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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힘 Feb 24. 2024

회복탄력성의 부작용

더 이상 쓸데없는 회복하지 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회복탄력성은 마치 인간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만병통치약만큼 강력한 약이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는 일생에 한 번도 겪지 않을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도 우울함과 동시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유머가 목숨과도 같았고 농담과 장난이 탈출구가 되어줬다. 이런 팔자에도 웃으면서 살 수 있었던 건 회복탄력성이 좋아서였다고 자부하며 살았다.


그러나 숨 막히고 팍팍한 결혼생활을 버티는데 제일 열일한 나의 회복탄력성을 이쯤 되면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


가끔 나는 왜 이런 현실에서도 속없이 희희닥거리고 주책맞게 잼민이 와의 농담 따먹기에도 충분히 신이날 수 있는지 내가 봐도 신기한 인간이었다.


남편 없이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방방곡곡 누비고 다녀도 기죽어  적 없고 늘 짝이 없어도 서러워본 적 없다. 다만 애들에, 짐에!

이고 지고 두 손이 모자랄 때 잠시잠깐 일꾼이 아쉬웠던 적만 있었을 뿐.


그러다 문득 간신히 붙잡고 있던 끈이 탁 끊어져 튕겨져 나간 듯했던 어느 날 이렇게는 도저히 나의 회복탄력성이 굳이 작동하지 않아도 될 일에 열일하게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안 본 눈 삽니다' 흐린 눈을 하고서 안 보고 싶은 남편과 마주하게 되는 날이 많아질수록 가스라이팅에 흐려졌던 정신마저 바짝 차리게 되었다.



이렇게는 살 수 없지!


이건 내가 자부해 왔던 회복탄력성의 순기능이 아니라고!

회복하지 마...  더 이상 회복하지 마...

자꾸 회복하니까 멍청한 뇌가 자꾸 내가 괜찮은 줄 아는 듯했다.


몸에 좋다는 영양제도 암환자에게는 암까지 키워내니 독이 되는 것처럼 내게 회복탄력성은 그런 거였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는 빛을 발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


그렇게 잠시 꺼두었던 회복 기능은 내가 요즘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에서 다시 열일 중이다. 다만 근래 사소한 일에 짜증과 눈물이 주제넘게 나는 듯하여 갑상선 호르몬이 다시 말썽인가 싶어 한동안 철저하지 못했던 갑상선 항진증 약 복용을 신경 써서 챙겨보는 중이다.


이제 뭐든 풀가동이다. 일도, 육아도, 건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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