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의 한 서린 야망은 로맨스에 삼켜졌는가.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프란시스 로렌스,2023) 감상

by 브로콜리파마

1.

개봉한지 한달채 되지 않았지만 전국에 있는 상영관 대부분이 이 영화를 내렸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볼 수가 없어 서울 가는 날에 맞춰 영화를 예매하였다. 서울에서도 상영하는 곳이 적었다. 영화관에서 하나의 영화를 밀어주기 위해서 이 영화를 내렸을까? 하는 불순한 의문을 안고 먼길을 떠났다. ‘그렇다하면 내가 이 영화를 봐줘야지! 아암 나는 헝거게임 팬인걸!’ 4시40분이라는 애매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는 사람들로 꽉 찼다. 다들 영화를 찾아 이리로 왔나 보다.

솔직히 러닝타임 157분동안 스노우와 루시 그레이의 관계에 대한 당위성이 이해되지 않았다. 본고는 영화에서 보여지는 스노우와 루시 그레이의 관계의 당위성을 찾아 나가기 위한 흔적이라 생각하면 된다.

스노우 가문은 구역민들에 의해 몰락했다. 스노우는 캐피탈에서 꾸역꾸역 버티며 ‘중심’에 서있길 바랐다. 아침을 먹을 경제적인 여력이 없었지만 하인이 있는 척하였고, 하얀 와이셔츠는 돌아가신 아버지 것과 번갈아가며 입었다. 그런 스노우가 갑자기 사랑에 눈먼 사람이 되었다?

캐피탈 사람들에게 구역민들은 60·70년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북한은 머리에 뿔이 달려있는 빨간 도깨비 같은 사람들이다라고 주입 되었던 이미지와 다를 바 없다. 캐피탈과 12구역은 접촉할 기회가 없었고, 캐피탈은 12구역을 통제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틀로얄 헝거게임이 시작되어야만 구역민들을 볼 수 있었다. 마치 TV 안에서 재롱을 떠는 동물을 보는 것 마냥. 헝거게임 캐릭터를 고전적인 신데렐라 구조에 대입할 것인지 보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2.

다행스럽게도 영화 초반에 스노우는 루시 그레이에게 사적인 감정을 주지 않았다. 루시 그레이는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있을 때부터 스노우에게 호감을 보여왔다.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있는 루시 그레이가 스노우에게 키스를 시도했을 때 스노우가 받아줬더라면 이 때부터 나는 실망감을 안고 영화를 봤을 것이다.) 구역민이 "당돌하게" 캐피탈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입히고 싶었던 것이라면 어설픈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계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과 보이는 선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생사를 다퉈야 하는 배틀로얄에 징집되었는데 난데없이 키스를 시도하는 건 눈치가 없는 캐릭터인건지 싶었다.

영화 후반에 루시 그레이는 본인의 생존을 위하여 스노우가 사랑의 증표로 줬던 어머니의 스카프를 덫으로 활용하여 스노우를 공격하였다. 루시 그레이는 사랑과 생존에서 생존을 택한 것이다. 이전의 모든 행동들을 사랑의 연기라고 치부하진 않겠다. 12구역에서 루시 그레이와 스노우는 평화로웠고 세자누스 플린스가 반란을 꾀하기 전까지는 배신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후반부 루시 그레이의 배신으로 인해 스노우는 스노우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녀의 선택 때문에 스노우는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게 되었으며, 원래의 캐피탈 세계로 회귀할 수 있었다.


3.

헝거게임 3부작에서 냉혈하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스노우 대통령만이 캣니스와 피타의 사랑연기에 속지 않았다. 이를 설명하려면 프리퀄인 이번 영화에서 절절한 사랑을 했지만 배신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설명되어야 한다. 스노우가 언제부터 루시 그레이에게 로맨스의 감정이 생겼을까? 이 시발점이 나에게 중요했다. 영화가 끝난 후 하루종일 생각에 잠겼다.

헝거게임 진행중, 스노우는 루시 그레이의 우승에 적극적으로 멘토역할을 해왔다. 필자가 보았을 때 헝거게임 중에 스노우는 철저히 멘토의 위치에서 루시 그레이를 바라봤다. 헝거게임이 끝나고 부당한 방법으로 멘토 역할을 했다는 상부 결정에 따라 스노우는 평화유지군으로 징병에 끌려간다. 이 때 스노우는 뒷돈을 주고 루시 그레이가 있는 12구역에 배정받게 된다. 이 때부터라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다. 필자는 스노우가 12구역에서 루시 그레이와 관계를 쌓으면서 사랑이란 감정에 스며 들었다고 생각한다.

스노우가 평화유지군 이전까지는 본인이 루시 그레이에게 했던 행동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다. 캐피탈의 신분이었지만 구역민 루시 그레이의 우승이 본인에게 이득이 된다 판단되어 선뜻 다가간 것이다. 그러나 평화유지군 시절 캐피탈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주저했던 모습은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밟혀서 그런 것이다. 스노우는 결국 캐피탈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고 야망을 우선시하는 스노우에 이야기 전개가 조금 더 다채로울 것이라 기대되었다.

그러나 스노우가 친구가 주도하는 반란 모의를 덮치게 되고, 그 상황에서 루시 그레이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이 터지자 그녀를 위협하는 시장 딸을 죽인다. 스노우는 결국 사랑과 야망 중 사랑을 택한 것이다. 스노우는 루시 그레이와 도주를 하게 되고 캐피탈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것이다.

4.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시키는 법이지"


결과적으로 루시 그레이는 생존을 위하여 본인을 택했고 스노우는 사랑하는 상대를 택했다. 스노우는 루시 그레이가 보여줬던 모든 행동들이 연기라고 생각었고 이후 대통령이 되었을 때 캣니스와 피타의 관계를 단번에 연기라고 알아 본 것이다. 그러나 스노우가 관과한 점이 있다. 그는 사랑으로 상황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을 경험하기도 전에 사랑이 끝나버려서 캣니스와 피타가 척박한 상황속에서도 서로를 놓지 못하고 믿음으로 이어 나가는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스노우 대통령은 캣니스와 피타의 진정한 사랑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고 이것이 스노우 대통령의 야망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된 것이다.


필자가 스노우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시점을 집요하게 찾아내고자 한 이유는, 이야기 전체의 당위성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깨여있는 사상을 가진 캐피탈 시민이라도 개인적으로 구역민으로 인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문이 몰락하였다면 구역민과의 사랑 이야기는 꿈 꾸기 조차 싫은 것일테니까 말이다. 몰락한 가문을 다시 세우기 위하여 야망을 가진 스노우가 어떤 이유로 야망을 버리고 사랑을 택했는가. 이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지점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이것에 해결되지 않아 계속 의문을 갖고 보았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생각하였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계속 정리하기 바쁘다. 이번 글은 거칠게 쓴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후에 OTT에 올라온다면 다시 보고 분석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