방정맞게 울리는 진동이 母가 꽤 화나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느껴지는 남편의 母 목소리는 내 양 어깨를 베어내는 칼처럼 

날카롭고 차가웠다.

자신이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나에게 목소리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숨소리는 거칠었고 말은 빨랐으며 목소리는 분노를 억지로 누르고 있었다.


통화는 아무 인사도 없이 나에게 '넌 젊은 애가 맨날 그렇게 아프고 난리냐...'로 시작을 했다.


집안 조상님께 성묘 가는 중요한 추석 일정에 참여하지 않은 며느리를 혼내려고 

작정하고 전화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넌 맨날 누워서 잠만 잔다며?' 뭐 이런 내용들로 마치 내가 팔자 좋게 

누워서 잠만 자고 추석에도 안 온 사람 취급을 하며 내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비아냥에 어떠한 말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아픈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쏟아 낼 수 있는지 

세상에서 가장 착하다고 자랑하던 당신 아들이 병든 나를 버리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그때 왜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참기만 했는지 등신 같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몸이 찢기는 듯한 통증으로 너덜너덜해진 나에게 한참 동안이나 

자신의 큰 아들이 초기 당뇨진단을 받아서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에게 어쩌란 말인가.. 난 그녀의 둘째 아들 때문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쳤는데 

큰아들 걱정까지 해줘야 하는 건가? 

그녀의 소중한 큰 아들은 합병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뇨를 처음 진단받고 식단 관리를 하는 중인데 그것이 그토록 가슴 찢어지게 아픈 모양이었다.


확실히 깨달은 건 결혼생활 6년 동안 어머니라고 불렀던 그녀는 어머니는 아니었다.


자식이 식단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가슴이 아파하는 사람이 

몸이 찢기도록 아픈 통증을 안고 있는 며느리에게는 이렇게도 모질게 굴었다.


만약 아픈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한다면

병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며 같이 걱정해 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그저 일반적인 행동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의 자식도 아니고 지인도 아니다. 

시대가 변해서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시어머니라는 타이틀만으로도 권리를 내세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집이 많다.


요즘은 며느리 눈치를 본다며 엄살을 부리는 시어머니들이 있지만 

아직도 시어머니의 권리를 당연하게 여기며 친절을 가장한 막말로 후드려 패는 일들은 

꽤 많은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옛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우리 사회는 정말 빠르게 변했고

현재는 인권 보호에 대한 내용이 화두가 되고 있다. 

폭력은 신체적 가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만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으로 바뀐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기혼 여성에게 가해지는 언어폭력의 상처는 그저 시월드 험담으로 해소시키고 마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시집을 방문하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듯한 행동과 말들이 종종 있었지만 

남편은 자신의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화를 냈었다.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은 나의 트라우마에서 오는 착각이라며 

멀쩡한 자신의 엄마를 삐뚤어진 시각으로 보는 내가 문제가 있다며 나를 비난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이혼 소송에서도 멀쩡한 자신의 엄마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며 

별일도 아닌데 내가 사사건건 불만을 가지고 있다며 이혼사유로 거론되었다.


하지만 5살 조카도 우리 집 고양이도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잘 파악을 하고 그들에게는 다가가지도 않는다. 

나를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정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들이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란 적은 없다. 

그냥 타인으로써 최소한의 존중만 받고 싶을 뿐이다.

시어머니라는 이유로 막말을 하며 내가 당연히 한 귀로 듣고 흘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 앞에서는 우리 가족까지 걱정해 주는 척 험담하는 것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했을 뿐이다.




아마 남편의 母는

내가 억지웃음소리를 내며 '몸이 아파서 같이 못 가서 죄송해요'라는 말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성묘를 못 간 게 사죄를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먼 거리를 달려 산소에 가도 나는 그들의 조상님께 절을 할 수도 없다.


우리 집은 여자는 절을 하지 않는다며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인 마냥

절하려는 나를 제지했을 때 나는 민망함을 감추고 뒤에 가만히 서 있어야 했다.

성묘를 가도 내가 하는 일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고 있다.


가족으로써 아픈 사람에 대한 배려나 존중은 하지 않으면서 

추석에는 무조건 참여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자신들이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며느리에게는 함부로 대하고 의무는 다하라고 하는 것은 전통이 아닌 악습이다.

사회가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양반가문 흉내를 내며 

며느리 노릇을 하라고 한다. 

원래 그랬던 것이니까 라며 아주 당연하게 시집 내에서 기혼 여성에 대한 역할 강요는 

여전히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난 전화 통화를 하면서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녀의 막말에 가장 평화롭게 대응하는 방법은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전통적인 방법의 며느리의 덕목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전화를 대충 끊었다.


속이 터질 것 같고 화가 치밀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고스란히 그 말을 듣고 있던 나에게 가장 화가 났었다.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를 열다가 

냉장고 안에 남아 있는 망고와 샤인머스켓이 담긴 플라스틱 그릇이 있었다.

화가 나서 그것을 현관 입구에 던져 버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비단 남편의 母 전화 때문에 과일을 던진 것은 아니었다.


추석 전날 남편이 엄마에게 하대를 하던 모습과 시어머니에게 막말을 듣는 내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왜 시어머니와 장모는 이렇게도 다른 위치에 있는 것인지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다른 집 엄마들은 사위에게 이름도 부르고 반말도 하면서 편하게들 지내는데

엄마는 대단한 의사사위가 부담스러운지... 눈치를 보며 가끔은 존댓말까지 하는 것 너무 싫었다.


추석 전날 연락도 없이 엄마가 갑자기 집을 오셨었다.

우리 집에 오겠다고 미리 연락을 하면 분명 내가 못 오게 할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엄마는 늘 말없이 집을 찾아와 청소며 요리를 대신해 주셨었다.

8월 중순에 엄마는 갑상선 수술을 받았었고 수술대에 올라가기 전까지도 당신의 수술걱정보다

내 병에 대한 걱정만 하셨었다.

큰 수술이 아니라며 퇴원을 한 뒤에도 우리 집으로 향했지만

목에 붕대를 붙이고 나를 간병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 집까지 오는 길은 교통이 좋지 않아 버스 2번, 지하철을 3번 갈아 타야 올 수 있는 

노인에게는 꽤 힘든 여정이다.

무더운 여름, 30년간 식당일로 자식 넷을 키우느라 허리가 꼬부라져 잘 걷지도 못하는 노인이

수술 후 목에 붕대를 감은 채 양손에는 딸에게 줄 음식을 무겁게 들고 

지하철이며 버스를 반복해서 갈아타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눈물이 나왔다.


그날도 역시 엉망이 된 집을 치우고 음식을 해두고 가려고 엄마는 급하게 차례준비를 마치고 

우리 집으로 온 것이었다.


작년 추석은 9월 초였기에 날씨가 꽤 더웠다. 

현관문 앞에 서 있는 엄마는 음식까지 양손에 무겁게 바리바리 들고 땀을 뻘뻘 흘리고 계셨었다.

오자마자 자리에 앉지도 않고 바로 설거지부터 시작해 음식을 하기 시작하셨다.


남편은 엄마가 오셨는데도 나와서 인사도 하지 않고 방에 있었다.


공동현관부터 집현관의 벨소리까지 꽤 큰 소리가 나고 엄마와 나의 대화 소리가 들려도 

남편은 방에 계속 있었다.

안방 문은 열려 있었고 안마의자 위에 앉아 있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지만 

그는 나오지 않았었다.


엄마는 남편이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인사를 하지 않는 사위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부지런히 주방을 치우고 음식을 하고 계셨다.

시간인 흘러 엄마가 O서방은 집에 없냐고 물었다. 

나는 짜증이 나서 남편에게 가서 '엄마가 왔는데 인사도 안 하고 뭐 하는 거냐'라며 한 소리를 했다. 

그제야 나와서 남편은 인사를 했다.


이혼 소송서면에서 남편은 자신이 귀가 들리지 않아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주장을 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고양이 때문에 방문이 모두 활짝 열린 상태로 생활을 하고 

그날도 방문은 열려 있어서 엄마는 사위를 먼저 확인을 했었다.

안 들렸다고만 주장하기에 설득력이 부족한 것은 안마의자에 앉으면 

주방 냉장고며 식탁이 너무 잘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는 귀도 안 들리고 앞도 안 보인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때 상간녀와 대화라도 하느라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것인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다.



남편은 그제야 거실로 나와 멀뚱멀뚱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장모가 요리며 청소를 해주러 왔다지만 가사 도우미는 아니다.


멀리서 온 손님이고 그렇다면 아픈 나를 대신해서 음료나 과일을 권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명절을 앞두고 우리 집은 남편의 명성에 맞게 각종 선물세트가 온다. 

김영란법 따위는 아주 우습게 보는 고가의 선물부터 다양한 선물들이 거실 한쪽에 쌓여 있었다.

그리고 냉장고에는 선물로 온 고가의 과일 선물 세트가 가득했다.


냉장고 한가득 과일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을 엄마도 분명 확인을 했을 텐데

그걸 하나 대접하지 않는 남편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자니 속이 터져 미칠 것 같았다.


내가 투병 중에 빨래가 쌓여도 남편은 세탁기도 돌리지 않았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세탁기 돌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아이큐가 높다고 자랑을 하면서 직관적으로 디자인된 최신형 AI 세탁기를

사용할 줄 모른다고 한다.


내가 겨우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까지 마친 세탁물은 정리까지는 하지 못하고 

소파 위에 그냥 두었다.

그렇게 쌓인 세탁물은 언제나 소파를 벗어나지 못했다. 

남편은 옷이 산처럼 쌓여 있어도 절대 개어서 옷장에 넣지를 않고 

쌓인 곳에서 고구마 캐듯이 옷을 꺼내어 입는 쿨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엄마는 주방일을 마치고 소파에 쌓인 옷가지와 수건을 개기 시작했다.

남편은 엄마 옆에 앉아서 채널만 계속 돌리며 TV만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의 팬티를 개고 있는 장모를 보면서도 가만히 TV만 보고 있는 그의 머릿속에는

대체 뭐가 들어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엄마는 내일이 추석이라 할 일이 많다고 하며 일어나셨다.

거실한쪽에 추석 선물이 많이 쌓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엄마를 빈손으로 보냈다.

우리 집 일을 도와주시는 가사 도우미가 오셨어도 내일이 추석이면 

참치세트 하나 정도는 준비해서 드리는 게 일반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생색이라도 내려는 듯이 지하철 역까지 모셔다 드리겠다며 

엄마가 나가는 길을 따라나섰다. 

그는 금방 집으로 들어와서 또 안마의자 위에 앉았다. 

정말 안마의자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우리 집에서 남편의 본가와 부모님 집은 정확하게 거리가 같다.

같은 지역에 사시는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 킬로수로 보면 신기할 정도로 같은 거리가 나온다.

자신의 부모는 대접을 받기 위해 이곳에 올 때마다 모시러 가고 모셔다 드리는 것을 

매번 반복하면서 아픈 아내를 대신해서 자신이 해야 하는 집안일을 장모가 해주러 왔는데 

10분도 안 되는 지하철 역 앞에 내려 드리고 그냥 왔다.


그 문제로 다툼이 있었을 때, 나에게 별것도 아닌 걸로 시비 건다며 짜증을 냈다. 

자신이 바쁜 상황도 아니었고 자신이 해야 할 집안일을 대신해주러 왔는데

지하철 역에 내려주는 것이 별거가 아니라고 무시를 하는 남편에게 할 말이 없었다.




남편의 장모 하대 사건과 아픈 며느리에게 성묘를 하러 오지 않았다며 막말을 퍼붓는 시어머니 모습이 

겹치면서 오랫동안 쌓여만 왔던 갈등이 그날 저녁 터져 버렸다.


남편의 母와 통화를 마치고 물을 마시러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그 많던 과일은 모두 사라지고 샤인머스켓과 망고 하나가 냉장고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명절 선물 세트도 역시 모두 자신의 부모에게로 가져갔다는 것을 

그때야 알게 되었다.


화가 나서 과일을 현관 쪽으로 던져버리고 한참을 울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지나 남편이 들어왔고 과일이 바닥에 떨어진 것을 확인한 뒤에 

자신은 참을 만큼 참았는데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너랑은 못살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억지로 봉인시켰던 감정이 폭발해 버렸다.


남편은 자신이 성묘를 다녀온 뒤 과일을 내가 던진 것을 확인하고 

이혼서면에서는 '괴팍하고 폭력적이어서' 자신은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을 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스토리가 더 과장되어 브런치게시물 삭제 소송에서는

성묘를 다녀온 자신에게 과일을 던졌다고 서면에 작성을 했다.


나는 그동안 결혼 생활 중 남편에게 물건을 던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당연히 폭력을 행한 적도 없다.

다툼 중에 물건을 던진 것은 오히려 남편 쪽이었다.


남편은 이혼을 하고 싶던 마당에 건수를 제대로 잡았던 것이었다.


당시 나는 그의 母와 통화했던 내용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이미 남편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지 않아서 나를 배려해서 혼자 성묘를 다녀온 건데

고마운 것도 모른다고 말을 꺼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말에 내 몸이 이렇게 아픈데 

도대체 '너네 조상에게 내가 성묘를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을 했었다.


이 말을 남편은 이혼서면에 '자신의 조상을 모욕했다'라고 기재를 했다.

얼마나 대단한 조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자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 모욕이라면

살아있는 장모에게 인사도 하지 않는 행위는 뭐라고 해야 할지 

적절한 단어를 아직까지 나는 찾지 못했다.


가사조사 때 남편의 母와 전화통화한 사실을 처음 꺼냈었다. 

내가 간략하게 통화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 

남편은 자신의 어머니가 싸우고 난 뒤 집으로 갔을 때 며느리에게 '안부전화' 

한통 했었다고 했다며 그 전화를 '안부전화'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엄마가 '안부전화'한 것을 매사가 꼬여서 저런 식으로 받아들인다며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갔었다.


남편의 母는 아마 나와 통화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을 하겠다며

집으로 온 남편을 보고 꽤나 놀랬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전화가 불씨가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을 하며 '안부전화'라고 

포장을 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막말을 퍼붓고 나서 '안부전화'라고 표현한 그녀를 보며 나는 문득 생각이 났다.

보통 학교나 직장 폭력을 시전 한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한 폭력을 

'그저 친하게 지냈을 뿐' '일을 잘하라고 조언을 했을 뿐'이라고 자신들은 괴롭힌 사실이

없다면서 최대한 미화를 한다.


그녀의 그 주장은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는 언어폭력 가해자들의 말도 안 되는 핑계와 

참 유사해서 소름 끼친다.




다툼 중에 남편은 나에게 절대 꺼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


"네가 그전에 왜 이혼을 당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잘 생각해 봐"

"너 같은 애가 무슨 결혼이냐. 넌 결혼 같은 건 하면 안 되는 애야!"


난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저런 말까지 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 말들을 듣고 난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약 15년 전에 나를 괴롭혔던 사건,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그 사건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남편이 이야기를 꺼내며 나를 정서적으로 죽이려 들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일이 동시에 머리를 지배하며 나를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다. 

나를 괴롭히기 위한 남편의 전략은 꽤 성공적이었다.


나는 이번 결혼이 두 번째이다.

나만 두 번째는 당연히 아니다. 


나 역시 남편의 이혼 준비서면을 받고 남편이 어떤 유형의 사람이고 

반복적으로 이혼을 하는 패턴에 대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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