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인들의 고대(Antiquité, 그리스 로마 시대) 사랑은 눈물겹다. 고대는 절대미와 절대 법칙을 숭상하던 시대였다. 이상(理想)이 현실을 지배했다. 이런 고대에 대한 숭배와 동경은 유럽의 원천이다. 20세기 이후 전통을 파괴하고자 하는 서구 해체주의가 그토록 확산된 것도 역설적으론 전통의 지배가 강렬함을 입증한다. 우리 동양은 전통을 돌아볼 새 없이 사는데 서양은 뿌리 깊이 전통에 젖어있는 셈이다.
그리스 신화 속 미녀 헬레네는 트로이아 전쟁을 일으킨 원인이다. 파리스 왕자를 비롯해 수많은 영웅들이 헬레네의 미모 때문에 전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역대급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다. 전쟁 후에도 헬레네는 메넬라오스와 재결합해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러나 영웅들의 이야기에 파묻혀 정작 헬레네는 단역배우 수준의 역할만 했다.
폴 발레리의 헬레네는 유령이다. 영웅들의 사랑을 한 몸에 누리던 여신 같은 존재가 아니다. 새벽빛 속에 다시 살아난 유령은 바다를 배경으로 과거의 영광을 바라본다. 많은 군주들, 당대의 신들이었던 영웅들이 뱃전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바라본다. 헬레네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던 과거의 자신을 바라본다. 과거는 흘러갔다. 돌아오지 않는다.
창공이여! 나다... 나는 죽음의 동굴을 빠져나와
웅성거리는 층계에 부서지는 물결 소리 들으며,
새벽빛 속에서 노예선들이 금빛 노들을 저어가며
어둠에서 되살아나는 걸 다시 보고 있다.
소금처럼 하얀 수염으로 내 순결한 손가락들 달래던
군주들, 내 외로운 두 손이 그들을 부르고 있다.
나는 그때 울고 있었지. 그들은 자기네의 어두운 승리와
배 고물에 사라지는 물굽이들을 노래하고 있었어.
깊은 소라고동 소리, 날개 치는 노와 장단 맞추는
전투 나팔 소리가 지금도 들려온다.
노 젓는 사람들의 낭랑한 노래가 소란을 누르고,
물보라 덤벼드는 용맹의 뱃머리엔
우쭐한 신들이 옛날 그대로의 미소를 지으며,
조각 같은 너그러운 팔들을 내게 내밀었지.
이 시에서 헬레네는 영웅들의 사랑을 받은 여신 같은 존재가 아니다. 발레리는 고대 문화를 장엄하게 시화(詩化) 하지 않는다. 헬레네라는 이름을 가진 인성을 추적하는 데 집중한다. 고대 재현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조건의 시를 향한 걸음을 내딛는다.
이 시는 헬레네의 독백으로 펼쳐진다. 훗날 「해변의 묘지」와 「젊은 파르크」에서 절정에 이르게 될 독백 기교를 구사한다. 그녀는 타자를 보고 다른 시공간을 보고 자기 자신을 보는 메타 인지 속에 있다. 발레리식 자아이다. 핼레네의 현재 행위는 1연의 동사 “난... 다시 보네” 속 ‘다시 보다’, 3연의 동사 “들려오네” 속 ‘듣다’에 쏠려 있다. 헬레네의 과거 행위 ‘울다’는 군주들의 ‘노래하다’와 대비된다.
군주들을 향해 두 손을 뻗던 과거의 헬레네를 바라보는 현재의 유령 헬레네. 고대적 이상(理想)의 상징인 군주들과 헬레네는 아무리 두 손을 뻗은들 서로 떨어져 있다. 군주들은 멀리 있으며 승리를 구가하고 있다. 헬레네는 시인의 자아이다. 헬레네와 시인은 죽음의 동굴에서 나와 역동하는 바다에서 배회한다. 물결치는 바다에서 생명의 약동을 쫓는다.
군주들을 향한 갈망은 신들에 대한 갈망이며 고대에의 향수이다. 죽음의 동굴에 반(反)하는 역동적 삶을 추구하는 시인의 갈망인 것이다. 발레리의 고대(Antiquité)는 유령 헬레네가 두 손 뻗어 닿고 싶어 하는 삶의 역동성이다. 그것은 시공을 초월한 이상(理想)이며 찬란한 승전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