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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notgisu Sep 12. 2023

사랑해서 미안해

암 소 쏘리 벗 알러뷰

 

예전부터 심각한 상황 제 아무리 주인공이 잘못된 행동을 하더래도 떨리는 입술과 함께 "사랑해요" 한 마디면 끝. 주인공들끼리 입을 맞추며 "다음 주 이 시간에" 와 같은 엔딩에 너무 노출된 한 여자애가 있었다. 

사랑이 무슨 종교인가? 구원도 이정도로 빠르진 않을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이 전부가 되고 그걸 로맨틱하게 연출하는 바이럴들이 지겨웠다.


13살에 그랬다.


셀렘,사랑

ㅅ으로 시작하는 것을 하나도 배우지 못한 채로 나이만 벅벅 먹어버린 나는 대학에 들어갔다.

남자학도들 사이에서 인기도 없었다. 괜찮다고 생각되는 남자들이 있었지만 여우같은 동기한테 이미 뺏긴 후 였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나 말고 다른 여자를 좋아하면 일단 여우다. 그냥 그래.

카페에 갔다. 청바지에 뉴발란스 검정 티. 참 어두운 카페였는데 본인 혼자 조명 켰나보다. 

알고보니 08 학번 남자에게 다가가고 싶은 18학번 여자는 주머니에 없는 돈을 털어 카페를 매일 갔다. 가야했다. 내 인스타는 그 08학번 남자를 기다리는 옹달샘을 자처했다. 근데 엉뚱한 새가 오더라. 의도하지 않았던 그 새는 내가 첫 눈에 반한 사람의 친한 친구였다.

이럴 때 전두엽에 좋은 아이디어가 지나갔다. '이 엉뚱한 새랑 먼저 친해진 후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가까워져야지.' 이때 알았어야 했다. 그건 좋은 생각이 아녔다는 걸.

처음엔 너무 가깝지도 않았다. 결혼이 없는 연애는 할 생각이 없다고 하셨다. 아 그렇구나.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줄 알았다. 내가 원했던 새가 아닌 남자들은 그냥 친구면 충분했다. 그래서 그냥 어쩌다가 연락하는 정도. 어쩌다가 커피를 같이 마시는 정도.


드라마 법칙에 서브 남주가 너무 매력이 넘치면 안 되는데 얜 또 왜 매력이 넘쳤던 걸까. 설렜다.

가끔 보던 사이에서 취향이 잘 맞는 남녀가 매일 보는 사이가 되는 건 참 쉽다. 좋아했다. 소개팅 3번 후에 연인이 되는 건 참 쉬운 세상에 매일 보던 우리 사이는 사랑 취급도 못받았다. 20대 후반을 달려가는 남자가 생각하는 결혼과 사랑과 대학생 여자가 생각하는 결혼과 사랑이 분명 같진 않으니깐.

그치만 정말 사랑했다. 그래서 미안했다.


"사랑해서 고마워"는 들어봤어도 "사랑해서 미안해"는 무슨 감정이야? 라는 질문을 듣고 생각했다.

사랑은 무슨 잘못을 해도 용서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영향력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톡 하고 깨져버릴 거 같이 섬세함을 동시에 가진 감정이다. 연애란 어떤 모양의 상자에 담기고 어떤 방식 어떤 속도로 전달 되는 것. 그 일련의 과정에서 내가 택한 방식이 그 사람의 취향에 맞길 바라며 택배를 보내는 것. 

! 참 취급주의 딱지는 꼭 붙여야한다. 배송중에 깨지면 안되니깐.

이것이 내가 생각한 누군가를 좋아하고 고백을 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택배를 받은 주인이 그 택배를 "음 사람은 좋은데.. 잘 안맞아"라는 말로 환송될지, "좋아"하면서 방 안으로 가져갈지, 확인한 후 반송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곁에 둘 것인지를 선택한다. 내가 느낀 사랑해서 미안하다는 감정은 택배 상자에 담기기도 전에 불량 도장이 쎄게 찍혀버린 마음이다. 이미 불량 판정이 된 마음에게는 포장과 배달은 어떤 방식으로 해도 받는 이 입장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택배 상자를 열었을 때 만나게 될 마음이 불량이니.

그게 미안한 거다. 제아무리 예쁜 상자에 담고 그 사람이 원하는 속도로 배송이 되었다고 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상대가 두근거리는 심장과 함께 택배 상자를 열어 마주하게 될 상품이 불량인 게 미안했다.




물론 그는 결혼했다. 나 말고. 다른 여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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