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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지금부터 쉬는 시간입니다

어른도 잠깐 쉬었다 가시죠

by 꿈꾸는 날들

"여러분 지금부터 쉬는 시간입니다. 화장실 다녀오세요."


"선생님, 물 마셔도 돼요?" (응, 아까도 먹었잖아.)

"선생님, 오줌 마려워요."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이란다.)

"선생님, 민규 복도에 나가요." (너도 나가도 된단다.)

"선생님, 도서관 갔다 와도 돼요?" (그럼, 쉬는 시간이라니까.)

"선생님, 쉬는 시간 언제예요." (지금, 바로 지금.)

"선생님, 민아 엄마 보고 싶다고 울어요." (울지 마 선생님도 엄마 보고 싶어.)

"선생님, 우리 밥은 언제 먹어요?" (아직 3시간이나 남았어.)

"선생님, 저 콧물 나와요." (화장실 다녀오렴.)

"선생님, 유하가 뛰었어요."(본인도 뛰면서 그런 말하지 않아요.)

"선생님, 쉬는 시간 언제 끝나요?" (방금 시작했어요.)


3월 초 1학년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하고 "자, 이제 쉬는 시간이에요."라고 말해주어도 질문폭탄이 쏟아집니다. 학교에서 대놓고 놀아도 된다니, 공부를 안 해도 된다니, 학교에서 주어지는 쉬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가장 신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쉬는 시간은 없습니다. 아이들 질문에 대답해 주고 급한 메시지를 확인하고 놀다가 싸우는 아이를 화해시키고 중재하다 보면 때론 수업 시간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메신저 창에도 메시지 폭탄이 쏟아져서 해야 할 업무와 급하게 제출해야 할 내용을 확인하고 가끔 교무실 혹은 학부모 전화도 받다 보면 20분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쪼르르 제 곁에 다가와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대화도 받아줘야 합니다.


"선생님, 저 어제 치킨 먹었어요."

"와, 맛있었겠다."

"선생님, 저는 엄마랑 키카(키즈카페) 갔다 왔어요."

"오, 좋았겠네."

"선생님 저는 어제 롯데월드 갔다 왔어요."

"이야, 진짜 맛있었겠다."


아...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아이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갑니다. 업무 메신저를 확인하며 정신없이 대답을 해주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했습니다.


"칫, 선생님은 내 말 하나도 안 듣고 있었나 봐."


마음이 상한 아이가 뒷걸음질을 하며 사라져 갑니다. 아차 싶은 마음에 "선생님이 잘못 들어서 미안해"라고 얼른 뒤따라갔더니 "괜찮아요. 저 놀아야 되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라며 쿨하게 하트를 날려줍니다. 분명 속상해했는데, 놀고 싶은 마음이 이겼나 봅니다. 신나게 놀아야 하는데 속상한 마음 따위가 쉬는 시간을 방해할 수 없죠. 그렇게 아이들은 마음도 툭툭 잘 털어냅니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는 속상해서 못 노는 아이보다, 놀아야 돼서 속상한 마음을 빨리 떨쳐버리는 아이가 더 많습니다. 무엇이든 마음에 잘 스며드는 만큼 접힌 마음도 구김 없이 반듯하게 잘 펴지고 눅눅하게 젖었던 마음도 금방 보송하게 마르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쉬는 것도 참 열심히 온 힘을 다해 쉽니다. 진짜 열심히 놀아요. 그래서 그런지 충전도 급속도로 됩니다. 뭐든 찐으로 열심히 하죠. 고작 20분의 시간인데 얼마나 신이 나게 노는지 예비종이 치면 그렇게 아쉬워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꼭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위해 등교하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이들만큼이나 어른인 저도 쉬는 시간이 좋습니다. 오늘 먹을 맛있는 급식을 생각하며 출근을 하기도 하고요.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는 이유도 결국은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삶에 휴식이 필요한 건 어린이나 어른 모두 똑같은 것 같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짬을 내서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쉬는 시간을 만끽하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어찌나 해맑고 예쁘던지, 노는 게 제일 좋은 아이들의 모습답게 참 열심히 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잠깐의 쉼도 아까워하며 시간을 쪼개어 일을 하는 저와 참 대조적이었습니다. 물론 선생님이다 보니 쉬는 시간에도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단 5분도 마음이 쉴 수가 없는 건 저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정작 어른의 삶에 쉬는 시간은 언제일까요?


어쩌면 우리의 일상에서 휴식은 일을 다 끝낸 다음에, 중요한 일을 마친 후에 언제나 다음, 다음, 결국 끝내 오지 않는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모두 쉴 틈이 없이 살고 있지 않나요? 출근과 동시에 퇴근만 기다리고, 평일엔 애타게 주말을 원하게 되는 건 누가 만든 시간표 때문일까요? 어른이 된다는 건 일상에 쉬는 시간을 건너뛰는 삶을 산다는 뜻일까요? 우리의 일상에도 마음껏 쉴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주어지면 좋겠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종이 치면 하던 일을 딱 내려놓고 누가 뭐래도 대놓고 쉬는 거죠. 그게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이라도 생각과 마음을 잠시 멈추는 겁니다. 다시 새롭게 충전될 수 있도록 과열된 모든 것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여유. 그 여유를 잃고 산다는 건 어쩐지 조금 서글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삶에도 쉬는 시간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멍 때리기도 하고 친구들과 땀나게 뛰어놀기도 하고, 때론 바보 같은 놀이도 좀 해보고요. 그런 시간이야말로 오히려 몸과 마음이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해주는 윤활유이자, 안전장치가 아닐까요? 우리가 기계도 아니고 24시간 풀가동되어 살아야만 한다면 당연히 몸이든 마음이든 망가질 수밖에 없잖아요. 오늘부터 하루에 딱 10분만 어른도 쉬었다 가면 좋겠습니다. 내가 맡고 있는 역할이나 어떤 책임에서 자유롭게 나를 놓아주는 시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이나 근심도 잠깐 내려놓고, 해야 할 업무도 잠시 잊은 채 그저 온전히 나로만 존재하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혹은 아이들처럼 신나게 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겁니다.


일상과 업무 사이,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나' 사이

무엇과 무엇의 사이든

마음과 생각이 쉬는 시간.


아이들의 쉬는 시간처럼 어른들의 삶에도 쉬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신나게 뛰놀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걸 바라보는 일이 조금은 덜 짠할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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